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62/180115]아아-, 한라산 눈꽃(雪花)산행
여느 날처럼 새벽 4시 10분 눈을 뜨고 거실로 나오다. 새해 밝은지 어느새 셋째주 월요일. 몸은 무겁지만, 정신은 은화처럼 맑다. 일상(日常)이지만, 5시 10분 첫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4시 30분,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맛있는 파김치를 돌돌 감아 우걱우걱 새벽밥을 먹다가, 문득 엊그제 주말엔 무엇을 했지? 생각을 하다. 아 참, 지난 금요일부터 제주도 2박3일 기가 막힌 환상의 가족여행을 했지. 바로 어제 새벽 4시 8명이 집단기상하여 6시 30분 성판악에서 백록담을 향해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지. 그 일이 마침 몇 달 전인 것처럼 아득한 옛일같다. 어쩌면 한바탕 꿈을 꾼 것도 같다. 한라산 눈꽃 새벽산행. 그런 기똥차고 맛있는 체험을 내가 했을 줄이야.
성판악에서 속밭대피소까지 4.1km 등반길은 한마디로 beyond description(표현 불가능. 뭐라고 할 말이 없음). 장관(壯觀)도 그런 장관이 없었다. 이틀간 내린 폭설이 무려 60cm를 넘었다던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국립공원 관계자들이 간신히 헤쳐낸 1차선 외길. 깜깜 새벽에 헤드라이트를 비추거나 핸드폰 불빛으로 한걸음 한걸음, 1열행진이 몇 키로나 이어졌을까? 간신히 날이 밝은 게 7시 30분쯤. 그제서야 은빛 세상이 희뿌염히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건 온통 은색(銀色) 세계. 돌밭길도, 나무데크길도,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없어져 버렸다. 오직 눈만이 쌓여 있을 뿐.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 위에 수북수북 쌓인 눈더미들. 끝도 갓도 없이 펼쳐진 한라산의 눈꽃(雪花) 축제를 평생 처음 이렇게 제대로 감상하는 안복(眼福)을 누릴 줄이야.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와 세 누이 그리고 세 매제들과 함께. 자연이 만든 위대한 예술작품, 인간이 어디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청량(淸凉)하고 쇄신(灑新)한 기운이 둘둘둘 옷으로 철갑을 한 온몸을 감싼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천연색 등산복 패션장을 방불케 한다. 아이젠과 스패치, 두꺼운 장갑은 필수.
전날은 한라산 모든 코스 탐방 전면금지. 오로지 이 등반만을 위하여 제주를 찾은 수 천명의 애간장을 태웠다. 특단의 조치로 어제 새벽 6시 성판악 등산로 문을 연다는 굿뉴스에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댄 사람들이 과연 몇 천명이 될까? 아마도 3만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매제는 1950명(한라산 높이가 1950m이다)이 온 것같다며 농을 놓았다. 위험천만한 미끄러운 도로를 뚫고 신새벽에 올라온 렌터카들을 보아라. 주차장은 6시도 안돼 만차. 수백대의 차량이 길가에 주차를 할 수밖에. 그 길이 족히 4km도 더 되는 듯했다. 운좋게도 버스정류장 근처에 주차를 하자마자 경찰차가 다가와 ‘주차금지’ 표시판을 우리 뒷차에 세워놓는다. 속으로 “오케이”, 딱지 끊을 염려도 없으니 이렇게 고소할 데가 없다. 조금 아쉬운 것은 사라오름과 진달래밭대피소까지(속밭에서 3.2km) 가려던 애초 계획을 수정, 속밭대피소에서 하산을 한 것. 오후 비행기 시간을 대려면 오르락내리락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야 했다. 하지만 이게 어딘가? 천만다행한 일. 듣자니,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백록담 길 2.3km는 그때까지 개척(開拓)이 되지 않아(관리공단 직원들의 수고로움을 잊지 말자. 얼마나 힘들면 길을 열다 지쳐 돌아왔을까?) 여전히 등반 금지. 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차라리 잘 되었지 않은가. 흐흐.
산행을 결심하는 과정은 지난(至難)했다. 순전히 큰매제와 막내매제의 집요한 수 십통의 전화 조회 덕분이었다. 그 전날 밤 10시에야 일요일 6시 개방 확답을 받고 신새벽 등반을 결정한 것. 아내들에게 한라산 눈꽃산행의 진수(眞髓)를 보여주겠다는 애처가(愛妻家)들의 지극정성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포기, 늦잠이나 자고 맥없이 돌아올 판이었다. 나와 둘째매제는 “내년에 또 오면 되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우리의 쉐프 큰동생이 끓인 누룽지를 한 그릇씩 해치운 후(주먹밥 8개와 레드향을 나눠가졌다) 5시부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으나 가는 길은 스릴을 넘어 무서웠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베스트 드라이버도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었다. 눈꽃산행은 우리나라에서 한라산이 “울트라 캡션 짱”임을 여지껏 귀가 아프게 들어왔었는데(상고대는 덕유산 향로봉이 최고라던가), 눈꽃터널은 또 어떤가. 아람드리 나무들의 가지가 눈 무게를 못이겨 쭉쭉 찢어져 있기도 하다. 저 무거운 눈을 어떻게 이기고 우리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주는 고마운 나무, 나무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보지 않은 자가 백 번 듣고 사진을 본다한들 이 즐거운 마음을 어찌 알랴. 여기저기서 벌러덩벌러덩 ‘큰 대’자로 뒤로 자빠져 ‘인형(人形)’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내달초가 안되면 내년 1월말이나 2월에 한번들 올라보셔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풍경. 아-내처 백록담까지 올라 관음사쪽으로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던가. 이 큰 산 하나가 우리에게 이런 행복을 안기다니. 아아-, 참 좋다. 아하-, 참 잘 됐다. 고맙다. 우리에게 이런 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다니.
지난해 5월초 5남매의 제주 2박3일 가족여행은 “꽃보다 가족여행”이라는 제목을 달아 사진과 함께 만든 소책자로, 영원한 추억(追憶)으로 남았다. 미진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시 한번 또다른 추억을 쌓고 싶었다. 추억의 탑(塔)은 쌓아올릴수록 좋은 일일 터. 그래서 기획했다. 하지만 ‘쩜빵 사장님’ 3번 형은 합류하지 못했다. ‘깜짝쇼’ surprise 등장을 계획했으나, 갑작스런 폭설로 미룬 대신 금일봉을 전달했다. 고마운 일이다. 기왕지사, 우리는 김포와 청주, 여수에서 합류했다. 첫째날, 제주공항에서 반가운 만남, 얼굴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수다가 이어지는 가운데, 산타페 렌터카에 8명이 몸을 싣고 애월해안도로를 일주하다 성게전복미역국 ‘맛집’을 용케 찾아 식탐(食貪)을 맘껏 하다.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대방어’(무려 10kg가 넘는다) 두 접시에 모듬회 한 접시. 회 쇼핑을 한 후 인근에 있는 불운한 천재화가 ‘이중섭기념관’과 이중섭이 살았다는 방을 구경하다. 천진난만한 깨복쟁이 두 아들과 서귀포 바닷가에서 놀면서 가난했지만 행복했을 이중섭의 생애를 더트며 예술가의 삶이란 무엇일까, '아고리(이중섭)'와 '아스파라가스(이남덕)'의 사랑에 잠깐 숙연해지는 시간도 갖다. 이어서 중문관광단지 입구에 있는 왕년의 펜션 ‘꿈에그린’ 그 때 그 방에 짐을 풀다. 낯익은 주인아줌마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숙성된 회(膾) 세 접시로 하는 회식(會食)은 일행이 먹기에 안성맞춤. “흔치 않아” 건배사와 함께 한라산 소주와 와인을 곁들이다. 이어서 ‘월남뽕’(전라도 사투리에 ‘낑겨먹기’)에 네 가족 희비가 엇갈리다. 따면 따서 좋고 잃어도 좋다. 딴 사람은 내일 커피 사라. 어서 자자. 달콤한 잠을 취하다.
이튿날(토요일) 이틀간 폭설로 꽁꽁 묶인 한라산이 문제가 아니고 평지에도 난리가 났다. 겨울제주에 이런 날도 흔치 않단다. 눈이 와도 너무 많이 왔다. 체인이 없으면 한 바퀴도 움직이지 못할 상황. 8명의 생사가 담긴 스타렉스가 비틀거린다. 체인을 감았는데, 몇 미터도 못가 ‘빠가’가 되고(렌터카 업체의 무지한 횡포 탓인 듯), 비탈길인지라 움쭉달싹을 못한다. 사려니숲길은커녕 숙소에도 가지 못하는 상황, 전화통이 불이 나건만, 속수무책. 현지인의 조언(‘후진하면 되겠는데...’)으로 다시 제자리. 숙소에서 올레길을 걷기로 ‘작전’을 변경하다. 특급호텔인 신라, 롯데, 부영 등을 스치는 올레 8길, 너무 좋았다.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 해안 에머럴드 물빛과 반짝이는 잔잔한 윤슬(잔물결). 새벽같이 싼 김밥 여덟 뭉치. 1시쯤 해녀집 근처에 짐을 풀고 컵라면과 함께 점심을 때우는데, 많이 늙으신 해녀할머니, 막 물에서 올라오신다. ‘혹시 해삼 멍게 전복 등 지금 막 먹을 것 없냐?’는 물음에 말없이 문어를 들어올리신다. 워메, 큰 거? 그것 팔아요? 얼마예요? 2만원이요? 주세요. 횡재를 만났다. 할머니는 그날따라 문어 몇 마리를 잡으신 듯, 분명 인심을 쓴 것이다. 이렇게 큰 게 2만원이라니? 우리 빨리 집에 가 데쳐 먹자. 얼마나 맛있을까? 벌써 군침이 돈다.
도저히 못걷겠다, 8길만큼은 완주하겠다, 두 팀으로 갈렸다. 무려 8km쯤을 걸어 돌아오는 길엔 버스를 탔다던가? 제주는 대중교통 요금이 유난히 싸다. 귀가길, 오늘 저녁은 삼겹살 회식이닷! 마트에서 흑돼지 삼겹살을 2kg 사오다. 그 큰 문어가 뜨거워 엎어지니 문어에 ‘꽃’이 피었다. 문어와 삼겹살, 포식(飽食)을 하다. 포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일은 칼칼한 갈치조림과 고등어구이를 먹자. 오케이. 8시가 되기도 전에 모두 텔레비전 앞에 모인다. ‘황금빛 내 인생’에 몰입하며 천호진의 실감나는 연기에 눈물까지 짓는다. 우리는 분명 울고 웃는 소시민이다. ‘옥(玉)가이드(네째며느리의 애칭)’의 2월말 코타키나발루 4박5일 여행계획에 대한 브리핑에 이어 몇 가지 사항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큰․막내사위는 마음은 굴뚝이지만 불참할 사정을 모두가 이해하다), 이제는 고스톱이다. 손목, 이마, 발바닥 때리는 것은 때리는 자의 마음. 언제 형부와 오라버니의 이마에 흠집을 내랴. 인정사정 볼 것없다. 내리 때려라. 광박에 피박에 네 배다. 3, 5, 7, 9점. 8대. “타 타 타 딱” 연약한 여동생들의 팔뚝이 울긋불긋 달아오른다. 한켠에선 감귤, 누룽지, 도토리묵, 파전, 떡가래 조청 등 주전부리가 계속 이어지고.
둘째 동생이 남편이 완벽하게 술을 끊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몇 달 동안 쉬쉬쉬 ‘탑 시크릿’이었다)를 처음으로 공개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음주 사이클사고로 생긴 여파가 결국 뇌수술까지 이어진 것이다. 사이다로 건배하게 된 사연을 듣자 사건의 발단과 연관된 두어 명은 기겁을 하며 눈물바람까지 한다. ‘천우신조가 따로 없다. 제2의 인생이다. 그만큼 영금을 보고도 술을 대하면 그게 어디 사람의 자식일거나?’ 여기저기서 이구동성(異口同聲). 이런 때를 대비해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모두 건강 조심해 오래오래, 오늘처럼 이렇게 행복하게 살자로 이야기가 모아지면서, 내일 새벽 산행을 위해 일제히 취침. 코골기, 잠꼬대하기 없기. 진실로 행복한 밤, 아름다운 제주의 밤이 깊어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미타파, 니미타파. 아멘. 할렐루야. 성자와 성부와 성신의 이름으로 이 밤을 축복하자.
후기: 'N분의 1'로 하기로 했으면 그 룰에 따라야 하는데도, 경비를 서로 못내 안달복달. 이틀 펜션값은 어느 누가 '멘서기된 기념'으로 내겠다 하고, 점심값은 또 누구가 '기간제 계약직에서 무기직으로 전환돼 퇴직이 늘어난 기념'으로 내겠다 하고, 마지막날 점심값은 '딸내미 임심 3개월' 기념으로 내겠다는 등, 축하받을 일이 하도 많아, 공동경비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이것도 좋은 일.
첫댓글 스토리가 아주 좋아요.그리고 대단해요.그 엄동설한에도...
잘 읽었네.
돋보이는 가족애에 박수를 보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