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은 여러 개 있으면서 둘레는 없는 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를 읽고
18살의 남자 주인공은 그녀에게 피아노 연주회 초대장을 받게 된다.
그녀는 그보다 한 학기 아래 학년이었고, 비싼 사립 여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미모도 꽤 뛰어났다. 걸리는 점은 이전에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친한 듯 전혀 친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 평범한 그에게 초대장을 보냈는지 의문에 들게 되었다.
그는 연주회를 보러 버스를 타고 연주회 홀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은 고베의 산꼭대기 부분에 있었는데 가는 내내 인적이 드물었고, 공연하는 날인데 너무 조용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게 된다.
초대장의 주소와 일시가 정확히 맞는데도 주소로 찾아가 인터폰을 눌러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주인공은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가게 된다. 답이 없는 문제를 안고 가는 길에 주인공은 공원에 정자로 가서 잠시 쉬기로 한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맞은 편에 노인이 앉아있었는데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노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중심이 여러 개 있는 원. 때로는 무수히 많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자네는 떠올릴 수 있겠나?”하고.
주인공은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다짜고짜 물어봤는 데다가, 질문이 너무나도 의아하기 때문이다.
이에 노인은 머리는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다, 충고하며 크림에 관해 설명한다.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프랑스어로 그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림 중의 최고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주인공도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인생의 크림 크렘 드 라 크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도,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곳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중심이 여럿 혹은 무수히 많은 원이 어떻게 하나의 원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노인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노인은 무슨 말을 한 걸까?
저으면 저을수록, 혹은 휘핑크림 스프레이처럼 흔들수록 부드러워지는 크림을 인생에 비유한 것일까?
노인은 그에게 말한다.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나는 내 나름대로 부드러워져야 제맛을 찾는 크림처럼 우리가 무언가 생각할수록 그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중심이 여러 개 있으면서 둘레는 없는 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데 솔직히 애초에 이런 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원은 둘레를 갖는다고 정의해놓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이나 생각할 나름이고 아마 그것은 구체적인 도형으로서의 원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원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세상에 살지만, 그 처음과 끝을 모르는 경계에 서 있는 우리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어떤 공간에 여럿이 있어도 각자 생각하는 바와 느끼는 바와 다르듯이 사람마다 중심이 다 달라서 중심은 여러 개, 혹은 무수히 많다. 또한 둘레가 있는 원에 만약 물체가 있다면, 둘레 안 공간에서만 있을 수 있지만, 처음과 끝을 모르는 한정에서 벗어난 우리의 인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어떤 일을 하던 모든 일이 생각하는 대로 될 수만은 없는 것처럼 원이든 무엇이든 울타리 같은 둘레가 없으면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될 수만은 없으니까. 우리가 살면서 내가 원하던 것들로만 채워질 수 없는 것을, 세상은 넓고 지정된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막연한 추론일 뿐이지만.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떤 것인지 대충 알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다 보면 다시 알 수 없어졌다.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둘레가 없으면 형태가 지정되지 않았다는 건데 많은 도형 중에 왜 원이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피아노 연주회 이야기로 스토리를 왜 계속 끈 건지 모르겠다. 쓸데없이 길기만 하고(묘한 긴장감 있어서 재밌긴 했지만) 연주회는 진짜였던 건지 가짜였던 건지, 누가 보낸 건지도 안 나오고 그래서 연주회는 어떻게 됐는지도 나오지 않아서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책의 해석은 정확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열린 엔딩으로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었고 머릿속에 끝없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 책이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머리가 복잡하고 해석이 정확히 떨어지지 않는 것이 기분 나쁘긴 하지만. 솔직히 처음엔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했는데 질문과 스토리가 오묘하게 조합되어 있어서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다시는 별로 읽고 싶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크림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