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들은 이야기(1)
1.1사11연대2대대 5중대 조길현상사
가. '86년도 일월봉근처 근무시 탄통과 함께 유해 1구발굴, 가매장했다(차후 발굴 완료)
나. '83년도 백학 9소초 막사 뒤 옹벽 작업간 소년병이 나와 막걸리붓고 돌과 나무로 처리, 묘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차후 확인 발굴결과 아무런 유품도 없고 당시 이 루트가 지역주민들이 살았고 피난민들이 이용한 통로라함, 다시 그 위치에 재매장 관리)
2. 문산 운천리 유기원씨, 74세
여우골에 많은 유해가 있었고 151고지에서 1사단 연대장이 전사했으며 개인호가 많이 있다.
(차후 발굴 작전실시, 개인호 다수 확인, 유해는?)
3. 문산 장산1리 용기환씨, 77세
처음 전쟁이 나고 임진강 다리로 넘어온 북한군에게 여우고개(대덕골)에서 1개중대가 전멸했다.
그러다 북진하고 다시 1.4후퇴하고 주로 이곳은 유엔군과 1사단이 왔다갔다 했다.
51년도 5월이후에 1사단이 거의 1년가량 주둔했는데(실제 52년4월30일까지 방어) 너무 나쁜 짓을 많이해서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미군하고 함께 다니면서 동네마다 여자는 다 건드렸다. 개나 돼지 소등 다 잡아먹고, 또 빨갱이 잡는다고 말 안들으면 죽여버리고... .
할머니들에게는 전쟁이야기 묻지마라, 기막혀 난리난다.
4. 문산 운천1리 인배규씨, 69세
당고개일대에 유해를 직접 보았다.피난도 못갔다.
여우고개는 전쟁후 도로공사시 다 훼손 되어버렸다. 당시는 논 밭에도 널려있었다.
5. 파주 위전리 성낙현씨, 71세
전쟁이 나고 50.6.26에 다락고개(위전1리)일대에서 아군이 많이 죽었다.
두포리지역에서도 아군이 많이 죽었다.
장곡1리에서는 1.4후퇴 이후 인민군과 중공군이 죽어 가매장을 여기저기 했다고 들었다.
6. 파주 광탄 신안리 강흥원시, 63세
20년전만해도 만장산 일대에 뼈가 많았다. 직접 전쟁 목격했다. 그후 불이나고 해서 다 타버렸다. 피난도 못가고 집에 있으면서 인민군한테 밥도 얻어 먹었다.
1.4후퇴시에는 중공군이 함께와서 머물렀는데 그놈들은 나쁜짓 안했다.
7. 법원읍 법원리 노영식씨, 67세
냇가변으로 민간인 피해많이 발생했다. 이래서 죽고 저래서 죽고~.
법원리 앞산(자웅산?)에서 전투를 많이 했으며 유해는 있다는 소릴 못들었다.
여기에 해병대도 들어와 있다 갔는데 그들은 자기들끼리 사고나서 죽기도 하고 이곳에 묻혔던 시신을 언젠가 군에서 전수 이장해 갔다.
8. 법원 갈곡리 최영철씨, 70세
법원리 주유소 집 뒷편 일대가 민간인이 많이 죽어 묻혔던 곳이다.
옛날에는 집터 공사하다 유해가 나오기도 했다. 정말 주민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9. 법원 가야리 장병유씨, 81세
남원(전북)에 국군을 5구 가매장한 곳을 안다.
광한루 맞은편 요천이 흐르는데 그 건너편에 공비잡으러 왔던 군인들이 기습받아 죽어서 가매장 하였다. 그후에 군인들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발굴했는지 모르겠다( 당시 발굴해감, 지역주민이 확인해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