군대 생활 34개월 10일을 하고 만기제대를 했다. 주특기가 보병의 특수 화기인 기관총이라 동원 예비군을 거쳐 예비군 기동대에 소속되었다. 기동대는 지역에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재빨리 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편성된 것으로, 현역으로 치면 5분대기조와 같은 개념의 병력을 말한다.
기동대는 1년에 한 번, 부산에 있는 예비군 교육장을 순차적으로 지정하여 사격 경연 대회를 한다. 그래서 연습은 거주지인 사하구 교육장에서 하고, 대회는 당해 연도 해당 장소인 영도구 교육장에서 개최했다. 그날 거기서 홍 병장을 만났다. 뜻밖의 만남은 생각지도 않게 기억의 단편들을 조각해낸다.
3하사관학교 수료와 동시에 병장 계급을 달고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었다. 소위 말하는 GOP general outpost 철책선 근무다. 철책선 안의 비무장 지대는 허리 높이의 억새와 잡목만 무성한 분지와 같다. 숲이 울창하지 못한 것은 사주 경계를 위해 쌍방 간에 불을 놓아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한다. 땅이 얼었다 녹는 봄이면 간혹 노루가 지뢰를 밟아 폭사하는 굉음 말고는 고향의 들판과 같이 아늑하고 평온한 곳이다.
나는 일반 소총 소대 화기 분대에 배치를 받아 신형 기관총인 M60 사수로 보직을 받았다. 우리 소대는 산등성이 부분의 소대장이 거주하는 벙커에 2개 분대, 100m쯤 아래쪽의 선임하사가 거주하는 벙커에 2개 분대씩 두 팀으로 나누어 생활했다. 아래쪽 벙커가 내가 거주하는 생활관이다.
아래 벙커 앞 움푹 파인 곳에는 양철과 판자 등으로 엉성하게 취사장을 지어 소대원의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전방은 산 능선을 깎아 만든 비포장도로를 군용트럭이 다니기 때문에 눈, 비가 많이 와서 도로 사정이 나빠지면 군수품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완만한 산등성이 두 개 정도의 거리에 있는 중대본부에서 직접 보급품을 수령하게 되었다. 곧 제대를 앞둔 말년 상병을 포함해 여섯 명이 선발되어 갔다. 모든 것에 열외인 말년 상병이 같이 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중대본부에는 px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볼일을 보고 난 뒤 각자 짊어지고 갈 짐을 배분하였다. 나를 포함하여 세 명의 장병은 쌀 한 가마니씩을 배당받았다. 그런데 그 쌀 한 가마니가 80kg 정도 되니까 한창때인 군인이 짊어지기에도 엄청 버거운 무게였다.
나는 우선 쌀가마니를 아기 업듯이 둘러업고 두 팔을 돌려 꽁무니를 받쳤다. 엉거주춤 웅크린 자세로 걸어가니 몸이 자꾸만 앞으로 쏠렸다. 다른 장병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잘도 걸었다.
조금 있다가 자세를 바꾸어 목과 머리를 이용해 어깨에 짊어지기도 했으나, 가면 갈수록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고, 땀은 비 오듯 하여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갔다. 앞서가는 병력을 도저히 따라 붙일 수 없고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쯤, 마지막 산등성이에 선 시꺼먼 실루엣들이 철책선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메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김 병장, 빨리 와~”
얼마 후, 그 상병이 제대를 하고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었을 때다. 고향이 같아 평소 나에게 이것저것을 잘 챙겨주는 일병(앞의 예비군 교육장에서 만난 홍 병장) 하나가 나에게 쌀가마니 지는 법을 가르쳐 준다.
우선 가마니를 들어 허리 높이의 언덕 위에 놓고, 아래위 가로로 된 새끼줄은 빼버리고, 양옆에 세로로 된 새끼줄 두 개를 힘껏 당겨서 느슨하게 멜빵처럼 만들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양팔을 집어넣고 힘껏 앞으로 채듯이 일어서라고 하면서, 가마니 뒤를 살짝 밀어준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편안하게 일어나 뛸 듯이 걸을 수 있었다.
저번에는 쌀가마니의 새끼줄이 이런 용도로 사용되는 줄 몰랐으며, 아무도 눈길조차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추측건대, 말년 상병이 주도한 신고식이었을 것이다. 군번이 새까맣고 나이도 어린놈에게 짬밥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고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월동준비
전방에 가을이 깊어 가면, 곧 쳐들어올 동장군을 대비하는 시기다. 소위 말하는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월동준비는 돈을 들이지 않고 거의 맨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게 군대만의 특수성이다. 그중 하나가 근처 야산에서 싸리나무를 베어서 빗자루를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도로의 눈을 쓸어 얼어붙지 않도록 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눈이 와서 도로가 얼어붙어 보급품 차량이 오지 못하면, 우선 골초들은 화랑 담배를 배급받지 못해 심한 금단현상에 시달려야 한다. 유사시에는 탄약 등 전투 물품이 보급되지 않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곱다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초소에 투입될 때 경사진 통로가 미끄러워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눈만 오면 간부들은 눈 치우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런데 이 빗자루 만드는 일은 싸리나무를 베러 나선 장병들에게 실질적인 월동준비도 된다. 이맘때면 뱀들이 동면 준비에 들어가서 몸에 지방질이 잔뜩 축적되기 때문이다. 싸리나무를 베다가 유혈목이(일명 꽃뱀)를 발견하면 장병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그냥 쫓아가서 맨손으로 목을 눌러 잡는다. 거의 제트기 나는 속도로 ‘쐐액’ 하고 도망을 치지만 장병들의 눈에 포착되면 여지없다.
잡으면 먼저 목 부위를 이빨로 물어뜯어 껍질을 목에서부터 꼬리까지 단번에 쭉 벗긴다. 그리고 내장과 살코기를 따로 분리해서 싸릿대 두 개에 각각 꿰어 들고 싸리나무 잔가지에 불을 붙여 굽는다. 그러면 기름이 뚝뚝 불 위로 떨어지고 불은 더욱더 기름진 불꽃을 피워 올린다.
다 구은 꽃뱀은 계급과 서열 순으로 배당이 된다. 먼저 꼬리 부분은 남자에게 좋다고 최고 선임자에게 상납된다. 내장도 그런 순으로 나눈 다음, 우리는 몸통 부위를 한 조각씩 나눠서 입에 넣었다. 꼭 구운 갈치 맛이 난다.
이게 왜 장병들의 월동준비냐 하면 잘 씻지도 못하는 겨울철, 입고 있는 내복 겨드랑이에 이 약 주머니를 두 개씩 달고 있어도 정말 쌀알같이 큼지막한 이가 잡힌다. 몸에 열이 많이 나서 생긴 현상으로, 혹독한 겨울나기를 해야 하는 장병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월동준비다.
월동준비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어느 날, 초소 지붕을 만들 볏짚을 구하러 가게 되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어딘지도 모를 먼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갔다. 추수가 끝난 을씨년스러운 논에는 짚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모두 들 짚단을 한 짐씩 짊어지고 가야 한단다. 아무리 민통선 지역이라 하더라도 주인 모르게 하는 일이라 급히 서둘러야 한다. 짚불을 피워서 주위를 환하게 하고 난 뒤, 새끼를 꼬아서 짚단을 묶고, 멜빵을 만들어서 짊어지는 방식이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새끼를 꼴 일이 없었다. 군대 와서 새끼 꼬는 법을 대강 배우기는 했지만, 농촌에서 자란 사람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준비되는 대로 출발하기 때문에 마음은 급하고 새끼 꼬는 손은 자꾸 헛돌았다. 그런데 그동안 요령이 붙었는지 나도 모르게 짊어질 짚단을 적게 만드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렇게 군대에서의 극한상황은 차츰 생존 방법을 터득하게 하였다.
안 되면 되게 하는 게 군대가 아닌가.
첫댓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군 생활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도 한 때는 여군 지망생 이었답니다. 완고한 아버님 덕분에 꿈을 접었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독했던 무더위도 이제 조금 힘을 잃어가는 듯 합니다.
김 작가 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