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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지명에 대하여
1) 춘천의 지명유래(춘천은 예부터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었다)
소머리- 소머리는 쇠머리 솟을 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춘천지방을 소머리고장이라고 불렀다. 우곡(牛谷), 우곡성(牛谷成), 주양- 이 지명은 “삼국사기”에 백제 시조 온조왕에 의해 명명 됨.
우수주- 신라 선덕왕 6년(637)에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수약주- 문무왕 때 사용
맥국- “삼국유사” 마한조에는 “삼국사”에 명주에는 옛 예국이 있었고 춘주에는 맥국이 있었다고 했다. “춘주”는 전의 우수주이니 옛 맥국”
삭주- 신라 경덕왕 때, 오늘날의 함경남도 남부, 경상북도, 북구, 충청북도 북부를 총괄하는 행정, 군사의 행정구역이었다.
춘주- 고려 태조 23년(904) 오늘날에도 춘천을 춘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이 때부터이고, 춘천의 대표적인 이름이 되었다. 춘주로 개편하였으며, 성종 14년(995) 단련사를 두어 안변도호부에 예속시켰다. 그러나 길이 험난하여 왕래하기가 곤란하였기 때문에 선종 6년(1203) 최충헌이 안양 도호부로 승격시켜 안변도호부와 분리하였으나, 같은 해 다시 지춘주사로 강등되었다.
춘천- 조선왕조 태종 13년(1413)에 생겼음. 현재의 이름인 춘천으로 개편하여 군으로 하였다가, 태종 15년(1415)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후 인조 5년(1627) 도호부를 없애고 방어사 및 포토사를 두었다가, 영조 23년(1747)에 방어사가 철원으로 옮겨감에 따라 부사겸 좌영을 두었다. 그후 영조 31년(1755)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영조 40년(1764) 다시 도호부가 되었다. 이 때 춘천은 신라시대 고려시대에부터 이어온 영서지역 행정. 군사의 중심지역에서 제외되었다.
춘천유수부- 고종 25년(1885), 개항을 강요하던 때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 내륙지방에 임시수도, 또는 피난수도를 조성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정해진 피난궁이 춘천유수부였다. 이궁이 지금의 도청자리에 건립되었다. 하지만 이궁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인의 이목을 끄는 중요한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춘천관찰부- 고종 35년(1895), 강원도가 3개로 갈라질 때 하나의 관찰부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지되고 춘천은 관찰부 소재지로 정해졌다. 이 때 행정군사의 중심은 원주에서 춘천으로 완전히 옮겨졌다.
춘천군 부내면- 1913년 춘천군 부내면에서 1917년 부내면을 춘천면으로 개편하고 수원, 송도등 24개 지정면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1년 4월 1일 부령 제103호(1930. 12. 29 공포)에 의한 지방제도의 개편으로 춘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춘천읍- 1938년 읍 전역과 신남면 칠전리 일부를 포함하는 시가지 계획이 실시되었고, 1939년 10월 1일에는 부령 제169호(1939. 9. 30 공포)로 신북면의 우두, 사농리, 동면의 후평리, 신동면의 석사, 퇴계, 온의리등 6개리 행정구역 변경으로 신동면의 석사, 퇴계, 온의, 신북면의 우두, 사농, 동면의 후평동 등 6개리가 춘천읍으로 편입되면서 구역이 확장되었다.
춘천시- 1947년 6월 1일 군정 법령 제84호(1946. 5. 13 공포)로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고, 춘천군을 춘성군을 개편하고, 1949년 8월 15일 법률 제32호(1949. 4. 7 공포)에 의해 지방자치법이 시행됨에 따라 춘천시로 개편되었다.
춘천을 봉산, 수춘 등으로 별칭하는 것은 춘천의 진산인 봉신(봉의산)을 그대로 별칭으로 정한 것과 삭주. 광해주. 춘주. 안양. 춘천 등의 지명이 머리. 빛.봄. 시작. 등의 생명과 연계해서 별칭으로 정한 것이다.
-춘주문화 제16호 김영기(강원일보 논설주간) p.205-208
자연환경
춘천지역의 지형은 흔히 소쿠리 모양의 분지로 일컬어지는데, 그 분지의 북쪽에는 오봉산 줄기가, 서쪽에는 삼악산줄기, 서남쪽에는 봉화산줄기, 동남쪽으로는 대룡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루며 형성된 분지의 중심부에는 춘천지역의 중요 한 수자원인 북한강과 소양강의 두 줄기가 합쳐 흐른다.
춘천분지 북부를 둘러싼 오봉산지(五峰山地)에는 사명산(四明山, 1,198m)·죽엽산(竹葉山, 859m)·부용산(芙蓉山, 882m)·용화산(龍華山, 878m) 등이 있다. 동부의 대룡산지(大龍山地)에는 가리산(加里山, 1,051m)·대룡산(899m)·연엽산(蓮葉山, 850m)·구절산(九節山, 750m) 등이 있다.
분지의 서쪽 삼악산지(三岳山地)에는 응봉(鷹峰, 1,436m)·촛대봉(燭臺峰, 1,125m)·가덕산(加德山, 858m)·북배산(北培山, 867m)·계관산(鷄冠山, 665m)·삼악산(654m) 등이 있다. 남부 봉화산산지에는 검봉산(劍峰山, 530m)·고깔봉(420m) 및 좌방산(座防山, 502m) 등 비교적 낮은 산지가 있다.
분지 안쪽으로는 해발고도 약 300m까지 급사면을 이루나, 그 이하에서는 구릉성 산지와 산록완사면이 넓게 발달되어 있다. 이들은 위치에 따라 수리봉·마적산·구봉산·대룡산·금병산(金屛山) 산록완사면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분지 안에는 의암호 북쪽에 우두산(牛頭山, 140m), 호수 남쪽에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鳳儀山, 302m)과 국사봉(國史峰, 203m)·향로봉(香爐峰, 315m) 등, 호수의 서쪽에는 장군봉(將軍峰, 187m) 등의 잔구들이 있다.
춘천지역은 북한강과 소양강유역의 저지대를 제외하고는 대개 산악지형이어서 전체적으로 토양발달이 미약한 편이다. 하지만 북한강과 소양강유역에는 상류지대의 화강암이 침식되고 부서져서 하류로 운반되어 퇴적된 충적대지가 발달되어 있는데, 이곳의 토양은 부식함유량 이 높은 모래질 양토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적인 홍수 때문에 이루어진 모래질 충적토양은 배수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강 제방의 수생식물에서 얻어지는 상당한 양의 비옥한 부식토를 함유하고 있다.
하천은 분지를 중심으로 북동쪽에서 소양강, 북서쪽에서 북한강이 흘러 분지 안에서 합류하여 남서류하다가 홍천군과의 경계를 따라 서류하는 홍천강과 합류한다.
이 밖에 백운산(白雲山)에서 발원한 지촌천(芝村川)이 춘천호로, 북배산에서 발원한 덕두원천(德斗院川)이 의암호(衣巖湖)로, 청평산에서 발원한 청평천(淸平川)이 소양호로 각각 흘러든다. 매봉에서 발원한 공지천(孔之川)이 근화동에서 의암호로, 갑둔치(甲屯峙)에서 발원한 후평천(後坪川)이 후평평야를 형성하여 소양강으로 흘러든다.
봉의산은 춘천시 중심가 북쪽에 위치한 해발고도 302m의 산이다. 춘천의 진산(鎭山)으로 산세가 수려하고, 산 정상부에는 봉수대와 고려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석성(石城)이 있으며, 산 중턱에는 혈거지(穴居地) 및 고분이 발견되어 고대 맥국(貊國)의 도읍지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춘천분지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어서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에 알맞은 곳이다. 그래서 고려 고종 때인 1217년에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와 몽골이 네 번째로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1253년과 임진왜란 때와 한국전쟁 당시에도 큰 싸움이 벌어진 격전지이다.
우두산은 해발고도 133m의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우두산은 넓은 우두벌 평지에 솟아있는 일종의 고립구릉이다. 정상에는 1955년에 세운 충렬탑과 1938년에 옮겨 놓은 조양루가 있다. 과거에 우두사란 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용화산의 줄기가 뻗어 내리다가 우두벌에 이르러 멈추었는데 그 말단에 해당되는 곳이 우두산이다. 우두산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우두벌 동쪽에는 샘밭이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 모진강(북한강)과 동쪽으로는 소양강이 흘러 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두산 이란 지명은 하늘에서 내려온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천하의 명당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춘천의 옛 이름도 우두라고 한 경우도 있다. 우두산 북쪽에는 또 하나의 고립구릉이 있는데 이를 달마지봉이라 한다. 옛날에 달맞이에 공을 들여야 장가도 가고 아들도 낳는다 하여 사랑받던 곳이기도 하다.
가리산은 해발고도 1,051m의 비교적 높은 산으로 춘천시, 인제군, 홍천군의 두촌면과 경계지역에 위치하며,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소양호의 풍경이 그야말로 아름다운 곳이다. 계곡에는 조그만 폭포들이 있으며, 이 계곡과 능선을 따라 등산을 할 수 있다.
금병산은 춘천시 신동면, 동내면, 동산면의 경계에 해당되는 해발고도 652.2m의 산이다. 신동면 증리에는 1908년 1월 출생 후 가난과 실의 실연과 병고 속에서 30여 년을 살면서 1930년대 우리나라 단편 문학사에 귀중한 작품들을 남긴 작가 김유정의 출생지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에서 서쪽 개천길을 따라 싸리골 끝집을 지나 저수지 위에서 우측 길로 들어서면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동북 능선 길을 따라 약 1시간을 오르면 5거리 고개에 당도하게 되고 이곳에서 주능선길로 가면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을 지나서부터 능선은 키를 넘는 억새 풀밭이 헤쳐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성하다. 초원을 지나면 다시 제2광장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정상이다.
검봉산은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와 백양리 경계에 있는 해발고도 530.2m의 산으로 칼을 세워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칼봉 또는 검봉이라 한다. 강촌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바위산이 바로 검봉산인데 산세가 매우 날카롭지만 그리 높지 않아 등산 코스로 매우 적당하다. 강촌역에서 병풍바위를 지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 춘천 쪽을 바라보면 북한강과 그 양안의 도로와 철도가 보인다.
봉화산은 춘천시 남면과 남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86.8m이다. 홍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 역할을 하는 곳으로 남쪽으로는 가정천이 흘러 홍천강으로 흘러들며, 북쪽으로는 구곡폭포와 연결되어 북한강 본류로 흘러든다. 부분적으로 암석 노출지가 분포되어 있으나 대체로 토양 피복이 양호하여 삼림 형성이 잘 되어 있어 여름철에는 암석과 어우러진 짙푸른 녹음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에는 봉수대가 있어 외적의 침입을 알리고 방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구곡폭포는(九曲瀑布))는 아홉 굽이를 돌아 들어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47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도 장관이지만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 절벽의 경관 또한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폭포를 이루고 있는 암석은 원생대(5억 7천만년 전∼25억년 전)에 퇴적된 사암(砂岩)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그 성질이 변형된 변성암의 일종인 규암이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역에 계곡이 깊게 파이고 폭포가 만들어진 것은 단층과 습곡 등 지각운동으로 규암층 안에 발달한 층리와 절리가 발달해 있거나 규암과 성질이 다른 암석층이 만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곡폭포는 물리적 풍화가 잘 되지 않는 단단한 암석인 규암과 비교적 무른 암석인 편마암의 경계면을 따라 난 계곡에 발달한 폭포이다.
구성폭포는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청평사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청평사를 오르다보면 우측에 있는 높이 9m의 폭포이다. 아홉 가지 소리를 낸다고 해서 구성(九聲)폭포라 한다.
10m 높의 등선폭포(登仙瀑布)는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에 있다. 등선폭포 왼편 계곡을 오르면 비선폭포, 승학폭포, 백련폭포 등 크고 작은 5개의 폭포가 더 있다. 등선폭포를 이루고 있는 암석은 원생대(5억 7천만년 전∼25억년 전)에 퇴적된 사암(砂岩)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그 성질이 변형된 변성암의 일종인 규암이다. 등선폭포를 비롯한 5개의 폭포가 자리 잡고 있는 등선계곡은 삼악산 서쪽 흥국사에서 매표소까지 남북방향으로 발달한 규암층 내의 절리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북한강과 소양강 사이에 형성된 우두(牛頭)평야와 샘밭〔泉田〕 등은 기름진 충적지이다. 청평호 일부와 춘천호·의암호·소양호 등이 이 지역에 있는데, 이에 따라 청평호에 의한 남이섬, 의암호에 의한 위도·중도·붕어섬 등 하중도가 발달해 있다.
특히 소양댐, 춘천댐, 의암댐이 생기면서 인공호수로 인해 안개 일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져 농작물의 성장 발육에 다소 지장을 주게 되었고 호흡기질환, 관절환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는 주변의 산과 어우러져 낚시, 보트,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는 휴양지 기능을 갖고 있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북한강 본류와 설악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소양강은 춘천분지의 중심부에서 만나 하류로 흘러가는데, 북한강유역에는 지촌천, 지암천, 월송천, 금산천 등 의 소지류가 유입되고, 소양강유역에는 추곡천, 부귀천, 지내천, 만천천, 공지천 등의 소지류 가 유입되어 하계망을 구성한다. 두 강 유역에는 홍수기에 상류로부터 부유물을 많이 포함한 퇴적물을 신속히 운반시켜 이루어진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공지천은 춘천시 동내면과 동산면의 경계지인 응봉(일명, 매봉 759m)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신촌리에서 동쪽에서 오는 곰실내를 합류하면서 춘천시 남부를 흘러 의암호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삼포천은 춘천시 신동면 증4리에 있다. 춘천시 신동면과 동산면의 경계가 되는 금병산 능선이 이어져 있는 곳에서 발원한 조그만한 계곡 하천이다.
서천은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에 있다. 남산면과 남면의 경계가 되는 봉화산(486.8m)에서 발원하여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의암댐은 1962년 3월에 착공해 1967년 12월에 준공된 의암댐은 길이 273m, 높이 30m, 담수량 8천만 톤의 수력발전용 댐이다. 1967년 7월 28일부터 담수를 시작하면서 의암호가 탄생하였다. 의암댐은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진 신연강 협곡을 막아 건설한 것이다.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든 의암호는 춘천 시가지의 서쪽을 감싸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춘천호와 동북쪽으로는 소양호와 이어져 있다. 공지천과 만나는 의암호는 호수면이 폭 5㎞, 길이 8㎞의 타원형으로 옷 바위, 즉 의암(衣岩)의 이름을 따서 의암호라 했다. 춘천 분지를 흘러내리는 소양강과 북한강이 합쳐져 신연강이 되어 흐르던 강을 호수로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위도, 중도, 하도 등 섬도 만들어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들었다.
춘천댐은 신북읍 용산리와 서면 오월리 사이 북한강 본류 협곡에 댐을 축조하여 그 저수의 낙차를 이용하는 수력발전소이다. 한국전력이 시공 감독한 이 발전소는 공사비 26억 7천여 만 원, 공사 연인원수 209만여 명, 담수량 1억 5천만 톤, 발전량 5만 7600㎾, 댐의 높이 40m, 길이 453m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1965년 2월 10일에 준공되었다. 칼프링식 일제 발전기 2대로 5만 7,600㎾의 발전량을 갖추고 주로 서울 지역에 송전하고 있다. 춘천댐 축조로 260여 만 평, 건물 1,400여 동이 수몰되었다. 춘천호는 춘천댐을 축조한 후 이루어진 인공호수이다. 상류는 파로호 밑까지 이어진다.
춘천호 호수면의 수위는 해발 130m로 의암호의 수위보다는 31m 높다. 따라서 이 호수에 유입되는 수계유역(水系流域) 103m 이하의 농경지는 모두 수몰되었다. 수려한 협곡에 이루어진 호수로서 계곡모양에 따라 S자 모양으로 이루어졌으며 마치 협곡을 흐르는 긴 강처럼 보인다. 호수의 면적은 약 17㎢이다.
기후는 남북한의 중간적 현상을 보이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위치함으로써 내륙성 기후의 특성을 나타낸다. 또한 온도의 차가 심해 연평균 기온은 섭씨 10도 이나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의 혹한을 기록할 때도 있다. 평균 강우량은 약 1,250㎜이며 여름에 집중되어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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