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성오도(見性悟道) / 청화 큰스님
<수행삼법(修行三法) :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
헌데 어제 제가 참선이라 하는 것은 조신법(調身法)이라,
고를 조(調)자 몸 신(身)자 몸을 고르게 해야 한다.
조식법(調息法)이라,
숨쉴 식(息)자 호흡을 고르게 해야 한다.
또 그 위에다 조심법(調心法)이라, 우리마음을 바로 한다.
마음을 바로 하는 그 문제는 제가 서두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조심법(調心法) : 영원의 영상>
우리 마음이 순간 찰나도 떠남이 없이 영원의 IMAGE.
영원한 영상을 우리가 지닌다 말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불심(佛心)이라 하는
그런 영원한 영상 그것에다 마음을 안주(安住)해야만이 참선입니다.
<조신법(調身法) : 법계정인(法界定印)>
헌데 우선 몸 모양을 가부좌(跏趺坐) 이것이 가장 편한 모양,
또는 가장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쉬운 모양입니다.
어제 말씀한 것처럼 정삼각형
이것은 일체여래지인(一切如來智印)이라,
지혜 지(智)자 도장 인(印)자, 여래(如來)는 부처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그런 무량한 지혜완벽한 지혜가
제일 개발하기 쉬운 모양이 법계정인(法界定印)입니다.
우주의 모양, 우주의 생명을 상징한 모양이 법계정인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앉으면
이것이 벌써 우주를 내가 다 가슴에 안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모양입니다.
법계정인(法界定印)라, 법계(法界)라는 것은 우주라는 뜻입니다.
정인(定印)이라 법계의 모든 기운이 거기에 딱 담아 있는
결국 상징적인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가부좌하는 우리 몸자세. 좌선하는 자세 이것은 법계정인입니다.
가장 지혜(智慧)가 발동하기 쉽고
또는 우주의 정력기운을 우주 정기(精氣)를
이렇게 다 모아 놓은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모양입니다.
따라서 모양은 부처같이 법당(法堂)에 부처님은
다 이렇게 하고 계시지오.
<화안애어(和顔愛語)>
우리 모양은 부처님 같이, 우리말은 바른말,
남의 속상하지 않고 자기 마음 편하고,
업장 무거운 사람들은 말만 내면
남 속상하게 하고 자기 마음도 괴롭힙니다.
자손손타(自損損他)라, 스스로 자(自)자, 손해볼 손(損)자,
또 손해볼 손(損)자, 다를 타(他)자
나쁜 말들은 자기 가슴 해치고 남 가슴 해칩니다.
업장 (業障)만 자기 가슴에 심습니다.
그러게 부처님 말씀으로 화안애어(和顔愛語)라,
평화로운화(和)자, 얼굴 안(顔)자) 밝은 표정, 애어(愛語)라,
사랑 애(愛)자, 말씀 어(語)자
불자(佛子)는 마땅히 의무적으로 우리가 꼭 화안애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 가슴이 맑아지고 남의 가슴도 광명을 줍니다.
화안애어라, 밝은 표정 또는 부드러운 유연스러운 말,
<우주의 존재 목적의식이 48원이다>
우리가 왜정(倭政) 때 살았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목포(木浦) 광주(光州) 서울 같은 데는
본원사(本願寺)란 절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일본(日本)에서 나온 절인데 본원사라,
근본 본(本)자 원할 원(願)자
이것이 본원(本願)이란 뜻은 근본서원(根本誓願)이라,
맹세할 서(誓)자 원할 원(願)자 무슨 근본서원인고 하면은
우주가 본래 갖춘 하나의 서원입니다.
우주(宇宙)는 하나의 생명체(生命體)이다.
우주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따라서 우주도 하나의 서원이 있습니다.
우주의 바로 목적이 있습니다.
우주의 목적의식(目的意識) 그것이 본원입니다.
우리는 무슨 법회(法會) 끝에나 반드시
발사홍서원(發四弘誓願)이라,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부르는데 사홍서원 이것이 바로 본원입니다.
부처님의 4가지 서원이라,
이것이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해야 되겠다.
무량법문으로 배워야 되겠다.
또는 무상불도(無上佛道)를 위없는 불도를 성취해야 되겠다.
이런 것이 부처님의 우주의 서원입니다.
이것이 본원입니다.
헌데 그런 본원을 좀 더 부연시켜서 말한 것이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의 48원입니다.
48가지로 우주의 서원 우주의 목적을 풀이했습니다.
<광촉유연원(光觸柔軟願)>
그런 가운데서 33번째 가서 광촉유연원(光觸柔軟願)이라,
광촉은 빛 광(光)자, 접촉할 촉(觸)자.
광명에 접촉해서 유연(柔軟)이라,
부드러울 유(柔)자, 연할 연(軟)자, 그래서 유연원이라 말입니다.
광촉유연원이라, 우주의 원래(元來) 원이 있다 말입니다.
부처님의 원래 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은 우주의 본래(本來) 광명(光明).
부처님의 별명(別名)은 많이 있으나
부처님의 총대명사(總代名詞)는 아미타불(阿彌陀佛)입니다.
비록 부처님의 명호(名號)와 이름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총대명사는 아미타불인데
아미타불 풀이가 이것이 무량광불(無量光佛)입니다.
아미타불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무량광불입니다.
광명이 우주에 가득 차있는 생명(生命)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불룩불룩하고 흥분하기 쉽고 거친 사람들은
그런 광명과 거리가 보다 멉니다.
우주의 본 생명인 부처님의 생명의 광명과 거리가 멉니다.
마음이 유연스럽고 상냥한 사람들은 우주의 광명과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그 광명의 정작 접촉(接觸)한 사람들은
그때는 보살(菩薩)입니다.
남의 듣기 싫은 말, 남을 성내게 하는 말,
남을 이간(離間)하는 말, 이런 말을 잘한 사람들은
우주의 광명과 거리가 멉니다.
우리가 멀어서는 되겠습니까?
그래서 유연선심(柔軟善心)에서 그냥 대비심(大悲心)이 발동해서
천지우주가 모두가 불쌍한 중생뿐이란 말입니다.
또 그냥 감사하고 고마움뿐이다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나
또는 모든 병고(病苦)에 시달린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내가 구제해야 되겠다.
그런 문제를 다 자기 몸같이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그때는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부드러운 마음 가운데서
눈물이 주룩주룩 나온다 말입니다.
그 눈물은 맑은 눈물이 되겠지요.
이것은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광명에,
우주의 순수 에너지인 광명에 접촉한 사람들이 그럽니다.
그러기에 보살마음은 앞서 말씀한 것처럼 화안애어(和顔愛語)라,
항시 평화스럽고 항시 중생을 연민(憐愍)하는 마음이 있다 말입니다.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에서 중생이 듣기 싫은 말을 하겠습니까?
또는 동사(同事)라.
중생과 더불어서 누가 고생하면 따라서 같이 위로해준다는 것입니다.
또는 이행(利行)이라.
중생을 이익 되게 항시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기분 나쁠 것인가?
이러한 것이 애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참선(參禪) 많이 하고 염불(念佛) 많이 하면 저절로 그리 됩니다.
<견성오도(見性悟道)>
이것은 광명과 차근차근 접근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드디어 불성광명(佛性光明)과 하나가 딱 되면
그때가 견성오도(見性悟道)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순수한 광명.
그 아미타불(阿彌陀佛). 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여기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헌데 앞서 말씀한 것처럼 참선이라 하는 것은 한 말로 말하면
모양은 부처님 같고, 말은 부처님 같은 말,
그런 유연스러운 말, 우리 생각은 부처 같은 생각,
이것이 우리 참선의 가장 이상형(理想型)입니다.
모양<身>은 부처 같은 모양,
말<口>은 부처 같은 말,
생각<意>은 부처님 생각뿐,
이것이 참선의 가장 이상적인 모양입니다.
그럼 부처 같은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나와 남의 구분이 없어서
우주를 하나의 부처덩어리로 본다 말입니다.
이것만이 바로 보는 것입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첫댓글 수행삼법(修行三法) :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이라~ 감사합니다.~
견성오도(見性悟道) / 청화 큰스님~ 감사합니다.^
3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