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9
영끌족, 이자 부담에 ‘공포 투매’ 조짐… 주택시장 경착륙 위험신호
부채위험가구·전세대출 급증… 집값 급락에 ‘패닉셀링’이어지면 금융위기 현실화할 수도
文정부 정책 실패에 미국發 금리 인상이 원인… 서울·수도권 규제지역 해제 확대 시급
미국발 금리 인상 추이가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강력하다. 무엇보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 금리 급등이 주택 구매 수요와 전세 수요를 위축시키고 주택시장을 급격히 냉각시켜 주택시장 ‘경착륙’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핵심이 되는 서울의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최근 두 달 연속 600건 남짓으로 2006년 1월 실거래가 신고가 시작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아파트 실거래가지수 역시 국제금융위기 이후 최대 월간 하락 폭을 보였다. 주택시장 경착륙 우려 이면에는 여러 가지 신호가 뒤섞여 있어, 면밀한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
◇ '버블 논란'
최근 금리 급등으로 인한 주택가격 하락세와 함께 버블 붕괴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진다. 버블 주장의 근거로 ‘소득대비주택가격비율’(PIR)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 많이 제시된다. 그러나 PIR는 분자인 주택가격과 분모가 되는 가구소득의 대푯값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그리고 통계 산정의 공간적인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수치가 산정되는 예민한 지표다.
국제 비교를 위해서는 아파트만이 아닌 모든 주택을 포괄해야 하고(국내 아파트는 전체 주택 재고의 절반에 불과), 시세가 아닌 실거래가격을 이용해야 하며(단독주택이 주류인 해외에서는 시세 조사 없음), 평균이 아닌 중위값을 써야 한다(평균은 고가주택에 치우친 통계 산출).
공간적인 범위는 행정구역이 아닌 경제활동이 강하게 연결된 실질적인 (대)도시권 단위여야 한다. 많이 인용되는 뉴욕의 PIR도 인구 800만 명의 뉴욕시가 아닌 2000만 명의 뉴욕대도시권 PIR다. 집값은 비싸지만, 임차가구와 사회 초년생들이 몰려 살아 중위 가구소득은 낮은, 중심도시 지역만 뽑아 PIR를 계산하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요구조건을 다 맞춰 해외 비교를 위한 PIR를 계산하면 수도권의 2019년 PIR는 5.6이다. 이는 같은 해 뉴욕(5.4)이나 로스앤젤레스(9.0), 런던(8.2) 대도시권보다 높다고 할 수 없다. 중심도시만을 비교하면 서울시는 2019년 9.6으로, 국제금융위기 이후 시장 회복 시점인 2010년(9.1)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고, 2019년 뉴욕시(10.8)나 로스앤젤레스시(11.5)보다 외려 낮다. 2019년 이후 급등분을 반영하면 PIR는 더 높아질 수 있지만 국제적인 동반 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현시점 수도권의 즉각적인 버블 붕괴 가능성은 추가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 경착륙 위험신호
가격 상승률 관련 해외 비교를 위해서는 전체 주택을 포괄하는 실거래가지수가 필요하나, 한국은 공동주택 실거래가지수만 공표된다. 이를 바탕으로 비교하면, 2015년 이후 수도권의 약 70%의 상승률은 OECD 내 상위 25% 수준이다. 다만 서울시의 100%에 가까운 상승률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수준이 아닌 누적 상승률로 판단하면 서울권 시장에 장기적 가격 급등의 문제가 집중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별 가격 상승률의 편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저금리뿐 아니라 수급 상황의 진단이 필요하다. 2015년 이후 매년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의 공가율 통계를 보면 경기도는 2019년까지 6.3% 상승한 이후 2021년 5.1%로 낮아졌지만, 서울시는 3%대 초반에서 거의 변동이 없다. 5∼10%의 자연공가율에 훨씬 미달하는 3%대의 공가율 유지는 서울권 주택시장의 공급 확대 필요성이 여전함을 말해준다.
요즘 주택시장 상황을 2008년 무렵 국제금융위기 시절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제금융위기가 국내 주택시장에 직접 미친 충격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해 800조 원을 넘어섰고, 미미했던 전세대출도 200조 원을 넘는 상황이 됐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분석하면 총량이 아닌 개별 가구별 부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전체 부동산 보유가구 중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DSR)이 40% 이상인, 가벼운 의미의 ‘부채위험가구’ 비중은 2011년 11.4% 수준이었으나 2021년 16.5%로 높아졌다. 연령대로 보면 20∼30대 가구 중 부채위험가구 비율이 해당 기간 12.6%에서 23.7%로 유난히 높아졌다. 이는 청년층의 ‘영끌’ 현상의 부작용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 공포 투매 조짐
추가적인 위험요인은 전세대출이다. 전세가구의 전세대출액 평균은 2011년 394만 원에서 2021년 2974만 원으로 무려 7.6배로 증가했다. 여기서도 20∼30대 가구의 전세대출 잔액이 가장 많았는데, 해당 기간 521만 원에서 5255만 원으로 무려 10배로 늘어났다.
또 다른 관심 그룹은 아마도 갭투자를 추구하는 분리가구(전세로 거주하면서 소유 주택은 전세 놓는 가구)일 것이다. 분리가구 중 DSR가 40% 이상인 가구 비중은 2011년 12.3%에서 2021년 21.4%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30대 분리가구는 더욱 심각해 9.9%에서 31.8%로 3배 넘게 증가했다. 이전에 없었던 다양한 부채 위험요인들이 산재해 있으며, 특히 가격 급등에 ‘패닉 바잉’ 현상을 보였던 20∼30대의 가격 급락에 대한 대응이 ‘패닉 셀링’으로 이어진다면 주택시장발 금융위기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부터 가팔라진 금리 인상이 반영되면 관련된 부채 위험 지표들은 심각하게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비제도권 부채인 전세에 제도권 부채인 전세대출이 얹혀, 깡통전세나 의도치 않았던 전세금 미상환과 같은 임대시장 문제가, 그렇지 않아도 침체된 매매시장 거래에 추가적인 거래 단절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주택시장 내 거래의 연쇄 고리를 원활하게 작동시킬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종합적인 규제 완화 패키지인 조정대상지역 같은 규제지역 해제를 수도권으로, 서울권으로, 합리적인 스케줄에 따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 공급 확대를 위해
매매시장의 거래량은 전멸인데 전월세시장의 거래량은 유지되면서 월세화와 월세의 상승이 심각하게 이어지는 형국이다. 매매시장의 침체는 필연적으로 자가보다는 전월세시장에 머무르고자 하는 가구를 늘린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가격 급등기를 거쳤음에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에 주택 공급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건 뼈아픈 정책 실패다. 서울권 아파트시장 내 공급 확대를 위한 재건축부담금 부과 유예, 안전진단 폐지, 분양가상한제 완화 같은 정비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세부 대책이 여전히 유효한 정책대안이다.
이창무 /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 아시아부동산학회장
문화일보
■ 용어설명
‘PIR’는 가구 연평균소득을 분모로, 특정 지역의 평균 주택가격을 분자로 하는 지수. 예컨대 PIR가 10이라면 10년 동안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
‘DSR’는 대출자의 총 금융부채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 가계가 연소득 중에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카드론 등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얼마를 썼는지를 말해주는 지표.
■ 세줄 요약
‘버블’ 논란 : 미국발 금리 인상 추이가 부동산시장에 큰 여파를 미침. 금리 급등으로 인한 주택가격 하락세와 함께 버블 붕괴 논란이 나오는 상황. 현시점 수도권의 즉각적인 버블 붕괴 가능성은 추가적인 진단이 필요.
경착륙 위험신호 :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 금리 급등이 주택 구매 수요와 전세 수요를 위축시키고 시장을 냉각시켜 주택시장 ‘경착륙’ 우려를 키우고 있음. 특히 서울권 시장에 장기적 가격 급등의 문제가 집중됨.
영끌, 공포 투매 : 2030의 부채위험가구 비율이 훨씬 크게 늘어난 것은 미국발 금리 인상과 지난 정부 주택 공급 정책 실패에 따른 것. ‘패닉 바잉’을 주도한 영끌의 ‘패닉 셀링’이 주택시장발 금융위기를 현실화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