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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회 3일 신약의 대제사장 이야기
https://youtu.be/zXlpdBCNWyY?list=PLWP5B6z6O6reXoqeggPsF5neX8sRjET2C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이런 반성문을 썼습니다.
엄마가 쓰라고 그래서 썼습니다. 제가 남과 자꾸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제가 형편에 맞지 않게 살아서 죄송합니다.
제가 형편에 맞게 살겠습니다. 운율이 딱 딱 맞아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휴대폰 가게에 휴대폰을 사러 갔습니다.
엄마가 형편이 좋지 않아서 좀 저렴한 것을 사라고 그랬는데 이 딸이 아이폰을 사겠다고 우겨 가지고 다퉈습니다.
사지를 못하고 자기 방으로 와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사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또 철 없이 군 딸이 또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서 화해하라고 갔다가 더 한바탕 싸우고 반성문을 쓰라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이 쓴 반성문이 이거예요. 제가 남과 자꾸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좀 저가의 혹은 뭐 중간 정도의 휴대폰을 사지 않고
비싼 휴대폰을 사달라고 한 이유가 뭐냐 하면 뭐 해서 그래요 남들이 가지고 있는 거 하고 비교해서 그렇습니다.
친구들이 좋은 거 갖고 있었거든요. 형편에 맞지 않게 살아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썼습니다. 여러분 남과 비교하면 두 가지에 빠집니다.
열등감에 빠져서 비참해지거나 교만하고 우월해지거나 그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는 절대로 좋지 않습니다. 결과가. 그런데 우리가 비교를 해서 안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과거의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도 괜찮고 예수님의 모습과 자기의 모습을 자꾸 비교하시면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동정하는 일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마땅히 받을 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그대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대의 사업이 너무 어렵다는 등의 생각을 결코 갖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참으신 것을 생각하고 불평하는 생각을 일체 버려라.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것보다 더욱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여러분 지금 현대 심리학에 들어와 있는 중요한 이렇게 배치가 되는 게 뭐냐 하면 자기를 부인해야 되느냐 자기를 사랑해야 되느냐 어떻게 생각하셔요 어느 게 맞을 것 같아요?
어느 게 성경적일 것 같아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자기를 부인하는 것
그 많은 현대 심리학은 자기를 사랑해야 된다고 그래요.
자기를 사랑해야 누구를 사랑한다? 남을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남이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누가 자기를 사랑하면 된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면 된다.
여러분 이거 굉장히 달콤하거든요 그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성경은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아요. 디모데후서에 보면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자기를 뭐 한다고요?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1-2)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4)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를 더 사랑한다고 그랬거든요. 그럼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이야 하 하지 마라는 말이에요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성경은 자기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자기 부인을 가리킵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니까 나도 나를 사랑해야지 굉장한 달콤한 유혹인데 거기에 빠지면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이 굉장히 위험한 심리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동정해요.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연민합니다.
왜? 남이 자기 무시하니까 그런데 자기를 동정하면 한 없이 거기에 빠져버립니다.
여러분 그때 우리는 뭐 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무슨 대접을 어떻게 받았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그거 비교해 봐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옷을 입고 오셔서 대접 대우 받으셨어요 안 그러셨어요 못 받으시죠 그렇죠 그럼 우린 그분을 따른다고 그러잖아요 지금 그럼 그분을 따른다고 하면서 우리는 자꾸 뭐 받고 싶어요 우린 대접 받고 싶어요 바른 생각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대접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올바른 생각이 아니에요. 그건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넓은 길이 아니고 뭐라 그래 좁은 길이 그래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꽃길만 걸으세요.
여러분 인생이 어떻게 꽃길만 걸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꽃길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에요.
그 길을 먼저 가셨고 그걸 따라오라 그러지 꽃길로 가라.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기가 뭔가 대접을 잘못 받을 때 있을 때 자기를 연민하지 말고 자기를 동정하지 말고 예수님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굉장히 높은 사람이 대접 못 받는 걸 보면 어때요?
야 저 사람이 저런 대접 받는데 내가 뭘 하고 자꾸 이렇게 대접 받으려고 하나 이 생각이 들까요 안 들까요?
여러분 그때 우리가 받는 대접이 그렇게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못 받아도 뺨 맞지 않잖아요 그렇죠?
혹시 누가 우리를 무시할 때 침 뱉나요? 온 몸을 발가벗겨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은 침 뱉틈을 당했고 뺨을 맞았고 발가벗김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그걸 자꾸 비교해 보면 우리가 받는 대답은 대접은 굉장히 고급스러운 대접이에요.
자꾸 예수님하고 비교해 보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 66건 중에서 자꾸 예수님과 비교하는 책이 하나가 있는데 그 책이 무슨 책이냐 하면 히브리서예요.
그래서 히브리서의 별명이 있는데 두 가지가 있습니다.
더 나은 복음서 다른 말로 하면 더 좋은 복음서라고 하는 게 히브리서 별명이고 제 5 복음서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4 복음서인데 다섯 번째 복음서라는 이름으로 제5 복음서라는 이름이 있고 더 나은 더 좋은 복음서라는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서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 보통 바울로 이해하는데 구약의 예배 제도와 구약의 제사 제도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제사 예배를 또 비교합니다.
1장에 보시면 이때까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말씀하셨는데 말세에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래서 더 나은 계시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를 이야기합니다.
밑에 보면 더 나은 이름 천사보다 더 나은 이름 그리스도 이야기합니다.
더 나은 지도자 히브리서 3장에 모세와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그 모세와 여호수아보다 더 나은 지도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걸 이야기합니다.
더 나은 제사장 구약의 인간 대제사장이 아니고 더 나은 대제사장 더 나은 제사장 직분 더 좋은 소망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언약의 중보 이 땅의 성소보다 더 나은 하늘 성소
더 좋은 약속 더 나은 언약 더 나은 재물 황소나 염소나 뭐 그런 희생 제물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혈 더 나은 나라 영원한 나라 더 좋은 본향
아브라함이 그의 고향 우르를 떠나와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 본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거지.
고향으로 어디를 생각하고 저 하늘에 있는 더 좋은 본향을 생각하고 갈 데가 우루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더 나은 더 좋은 부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에 사람들이 그 고난을 받으면서도 더 좋은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고난을 견뎌대.
더 나은 도성 더 좋은 픽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굉장히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더 낫다 비교급이거든요. 자꾸 비교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히브리서를 가지고 우리 성소 이야기를 좀 살펴볼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왜 기록이 되었느냐 여기 윌리엄 존슨이 쓴 <영혼의 닻 같아서>라는 책 이렇게 기록합니다.
“정작 그들의 문제는 피곤에 지쳐 열종이 식은 것에 있었대.
그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데 지쳐 있었고 그리스도인 본연의 의무를 테마니 했고 그들이 믿는 종교의 가치에 의문을 품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운 시기가 닥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서 그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사도의 메시지는 영적 피곤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
여러분 이 히브리서가 언제 기록돼 있는가 하면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망하기 전에 기록이 됐습니다.
AD 약 칠십 년 전이에요. 그래서 여기에는 예루살렘이 뭐 어떻게 위험하다 뭐 이런 이야기가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때가 1이 31년입니다.
약 그러니까 40년 가까이 흘렀어요. 이 히브리서가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하면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 그러니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편지예요.
그 사람들이 한 40년쯤 신앙 생활하면서 야 예수님 올라가시면서 우리 데리러 온다고 그랬는데 왜 안 오시지 약간 지쳐 있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영적으로 좀 피곤해졌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고 어떤 분이고 그분을 믿는 신앙의 가치는 어떻고 하면 안 되고 떠나서는 안 되고 높은 데까지 자라야 하고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그러니까 우리가 피곤하고 지친다고 해서 아무렇게 해야 되는 그 신앙이 아니다라는 것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의 이 편지를 받는 독자들의 시선을 하늘 성소로 이끕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AD 70 년에 비참하게 로마의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아주 존중하던 그런 대제사장 제사장들이 비참하게 포로가 되고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인간 성소와 인간 제사장은 죽고 멸망될지라도 하늘에 죽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는 대제사장 그리스도가 계시고 하늘 성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히브리서가 기록이 돼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너희들 앞에 앞서 간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이제 집약해 놓은 것이 히브리서 11장이요.
이 사람들이 약속을 봤대. 그걸 다 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러면서 그들이 믿음에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히브리서가 기록이 돼 있어요.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의 눈을 하늘로 모으기 위해서 히브리서가 기록이 된 것입니다.
오늘 저는 히브리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살펴본 건 더 나은 성소 하늘에 있는 성소죠 잠깐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70년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된 것을 내다보고
파괴되지 않는 성소 성전이 하늘에 있고 죽지 않는 제사장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 히브리서에 그럼 그 하늘 성전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부분을 살펴보기 전에 요한 계시록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요한이 계시를 보고 기록한 책이 요한 계시록이에요.
요한이 어떻게 계시를 기록했는가를 좀 이해하면 요한 계시록도 이해가 쉽고 하늘 성소를 이해하는 것도 개념이 잡힙니다.
이거 예를 든 거예요. 하늘에 뭔가 요한이 예언 계시를 보면서 실제가 이랬다.
이게 이거는 아무 의미가 아닙니다. 뭐 실제를 나타낼 때 하나님은 요한에게 계시를 통해서 실제를 보여준 게 아니었습니다.
실제가 실제를 확실하게 단순화시켜서 의미를 부여해서 실제에 대한 상징을 보여줬습니다.
요한은 실제에 대한 상징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요한은 계시를 보면서 실제를 본 게 아니고 실제가 존재하는 것의 상징을 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하나님 보좌 곁에는 그룹 천사들이 있습니다. 굉장히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사들이 있는데 그 하나님 보자 곁에 그룹들 천사들은 요한에게 어떤 식으로 계시가 보여졌는가 하면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사람 같고 독수리 같은 내 생물 이렇게 나옵니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이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가 한 개체에 있어요.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다. 이게 에스겔 1장 6절에 나옵니다.
그럼 계시록하고 에스겔 하고 좀 달라요.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사람 갖고 독수리 같은 게 각각 네생물이 있는데 에스겔서는 이게 합쳐져 있어요.
근데 이 존재가 뭘 가리키는가 하면 하나님 보좌 곁에 그룹들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사자 같다. 사자는 굉장히 용맹한 짐승의 상징이거든요.
송아지 같다. 여러분 손은 어때요? 굉장히 근면하고 부지런합니다.
사람 같다. 뭐예요? 지성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의 뭐 독수리는요 굉장히 빨리 날으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신속하게 그러니까 이 천사의 특징이 뭐냐 하면 굉장히 용맹하고 부지런하고 지성적이고 굉장히 신속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천사의 모습을 이런 모습으로 요한에게 보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여지는 게 하늘에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요한이 본 그 계시 속에 실제는 하나님 보좌 곁에 있는 찬란한 천사들이 있는 거지. 그룹 천사들이 실제가 존재하는 것의 상징을 요한이 봤다 이 말이에요.
또 보면 요한 계시록 5장에 보면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손에 뭘 들고 오른손에 뭘 들고 있냐 하면 안팎으로 글자가 가득하게 적혀 있고 일곱인이 박힌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있어요.
근데 그걸 뗄 사람이 없어. 그래서 요한이 울어요.
그때 장로 중 하나가 울지 마라 이걸 뗄 존재가 있다.
다윗의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합니다.
신성의 제2위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때 요한 계시록 5장에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가 하면 이렇게 나와요.
일곱 별이 있고 일곱 눈을 가진 어린 양이 나와요. 계시록 5장 6절에 여러분 양 보셨죠 양에 눈이 몇 개 있어요 여러분 양에 만약에 눈이 일곱 개면 어떻게 돼?
괴물이지 양 뿔이 몇 개예요? 두 개지. 근데 양뿔이 일곱 개면 어떻게 돼요?
그 이상한 괴물이죠 근데 요한의 눈에는 이게 보였다는 것이에요.
보였기 때문에 요한은 기록했어요. 여러분 성경에 예언서에 뿔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권세 눈은 지성을 상징해. 통찰력 그러니까 일곱은 완전한 수로거든요.
그 완전한 권세와 완전한 통찰력을 가지신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보여주는 거예요.
하늘에 일곱 뿔이 있고 일곱 눈 있는 어린 양 있게요? 없게요?
없어요. 하늘에 없어요. 그러나 요한에게는 그게 보여졌다 이 말이에요.
실제가 존재하는데 실제를 상징하는 것을 요한에게 보여줬어요.
그러니까 계시록이 어려운 이유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신성의 2위이신 예수님 어린양 하지 말고 일곱 뿔 일곱 눈 이렇게 하지 말고 예수님이 보여주면 계시록이 굉장히 쉬운데 일곱 뿔 일곱 눈 이게 다 상징이기 때문에 계시록이 어렵게 보이는 거예요.
근데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 이 계시록에 기록된 많은 부분들이 스가랴서나 약 500 구절 이상이 전부 다 구약 성경을 인용한 거예요.
그러니까 계시록은 많은 이단이나 이설이 뭐 때문에 생기는가 하면 계시록 때문에 생겨요.
신천지도 계시록 때문에 생긴 거거든요. 근데 계시록은 밑도 끝도 없이 그 구절을 해석하는 게 아니고 그 성경 구절들은 전부 다 구약하고 비교를 해야 그 본래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계시록 하는 시간은 아닙니다. 어쨌든 요한이 계시록 본 것은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하나님이 그대로 보여준 게 아니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을 보여줘서 요한이 기록했다.
그 상징을 푸는 게 계시록의 핵심이에요. 자 그러면
성소는 누구한테 보여줬는가 하면 모세에게 보여줬어요.
모세도 계시를 봤는데 시내산에 올라가 가지고 모세도 계시를 그렇게 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하늘 성소가 어떻게 실제 하는 부분이 있는데 하나님이 하늘 성소의 실제를 보여주지 않아요.
어떻게든지 그 실제에 대한 모양 성경대로 하면 식양 양식 영어로 하면 패턴 그걸 보여줘요.
모세는 그걸 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5장에 두 번이나 9절과 4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너는 산과 이 산에서 시내산입니다. 시내산에서 내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양식이라는 말은 식양이라는 말하고 같은 말이에 뒤집어도 되는 단어예요.
똑같은 단어입니다. 여기에 모양 모양 양식 전부 다 히브리어로 tpit라는 단어인데 이 타브니트라는 단어는 원본이 존재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뭐냐 하면 보고 그거대로 한 거예요.
근데 똑같진 않아요.
여러분 제가 이 성경을 다른 건 안 갖고 있지만 히브리서 8장에 보면 하늘 성소는 이 땅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라 그래요.
모형과 그림자 여러분 설날이나 추석에 예쁜 고운 한복 입으면 그림자 색깔이 어때요?
색동 옷 한복 아름답게 입어도 그림자는 다 색깔이 무슨 색깔이에요 똑같아.
다 검정색이야. 그러면 그림자를 보고 색동 옷을 분간해 낼까요 못 낼까요?
못 내요. 그림자는 그림자기 때문에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닮았어요 자식이 부모를 닮았어요 자식이 부모를 닮아요 그렇죠?
부모 보고 나서 야 자식을 닮았다 그런 말 없어요. 자식이 부모를 닮은 거지.
그러니까 여러분 하늘 성소는 이 땅의 성소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이 땅의 성소를 보고는 왜냐하면 하늘 성소를 닮은 것이 이 땅의 성소이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님이 다 보여주지 않아요.
꼭 필요하여서 계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성소도 하나님이 꼭 필요한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모세는 그걸 받아 적어요. 기록해서
기술자들한테 주고 이 땅에 성소를 지게 만약에 하늘에 있는 그대로 그것이 사이즈도 똑같아야 된다면 성전의 사이즈나 성소의 사이즈는 다 똑같아야 돼요.
그렇잖아요 그렇죠? 그 사이즈대로 한다면 그러니까 그건 축소형 모델이에요.
왜냐하면 여러분 그림자는 실물보다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어요.
태양이 어디에 떠 있느냐에 따라서 머리 꼭대기에 떠 있으면 그림자는 굉장히 짧아요.
근데 서산에 지는 상황이 되면 그림자는 실물보다 훨씬 깁니다.
그래서 그림자의 사이즈를 가지고 원본의 사이즈는 못 체크해요.
그래서 여러분이 어쨌든 간에 이거 뭐 그걸 뭐 연구하는 것은 아닌데 어쨌든 하늘에는 성소가 실제로 존재한다.
근데 이게 이 땅의 성소대로 모양대로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 8장 1절 2절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에요.
대제사장은 조금 뒤에 살펴봅니다.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자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 와이타 하기야라고 하는 원어인데 이거는 하늘 성소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참 장막 스케인네라고 하는 이 장막도 역시 이게 72년에 보면 구약 성경을 가르킬 때 성서 전체를 가리키는 거예요.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예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이 장막은 누가 세운 것이다? 주께서 세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 성소는 사람이 세운 거거든요. 하늘 성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여기에 장막 이 구약 성경에 보면 장막 회
또 한 마디 하나 더 있습니다. 성소를 다는 편이 그거는 이동식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건물로 지어질 때는 성전 성 전 이렇게 표현하죠.
그 이동식 성전의 성소에 비추어서 말한 것이지만 하늘 성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하늘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사 계속 이걸 히브리서는 비교해요.
그래서 히브리서에 있는 하늘 성소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하늘 성소는 실제로 뭐 한다? 존재한다. 그리고 뭐 그게 어떻게 생겼냐 사이즈 사이즈가 어떠냐 이걸 말하지는 않아요.
지상에 있는 성소보다 하늘의 성소는 그 기능과 능력과 하시는 그것이 역할이 무하니 뭐하다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대.
그래서 이 땅에서 성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어떤 그 과정을 보고 하늘에서 어떤 것이 이루어지는지를 유추할 수 있어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거 하라고 이 땅에 성소를 주신 거거든요.
이틀 전에 트럼프가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전 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모든 나라들이 신경을 잔뜩 세우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예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인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여러분 세상 역사는 누가 움직여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 교육이라는 책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인류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은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무용 무용은 굉장히 용맹하고 뭐 이런 무용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트럼프 옆에 좀 붙어 있는 굉장히 또 기업인 하나 있습니다.
그렇죠? 일런 머스크 뭐 이 사람 옆에 붙어 가지고 이제 가상화폐라든지 무슨 어떤 저 우주 산업 그래서 뭐 공약을 하나 걸었더만요.
화성에다가 미국 성조기를 꽂겠대. 그래서 우주 산업을 또 막 열심히 할 거라고 뭐 옆에 한 사람이 붙어 있습니다.
세상은 누가 움직여 가는 것처럼 보이냐 하면
위대한 정치가나 위대한 기업인이나 돈 많은 사람이나 뭐 장군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여 가는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 가지 사건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득에 의하여 꼴지어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휘장이 열려 있어서 거기에서 우리는 무대의 상부와 배후는 물론 자비가 충만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인간의 이해관계와 권력과 욕망 일체의 승부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러분 성경을 탁 펼치면 이 세상은 대통령이나 왕이나 기업인에 의해서 움직여 가고 있지 않고 하나님이 움직여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특별히 다니엘스를 보면 그래요. 느브가네 살이 막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뭐예요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서 제국을 바꾸고 왕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권력과 권세를 주어서 통치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게 다니엘서예요.
여러분 연극 보신 적 있습니까? 연극을 보러 가면 주로 무대에서 우리는 관객들은 봅니다.
무대는 주가 누가 많이 나오는가 하면 배우들이 나오죠.
그중에서도 또 주연 배우 주인공들이 가장 많은 이 분량을 차지합니다.
여러분 근데 그 무대 너머에 뭐 뒤든지 다른 공간에 분장실이라든지 대기실 같은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있겠죠 대사도 외우기도 하고 분장하기도 하고 뭐 배고픈 사람 음식을 먹기도 하겠고 그렇게 막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그곳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감독입니다. 연출가 물론 대본이 있겠죠 그러면 여러분 감독은 무대 위에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입니다. 감독이 무대 위에 보인다는 건 뭘 뜻하죠?
연극 끝났다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에 감독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감독이 보이면 연극 끝났다는 거예요. 감독은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안 올라옵니다.
무대에 그냥 보이지 않는 곳에 감독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이 세상 역사는 왕이나 대통령이나 기업가나 힘 있는 사람이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있는 분은 누구예요?
하나님이에요. 그분은 감독이에요. 물론 대본이 주어져서 사람들을 다 외우게 해 가지고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그렇게 되진 않아요.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주어서 선하게 사용하도록 인도하시지만 이 세상 역사를 움직여 가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셔요.
그래서 하나님은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여요. 왜?
보이면 이상하니까 무대에 감독 나오면 이상하잖아요.
근데 감독이 나올 때가 있어요. 끝날 때 나옵니다.
이 세상 역사가 끝날 때 감독이신 그 하나님이 예수님이 등장할 겁니다.
그게 재림이에요. 여러분 그때 예수님이 등장할 때에는 변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올 거예요.
왜냐하면 초림하셨을 때는 변장하고 왔거든 저 갈릴리의 목수의 아들로
그렇게 오셨지만 영광의 빛을 다 이 육신의 몸으로 가리고 오셨지만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영광스러운 그 몸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제일 힘이에요. 그때 우리가 그분을 잘 믿을까 어떻게 할까 그걸 선택하는 건 늦어요.
왜? 그때는 결정의 때가 아니에요. 그때는 내가 지금 결정한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받는 날이에요.
지금은 결정을 언제 하는 거예요? 지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늘은 오늘 우리한테 별로 가까이 있지 않는 것 같아요.
하늘 지성 하늘 성소든 하늘에서 뭐 움직여가고 있는 것들이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늘에 영향을 미치고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 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성경의 역사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이냐 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죄를 짓거나 혹은 실족하거나 이렇게 되면 하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그분과 관련된 일들이 나한테 영향이 미쳐져 와야 참된 그리스도인이에요.
하늘에서 뭔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 생각도 없고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쳐오지 않는다면 하늘과 별개로 관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우리 근데 그리스도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연말에 한 조그마한 교회에 교인들 몇 몇 명 안 되는 제가 주말 부공회를 갔던 한 교회 여집사님이 보내온 문자예요.
목사님 안녕하세요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우리 교회는요 열세 분이었네요.
전 교회는 열세 명이야. 강원도에 아주 조그만 교회 우리 성도들이 조금씩 변화가 되니까요.
영혼들이 막 옵니다. 여섯 분 중에 한 부부도 새로 왔습니다.
전체 교인이 열세 명인데 새로 온 분이 여섯 명이에요.
몇 프로 성장한 거예요? 오십 프로 성장한 거예요.
그런데요 식당이 두 개가 있어도 좁아요. 조금은 넓은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도만 했습니다.
교회가 돈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불이 났습니다.
또한 신기한 것은요 불 타는 곳 바로 옆에 가스통이 있었는데요 그 가스통이 폭발하지 않았다는 것이 천사가 지켜주신 것 같아요.
불은 났지만 감사해요. 주님께서 또한 도와주실 것을 믿으니까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교회는 안 다녀도 10만 원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합니다. 인사를 몇 번이라도 하니까요.
어머니가요 이제 감사하다고 그만 말하라 하셨지요.
정말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불도 누가 발견했는가 하면 오신 손님이 화장실도 밖에 있어요.
그러니까 화장실에 가다가 보니까 식당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거예요.
다 타버렸어요. 근데 그 안에 게스 통이 있었는데 폭발이 안 됐어요.
그러니까 식당만 다 타버렸어요. 근데 이게 재림 신문에 보도가 됐어요.
막 전국에서 헌금들이 들어와. 그러니까 지금 식당 뭐 하려고 하고 다시 짓는다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굉장히 이상해요. 그렇죠?
근데 이 교회가 준비가 됐어요. 교회들이 얼마 안 되는데 사람들이 자꾸 모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 교회가 기도만 한 거야. 식당이 너무 좁은데 이거 좀 넓혔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일하고 있다는 거지. 하늘이 지금도 이 땅에서의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성도들의 하늘은 반응하고 그 하늘에 반응하는 성도가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찾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선을 거기에 두고 살아야 여러분 하늘은 굉장히 먼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 사랑하는 대상이 멀지 않아요.
오늘 우리는 하늘에 대한 이 소망을 두고 살아야 돼.
그게 모양이 어떻게 생겼고 그거 몰라도 돼요.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박지성 선수 한 명 때문에 한 축구 팀 자체가 뭐예요?
보는 관점이 달라져 버렸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이 동네 교회에 정말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하고 마음이 맞는 한 사람만 있으면 이 동네 교회 분위기나 동네 교회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 버립니다.
참 그게 좋은 교회 근데 여기서 부딪치고 여러분하고 갈등이 생긴 사람 한 명만 있어 봐요.
동네 교회 생각하면 어떻게 돼 어 이상한 교회 이렇게 된다니까 마음 맞는 사람 한 명이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그 공동체 전체가 마음에 드는 교회가 되고 마음에 안 맞는 사람 한 명이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전체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한 사람의 역할이에요.
우리도 다른 누구에게가 그런 선한 영향력을 줄 수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도 선한 영향력이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고 살아요.
하늘의 성소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 그러면 그곳에서 봉사하시는 제사장은 인간 제사장과는 다른 더 나은 제사장 더 나은 대제사장 그리스도인 것을 히브리서는 계속 이야기합니다.
왜? 이 제사장이 에디 70년 로마의 침공 때 다 죽을 거거든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고 제사장이 죽고 실망할 때 너희들은 눈을 들어서 하늘에서 너희를 위해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봉사하는 그 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걸 제가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히브리서 5장은 인간 대제사장과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을 비교합니다.
비교하는데 교차댓구법으로 비교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죠.
1절 에는 옛 대제사장 직분을 이야기합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지 않은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하면서 옛 대제사장 직분을 이야기하고 2절과 3절에서는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이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대속죄일 그 봉사를 들어가면 자기를 위한 속재 재물을 먼저 들인 다음에 회중을 위한 속재재물을 드려요.
왜? 자기도 중보자가 필요한 연약한 인간이거든요.
그 이야기 합니다. 인간 대제사장이 백성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게 2절 3절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아론의 후손만이 대제사장으로 세워진다는 게 사절이 이게 인간적으로 이야기를 한 다음에 이거를 a b c c 다시 b 다시 a 다시 이게 교사 대구법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중간에 와 있거든 이런 식으로 히브리서 5장에 기록됐다는 것입니다.
시다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으로 세워진 이야기 그다음에 대제사장 그리스도가 고난을 통해서 자기와 백성을 동일시 하는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차원의 대제사장 직분이 9절 10절 멜기세댁의 반찰을 따르는 이야기 나옵니다.
자 그러면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대제사장은 어떤 대제사장이냐 첫 번째는 자비하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이 신실하다는 말은 충성스러운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합니다.
근데 이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을 이야기하면서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그가 어떤 성결 조건을 갖추었는지를 가졌는지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먼저 뭐가 됐다는 거죠? 인간이 됐다는 거예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 중보하는 백성들의 형편과 상황을 안다는 거죠.
그다음에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분이 대제사장이 되는 성결 조건이에요. 제가 성육신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아시니까.
자 그러면 여기 히브리서 4장 15절에 16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이중 부정입니다. 동정하시는 분이다. 절대적으로 우리를 동정하시는 분인데 그다음 말이 뭐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자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예수님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어요.
이 이야기 학생들한테 하면 예수님 기 때도 게임기 있었습니까?
왜냐하면 학생들은 게임이 굉장히 시험이거든요.
여러분 예수님 결혼했어요 예수님 배우자 때문에 시험 받았을까요?
우리는 봤거든요. 여러분 예수님 자녀 때문에 시험 받으셨을까요?
자녀가 없는데 우리 교인들이 우리 살아가면서 자녀 때문에 시험 받는 거 많잖아요.
그럼 예수님하고 우리하고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모든 일에 똑같이 시험을 받았냐 이 말이야.
이건 그 말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우리와 모든 일에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시험의 본질이 뭔가 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내용 돌이 떡이 되게 하라부터 시작해서 모든 시험의 본질은 자기 뜻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는가가 시험의 본질이에요.
빵의 문제가 아니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문제가 아니고 내 명예 내 인기 내 욕망 그걸 그대로 갖고 사느냐 그러면 그게 사탄이 원하는 시험에 걸려드는 거죠.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가가 시험의 본질이에요.
그게 먹는 거든 먹고 사는 문제든 인기 문제든 세상에 뭐 문제가 그게 자녀와 관련되었던 배우자와 관련되었던 그래서 여러분 세상에 서점에 한번 나가 봐요.
다 뭐예요? 네 원하는 대로 살아. 그러니까 세상은 자꾸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다.
그래요 여러분 그럴까요? 여러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축복일까요 행복일까요 불행일까요?
아일랜드 극작가였죠 192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조지 버나드 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는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얻는 것 그 두 가지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사람들은 비극이라 그래 불행이라 그래.
근데 원하는 것을 얻어도 비극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셔요 여러분 이게 잘 이해가 안 되면 로을 생각해 봐요.
로은 원하는 거 얻었어요 얻었죠 그렇죠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하고 그의 목자들 사이에 풀이 부족했어요.
목초지가 다투었습니다. 그 그래서 아브라함이 먼저 선택을 하면 촌수나 그다음에 나이나 지위나 재산의 정도를 봐서 그가 훨씬 더 먼저 선택할 권한이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그걸 조카한테 먼저 줍니다.
그때 조카가 쫙 바라보니까 요단들 굉장히 비옥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팔레스타인에 가보시면 팔레스타인은 그렇게 물이 많지 않아요.
그 요단강 주변이 비옥한 곡이에요. 그거 가고 싶었거든
그러면서 여러분 처음부터 요 저기 롯은 소돔으로 가지 않아요.
처음에 요단 들을 택해서 점차 점차 소돔으로 들어갑니다.
여러분 소돔을 택한 로의 결과가 뭐예요? 안에는 소금 기둥이 됩니다.
그리고 두 딸 사이에 뭐 자기와의 사이에 두 자식이 태어납니다.
모합과 그 모합과 암몬니 로스의 손자예요 아들이에요 굉장히 족보 이상하죠 자기가 낳았으니 손자예요 아들이에요 자기 딸이 낳았으니까 손자예요 비극이에요 희극이에요 비극이에요 여러분 롯이 만약에 몇십 년 후에 상황이 그렇게 쫄딱 망할 줄을 알았더라면 로이 소돔 땅에 들어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안 가지죠 맞아요 여러분 우리가 원하는 것이 행복을 주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아요.
여러분 배우자나 자녀나 누구한테 속에서 이런 게 올라온다고 한 마디 속 시원하게 한 번 하고 싶은 말 뱉어봐.
그때는 속 시원해요. 그리고 나서 후회된 적 있어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의 행복의 비결이지만 성경은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자기를 부인하라는 거예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것이 하나님 그래서 존 메가드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목사는 우리의 부르심은 자기 만족을 위한 부르심이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도움을 주시되 언제나 그들이 선택하는 대로가 아니라 선택은 이 원하는 거예요.
그들에게 피로 되는 것을 주시는데 이는 사람들이 근시안적이어서 무엇이 그들에게 최고로 유익한지를 분별할 수 없는 까닭이다.
자 하나님은 우리한테 원하는 것을 주셔요 필요한 것을 주셔요 필요한 걸 줍니다.
하나님 우리가 원하는 걸 주지 않아요 필요한 걸 줍니다.
근데 여러분 원하는 거 하고 필요한 거 어떻게 구별하실래요?
애들을 마트에 데리고 가 보셔요.
장난감 코너를 딱 지나가면 집에 장난감 많아요. 근데 눈에 장난감 좋은 거 싹 들어오면 어떻게 돼 또 사달라고 떼 쓰거든요.
여러분 자기가 원하는 것이 굉장히 강렬해질수록 그게 자기 생각이 무슨 생각으로 바뀌어 버리면 나 저거 필요하다 이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그게 우리가 또 필요한 줄 알아요? 아니요 여러분 우리는 뭘 원하고 뭘 필요로 하는지 잘 몰라요.
그 하나님이 알아요. 왜 우리는 근시안적이어서 나한테 필요하지 않는 것도 우리는 구해요.
로은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세상의 욕망을 구했습니다.
왜 근시안 적이었어 소돔이 그렇게 죄악적으로 타락했고 자기의 몇 십 년 뒤에 인생이 그렇게 쫄딱 망할 지를 근시안에서 못 봤어요.
그 택했어요. 불에서 거슬린 나무처럼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이 로시 그 하나님 이거 안 한다 이 말이야.
여러분 그래서 오늘 우리가 뭘 기억해야 되는가 하면 시험은 시험은
오늘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서도 니 뜻을 부인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네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 시험의 사탄의 시험의 본질이 그게 자녀와 관련될 수도 있고 이게 배우자와 관련될 수도 있고 이게 내 식욕과 관련될 수도 있고 어떤 것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어도 그러니까 상황은 다른데 시험의 본질은 똑같은 거예요.
맞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의 본질은 가장 큰 거는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러 하셨는데 사탄은 거기 속 사귀는 거야.
야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너가 십자가를 빌 필요가 없다.
끊임없이 십자가에 메어 달렸는데도 밑에서 모욕적인 말을 해서 십자가 이거 내려놓고 내려오도록 만든 게 사탄이 그때 예수님은 끝까지 끝까지 자기의 뜻을 굴복합니다.
아버지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
나이들 여러분 그게 시험의 본 그렇게 되면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때요? 주로 통과해요 잘 잡아져요 우린 자주 넘어집니다.
그래서 그 시험을 통과하신 그분이 자주 자주 넘어지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여러분 근데 예수님이 겪은 거 하고 우리가 겪은 시험의 본질은 똑같지만 시험의 강도는 천지 차이에요.
여러분과 저한테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건 시험이 돼요 안 돼요?
네 안 돼요. 우리는 그 능력이 없으니까 근데 그분한테는 그게 시험이에요.
왜? 그분의 능력이 있으니까 여기 보셔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매 초를 사는 것은 마치 새 차를 산 사람이 긴장하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희미한 글킴이나 아무리 작은 흠집이라도 그분의 사명 전체를 좌초시킬 것이었다.
그대가 걷는 한 걸음이 온 인류의 구원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런 의식을 가지고 어찌 삶을 통과하고 싶겠는가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가 처한 메일의 운명이었다.
여러분 중고차 많이 긁기고 여기저기 차 박힌 차 끌고 가다가 운전하는 거랑 세차 금방 뽑아가고 운전하는 거 긴장이 어떻게 달라요 세차 다 몰고 가서 파킹 시켜 놓으면 이거 누가 와서 부딪치지는 않을까 끓을까 아닐까 굉장히 신경 쓰입니다.
옆에 누가 와도 막 확 피하고 근데 여기저기 끓기고 막 부딪힌 차는 뭐예?
그냥 가다가 부딪히면 부딪혀라. 사람이 그렇게 돼요.
여러분 예수님은 단 한 번 실수하면 구주로서의 자격이 없어져요.
눈빛 하나 행동 하나 마음에 먹은 생각 하나와 죄와 타협하는 순간 구조로서의 자격은 없어진다 이 말이에요.
그럼 그분이 그 모든 것을 이겨야 그럼 그분이 처한 시험의 강도는 날마다 우리는 밥 먹듯이 죄 짓고 무너지고 또 넘어지고 그렇게 하는 우리가 대면하는 시험에 차원이 다르다.
이 말이 여러분 이거 보세요. 종종 지진이 납니다.
지진이 나는데
지진이 났을 때 그 지진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는 무너진 건물은 지진의 강도를 몰라요.
지진이 7 일어났다. 근데 3 4 5 쯤 흔들릴 때 이게 무너져 버리면 뭐예요?
지진 7이라고 하는 강도가 얼마나 센 강도의 지진인지는 오나 삼에서 무너진 건물은 안다 모른다 몰라요.
그러면 어떤 건물만 지진이 7이 정말로 강한 지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무너지지 않고 그 지진의 칠에도 버티고 살아남은 건물은 지진 칠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는 거죠.
맞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 사탄의 시험에 무너지고 넘어져 버리면 그 시험이 얼마나 큰지 안다 모른다 우리는 몰라요.
왜? 중간에 넘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러면 그 사탄의 시험이 얼마나 세고 강한지를 알 수 있다면 그 시험을 뭐 해야 돼?
이겨야 통과해야만 그 시험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를 알아요.
누구만 알아요? 그 예수님만 아는 거예요. 왜? 예수님은 그 사단의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사십 일 굶고 식욕이 얼얼마나 강한지를 중간에 밥 먹은 사람은 뭐예 아 좀 힘들었다.
그 준으로 알지만 끝까지 견딘 사람만이 그 식욕의 시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아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하고 우리하고 시험이 본질이 똑같다고 해서 예수님이 우리하고 견딘 시험의 강도가 똑같다고 생각하시지 마셔요.
천지 차이입니다. 그 모든 시험을 다 견디셨기 때문에 그거 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시험을 우리가 겪고 있다면 도와줄 수 있다 없다 대학생 공부하는 사람은 초등학생 공부 가르칠 수 있어요 박사 공부한 사람은 유치원생 가르칠 수 있다니까.
물론 뭐 어떤 과목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그 시험을 통과하신 모든 방법의 핵심에는 하나님 말씀으로 이기셨다는 거죠.
그렇죠 기록되었을 때 2004년에 정희재라고 하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가족과 친척과 함께 지리산에 등산을 갔어요.
근데 어떻게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까 가족하고 친척하고 일행이 떨어져 버렸어요.
낙오가 됐어요. 밤이 됐습니다. 혼자였어요 무서웠어요.
초등학교 4학년 근데 그때 아버지가 해준 말이 생각이 났어요.
우리나라 산에는 사나운 짐승이 살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산에 갔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한테 이야기해 우리나라 산에는 사나운 짐승이 살지 않는다.
이 말에 용기를 얻어 가지고 아마 그 바깥에서 산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가방에 침낭이 있었어요. 그걸 꺼내 가지고 하룻밤 바위 틈에 끼어 가지고 하룻밤을 잤어요.
다음 날 아침에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데 또 아무도 못 만났어요.
두 번째 밤을 맞이했어요. 그날 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면서 무서웠어요.
그때 또 아버지가 해준 말이 생각이 났어요. 산에서 비를 맞고 잠을 자면 죽을 수 있대.
체온이 떨어져 가지고 아버지가 해준 이 말을 기억하고 침낭 뒤집어 쓰고 밤을 꼬박 새웁니다.
잠을 안 자요. 왜? 자다가 체온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다음 날 사십 시간 만에 산에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사람을 만나서 구조가 돼요.
초등학교 사 학년이 그 밤에 혼자 나 혼자 산에서 지리산에서 나고가 돼가지고 거기서 버틸 수 있었던 말이 누구 말 때문에 아버지가 해준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이 말이야.
우리나라 산에는 무서운 사나운 짐승이 살지 않는다.
그러니까 호랑이나 뭐 이런 게 없으니까 뭐 무섭지만 견딜 수 있었던 거지.
그리고 밤에 비를 맞고 자면 죽을 수 있으니까 꼴딱 세웠다니까요.
제가 이걸 기사에서 봤어요. 야 우리 신자들이 위기를 당하고 어려움에 당할 때 하나님 말씀이 떠올라질까?
떠올라지는 사람은 평소에 성경 본 사람이에요. 예희 씨는 읽은 사람이에요.
그렇죠? 떠올라져도 순종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첫 번째는 뭐 해야 되고 위기나 시련이 닥칠 때 어려움이 닥칠 때 성경 말씀이 또 올라야.
떠오르는 것이 또 중요하지만 그 떠오른 말씀대로 뭐 해야 돼요?
순종해야 돼요 여러분 이게
시험을 이기는 비결이에요.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그걸 요청하시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도 떠오르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데 그분이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모든 시험을 다 견디고 모든 시험의 본질을 견디시면서 그 어마어마한 시험의 강도를 이기시고 만반으로 준비가 된 그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데 내가 말씀도 기억이 안 나고 말씀을 붙들어서 순종할 마음도 없는데 어떻게 도와주겠냐 이 말이야.
우리가 믿는 대제사장 우리가 겪는 시험을 도와줄 수 있게 되기 위해서 그분은 인간이 되셨고 인간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굴복하고 사는 모든 시험의 본질을 굴복하시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의 강도를 통과하신 그 예수님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근데요 많은 신자들이요
시험에 딱 들면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일단 교회 안 나와요.
평소에 듣던 말씀도 못 들어. 그리고 평소에 성경도 잘 안 보지만 보는 성경도 시험이 닥치고 어려운 곤란이 닥치면 성경 안 봐.
그러니까 시험에서 이길 수 있겠어요 지겠어요 평소에 안 보다가도 고난이나 시련이 닥치면 뭘 더 봐야 되는데 보던 것도 안 보는데 나오던 교회도 안 나오는데 그거 어떻게 이기겠냐고요 어떻게 그분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냐고 뭔가 근덕지가 있어야지.
제가 집에 갔을 때 설교한 분이 이런 간증을 했어요.
술을 먹고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그리고 교회는 나왔어요.
술을 마시고 싶을 때 담배가 피고 싶을 때 술과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한 구절씩 외웠습니다.
한 구절이 길어서 다 못 외우면 한 문장이라도 외웠습니다.
그 일이 계속 반복되었을 술과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술과 담배를 밀어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우리하고 술 담배는 아무 상관 없을 수 있습니다.
근데 내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이 계속 들 때도 어떻게 똑같아요.
그때도 성경 말씀이 들어와야 그래서 그게 밀어내지.
여러분 용서하는 것도 열매고 사랑하는 것도 열매고 오래 참는 것도 열매입니다.
내 힘으로 용서하면 베드로처럼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째 날 말씀드린 것처럼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쯤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이거 내 힘으로 하는 용서예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자비하고 신실하신 분이고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의 본질과 강도를 다 통과하신 후에 우리를 시험 당하는 자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그분이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중보하고 있습니다.
힘이 될까요? 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너무 너무 잘 알아서 동정심이 만땅으로 있는 분이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한테 희망이 있는 거예요.
요 이야기 좀 하고 마치겠습니다. 멜기세득의 반차를 따른다는 말이 멜기세댁이라는 말이 성경에 세 군데 나옵니다.
창세기 14장 시편 110편 그리고 히브리서에 몇 번 나옵니다.
이거 잘 모르셔도 되는데 레위 계통 아론의 후손의 제사장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제사장이라는 것을 설명하는데 구약의 한 인물인 밀기 세댁을 차용합니다.
그냥 이건 여러분이 이런 게 있다라는 거 이야기하시면 되겠습니다.
첫 번째는 직분의 위대함이
히브리서 7장 1절에 보면 멜리기 세댁은 살렘 왕이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러니까 여러분 뭐 직분이 두 개예요.
밀기 세댁은 왕이면서 뭐예요? 제사장 이게 예수님 역할이에요.
제가 첫째 날 이야기했죠 하나님의 보좌에 우편에 앉으신 그분이 뭐예요?
하나님과 공동 통치자로서 왕의 역할을 한다고 그랬고 중보자와 강구자로서 대제사장 역할을 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만한 포지션에 있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여기 보면 멜기 세덕이라는 말의 뜻이 뭐냐 하면 멜레크 히브리 말로 왕이라는 뜻이에요.
째데크 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멜기 째데 멜기세덱이라는 이름 자체가 뭐냐 하면 의의 왕이라는 뜻이에요.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렘 왕 예루살렘 여러분 예루살렘이 뭐냐면 예루살렘은 동네라는 뜻입니다.
뭐 이렇게 마을 예 이르
살렘 샤롬 평강이에요. 그 예루살렘의 이름의 뜻은 뭐냐 하면 평강의 마을이라는 뜻이에요.
평강의 동네 평화의 동네. 근데 맨날 싸우잖아요.
예루살렘 평화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살렘 왕은 무슨 왕이다?
평강의 왕이다. 평화의 왕이다. 그러니까 이게 누구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름 자체와 그 포지션 자체가 뭐예요? 예수님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 첫 번째 직분의 위대함 왕이면서 제사장 아 레위 제사장하고는 좀 수준이 다른 제사장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메기 세대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냐 여러분 이런 사람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이런 사람들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건 기록이 없다는 거예요.
태어난 날도 모르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고 기록 자체가 없어요.
그러니까 마치 신비로운 아무 기록이 없으니까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성의 하나님인 예수님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줄 수 있는 거니까.
신분의 특이함 그다음에 영원히 항상 제사장으로 있대요.
그러니까 이 멜기세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는 다른 특별한 새로운 계통의 대제사장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데 약간 조금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차용한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상황이에요.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제가 이게 죄 부정으로 인한 이 매일의 봉사와 매년의 봉사는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꼭 좀 기억하실 것은 히브리서를 통해서 제가 두 가지 이야기했습니다.
더 나은 성소 그죠?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성소가 있고 거기에서 하는 봉사는 이 땅에서의 지상 성소에서 봉사와 그 모든 역할에 있어서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거기에 누가 계신다? 더 나은 제사장 더 나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비하고
신실하신 제사장 동정심이 많은 제사장 인간이 되어 보셔서 인간의 처지를 알고 계시고 인간이 되어서 인간이 겪는 모든 시험의 본질을 다 겪으시고, 그 모든 최종의 어마어마한 강도의 시험을 다 통과하셔서 자격을 갖추시고 시험 받는 사람을 능히 도우려고 준비하고 계신 대제사장 자, 이분이 이제 내일 살펴보면서 조금 더 더 깊이 들어가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 수 있고 그분이 뭘 하고 있는지는 하늘 성소 봉사를 통해서 내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여러분이 올 한 해 사시면서 이분이 하늘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계속 염두에 두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관계에 있어서 마음에 일어나는 아주 미미한 파동과 근심, 걱정이 전부 다 어디에 영향을 준다 하늘에 영향을 미치고 그분이 하시는 모든 중보 사업이 오늘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 와서 하늘과 연결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희가
히브리서의 일부를 통하여 눈을 들어 히브리서가 말하는 더 나은 성소, 하늘 성소, 더 나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의 눈을 향할 수 있도록 인도하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세상에 똑똑하고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통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의 휘장을 젖치면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묵묵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수행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인생도 세상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음을 기억하고 이 하늘 성소에 계신 예수님에게 우리의 믿음의 시선을 계속 고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이 자비하고 충성스러운 제사장으로서 우리가 겪은 우리의 모든 아픔의 본질과 그 강도를, 아픔을, 고난을, 시련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임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를 능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는 분임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늘 무너지고 넘어졌더라도
다시 한 번 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다시 한 번 능력의 통로가 되는 말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며 사는 우리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