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구간 (우두령-괘방령-추풍령) 2018.8.31.(금) 비
5시에 일어나서 살펴보니 신발이 많이 말라서 다행이다. 하지만 밖에는 계속되는 빗줄기다.
어제 해인산장 주인에게 6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5시 50분이 가까워지는데도 불빛이 없어 전화로 깨우니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산행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괜찮으니 준비해달라고 부탁한다.
아침에 콩나물국이 시원하니 맛도 좋고, 특히 김치에 무얼 넣었는지 시원하며 맛이 아주 뛰어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김밥까지 챙겼다.
우두령 터널에 도착하니 7시 20분이다. 터널 안에서 판초우의를 입으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7.30 우두령터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들머리에서 출발한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속에서 반응이 온다. 비는 오는데 이 일을 어쩌지.
계속 간다 해도 비를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쩔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보는 거사를 며칠 동안 한 번도 치르지 못했다.
거사를 치루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비속에 정신없이 걷다보니 870봉을 그냥 지나쳤다.
8.25 삼성산 바람재 2500미터라고 적힌 이정표가 있다.
자연산 느타리버섯이 보인다.
그리고 벤치에 누군가 잃어버린 장갑이 보이는데 찾아줄길 막막하네. 누군가에게는 귀한 장갑일 텐데.
9.04 여정봉
이곳 여정봉은 직지사 부속 암자인 삼성암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칭에 대한 특별한 유례는 없으나 ‘황악산으로 가는 봉우리’ 또는 ‘여행을 하는 노정 봉우리’ 등으로 해서 여정봉이라 불려지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고 되어 있다.
선답자가 무심코 직직하여 고생하였다는 글을 읽었는데 지금은 다행히 벤치가 그 길을 막고 있다.
급 오른쪽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예술작품이 기다리고 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빠르게 내려간다.
9.30 바람재 역시 자그마하게 글씨가 바람에 날리는 듯한 예술작품을 비를 맞아가며 한참이나 관람했다.
이런 게 바로 제대로 된 이정표라고 말하고 있는듯하다.
이곳 바람재는 예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풍령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곳으로, 산의 모습이 소의 머리를 닮았다는 우두령과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영남 유생들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속설이 있는 추풍령 대신에 주로 이용했다는 괘방령을 잇는 연결지점이라고 되어 있다.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오르니 제봉이다. 그리고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니 형봉이다.
10.15 형제봉
이곳 형제봉은 약 300미터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우뚝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우애 깊은 형제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 되어 있다.
10.40 황악산 (1,111)
이곳 황악산은 추풍령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으로 비로봉, 신선봉, 백운봉, 운수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줄기 중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큰산 악()에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다하여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오방색의 중앙을 가리키는 황()자를 따서 황악산이라 하며, 정상에 오르면 하는 일들이 거침없이 성공하는 길상지지()의 산이라고 되어 있다.
돌무덤이 있고 황악산 표지석이 두 개 세워져 있다. 안개가 짙어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황악산 정상에서 기를 받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그냥 고속도로다. 한참을 내려갔는데 직지사와 갈라지는 지점이 나와야 하는데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여 지도를 살펴보고 진행하니 바로 20미터 앞에 있다. 헐
11.31 등산로 정비구간이니 등산객들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을 무시하고 진행한다.
11.40 운수봉
운수봉을 지나서 봉우리에 올라선다. 이름이 없다. ‘대통봉’이라고 내가 이름을 붙여본다.
12.04 여시굴
이 곳은 여시굴산의 대표적인 여우굴(여시굴)로서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출몰하여 여시골짜기라 알려졌으며, 그로인해 여시골산이라고 불린다고 되어 있다. 괴산에 유명한 여유숲이 있는데.
12.18여시골산 정상석이 참 예쁘다. 자그마하면서도 이곳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정상석이다.
괘방령까지는 1500미터라는 이정표가 있다.
김밥은 있지만 비를 맞으며 먹기가 싫어서 괘방령에 혹시 식사를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니 된다는 여주인의 달달한 음성이 들려온다. 왜 이리 목소리가 상냥하고 예쁜지.
12.50 괘방령에 도착하니 왼쪽 편에 돌탑이 보이고 산장이 보인다.
이곳 괘방령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이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는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킬로 떨어진 곳에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미터의 낮은 고개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는 황악산이 아니라 황학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여주인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들어오라고 하는데 온몸이 젖어서 우선 밖에 있는 테이블에 젖은 것들을 널고,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짜서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된장찌개, 돼지찌게, 깻잎무침, 계란부침, 오이무침, 구운 김에 총각김치까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추가 밥까지 먹었는데 고작 6,000을 받는다. 미안할 지경이다.
밥을 먹으며 산님들의 다양한 글들을 읽어본다. 주위를 천천히 즐겨 본다.
13.45 김천 방향으로 조금 가니 언덕 위에 괘방령 표지석이 있다.
맞은편에 있는 들머리로 향한다. 조금 오르니 섹시한 나무가 앉으라고 유혹한다.
14.32 능선에 오르니 왼쪽은 나무로 막아놓고 오른쪽으로 인도를 한다.
<가성산>
오라해서 가면 저만치 물러나 있네.
오라해서 가면 또 저만치 물러나 있네.
언제 그대의 모습을 보여줄쏘냐.
4킬로를 오르고 올라서 봉우리 봉우리의 마지막 끝자락에 자리한 그대.
이제는 힘이 들어 오라해도 갈 힘이 없구나.
내려와서 제발 날 업고 가면 좋겠소.
그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소.
기다리다 지쳐 다가가니 오라고 했던 그대는 그곳에 없네.
가도 가도 그대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구나.
15.46 가성산 도착 형제봉과 황악산을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밥을 먹고 계속되는 오르막에 지치고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준다.
몇 개 남지 않은 담배 한 개비. 황홀하다.
가성산에서 왼쪽으로 급경사로 이어지고 조금 내려와서 다시금 왼쪽으로 꺾어진다. 계속되는 내리막이다. 희미하게나마 장군봉이 보인다.
16.33 장군봉
헬기장 지나자 눌의산 정산이 보인다.
17.23 눌의산 743
발은 퉁퉁 불어 아프다고 한다.
내리막을 내려갈 때 천천히 게걸음으로 내딛는다.
조금 내려오니 차의 굉음이 들려오고 오른쪽으로는 계곡에서의 청아한 물소리와 대조를 이룬다.
내려갈 때 발가락이 쏠리니 발가락 끝이 아파서 미칠 지경이다.
17.57 눌의산 0.8 추풍령 2.1킬로 이정표가 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주의요망)
내려오다 길 위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산행을 더 할 건지, 아니면 계획대로 여기서 마칠지를 한참동안 검색도 하고 고민도 한다. 우선 카리브모텔 가서 결정하자.
조금 지나니 감나무 밭이 나오고 가까이에 고속도로가 보인다.
18.39 눌의산 등산 안내도가 나오고 공동묘지를 지나니 왼쪽에는 철문이 닫혀있고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18.49 임도가 나오고 임도 앞에 있는 굴다리로 통과한다. 포도밭들을 지나니 모텔이 보인다.
이곳 추풍령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해발고도는 22미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경부선철도로 인해 문경세재와 죽령, 이화령의 모든 물류가 모이게 되었고, 이후 낮은 고도와 완만한 경사로 인해 경부고속도로와 일반 국도 등이 모두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모텔로 가지 않고 편의점에 들러 구수한 것을 먼저 사고, 모텔에 전화해서 방을 예약한다.
맛집을 검색하니 근처에 있는 추풍령 할매 화로구이집으로 안내한다.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한 잔의 소주에 피로를, 한 점의 고기에 목의 때를 벗기고 있다.
나도 양념삼겹살 2인분과 소주를 시켰다. 한 잔의 소주에 피로를 풀어본다.
다 젖은 상태로 따뜻한 곳에 앉아 있으니 온몸이 나른해진다.
된장에 밥까지 먹고 모텔에 가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상냥하게 맞아준다.
짤순이 같은 탈수기가 있는지 물으니 세탁물을 주면 집에 가서 탈수를 해주겠다고 한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늦게까지 뒹굴다 카리브 모텔을 나오니 어제 어두워서 보지 못한 추풍령 이정표와 공원이 예쁘다.
공원 안쪽에 팔각정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비박해도 좋을 듯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어제 들린 편의점을 지나니 셀프 뷔페가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몇 명이 식사를 하고 있다.
5000원에 나물들을 맛본다. 특히 민들레의 독특한 향이 싱그럽다. 그리고 북어국이 맛이 잇어 두 그릇을 비운다.
길을 따라 가니 추풍령 버스터미널이 보이고 우체국을 지나니 추풍령역이 보인다.
추풍령령역에서 12시 58분 기차를 예매해둔 상태다.
아직 올려면 시간이 남아 역앞에 있는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해본다.
얼마 만에 타는 무궁화 기차인가?
참으로 특별한 여행이다.
천천히 진행하는 기차를 타고 생각해보니 속도도 빠르지 않게 운행하는 것이 나의 산행과 비슷한 것 같다.
너무 억지인가?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이용한다.
왜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타서 기차에 서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예쁜 아가씨가 많다는 것은 눈을 흐뭇하게 한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나오니 동대구 복합터미널이 보인다. 한 층 올라가니 4층으로 버스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막상 차를 타려니 카드는 안되고 3층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을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할 수 없이 3층에 있는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올라가다 토스트 가게가 보여 계란 토스트를 주문한다.
식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당긴다.
맛나게 먹고 14시 40분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이동한다.
포항행 무정차는 15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
비박한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장비와 식량도 필요하지만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힘이 더 든다.
근처에 물이 나오는 곳이 있으면 수고로움이 덜하겠지만 물이 없다면 먼 길에서 물을 갖고 옮겨야 한다.
그리고 막영지에 대한 조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무게는 적이다.
식량과 장비와 물까지의 무게를 감당해내야 한다.
그나마 벌레와 모기가 적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리고 팔각정 같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얼마나 이 또한 감사한 일인가?
<산행>
산행한다는 것은 겸손하고 감사하게 만든다.
열악한 환경에서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하게 만든다.
비를 흠뻑 젖어 있을 때 약간의 햇살에도 감사하고,
더울 때 이슬 머금은 풀들이 뿌려주는 이슬이 감사하다.
이 싱그러운 흙내 음을 맡을 수 있는 코가 감사하고,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다리와 발이 감사하다.
아름다운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감사하고,
먹고 힘을 낼 수 있는 입이 감사하고,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신경이 감사하고,
무거운 배낭을 견뎌준 어깨가 감사하고,
이 글을 쓸 수 있는 손에게도 감사하고,
백두대간을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감사할 따름이다.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랜턴이 고맙고,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모자가 고맙다.
날카로운 풀 날을 막아주는 장갑이 고맙고,
다리의 수고로움과 균형을 맞춰주는 스틱이 고맙고,
차가운 밤을 따뜻하게 해준 침낭이 고맙다.
스스로 비를 맞으며 비를 막아주는 판초우의가 고맙고,
물을 끓이고, 몸을 데울 수 있게 하는 버너가 고맙고,
물을 담아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코펠이 고맙다.
내용물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배낭이 고맙고,
상처를 치료할 때 밴드를 자를 수 있는 나이프가 고맙다.
꽃을 피워 힘을 내라고 인사하는 꽃들이 고맙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새들이 고맙고,
산에서 만난 산 도라지의 상큼함이 고맙고,
밤송이의 까칠한 이면에 아삭함이 고맙다.
도열한 산죽들의 열병식이 고맙고,
배고플 때 만난 복분자가 고맙고,
싱그러운 향기를 품어내는 자작나무가 고맙다.
힘들 때 잠깐 쉴 수 있는 바위와 돌들이 고맙고,
새벽에 아름다운 운무를 만들어 주는 계곡이 고맙고.
날이 밝으면 찬란한 풍광을 보여주는 봉우리들이 고맙다.
이 많은 것들은 산행을 통해서,
산행하는 길 위에서 늘상 만나는 일들이다.
그 외에도 감사한 이유를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음에 감사하다.
|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