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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생필지』 |
특별히 눈길을 끄는 점은 매우 소략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청색을 넣어 그린 표지화이다. 겉표지에는 근육질인 남성의 벗은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불룩하게 솟은 상박근과 머릿기름을 발라 말쑥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이 특징적이다. 그런데 아래쪽에는 복잡한 톱니바퀴와 릴 테이프가 달린 영사기 모양의 카메라가 그의 복부를 비롯한 체간부와 한쪽 팔을 비추고 있는데, 빛에 드러난 부위는 늑골과 척추, 천골, 대퇴부 등 뼈마디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아마 뢴트겐사진을 보듯이 몸속을 비추면 내장이나 골격을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걸 표현한 것으로, 근대화된 과학지식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다른 아래 쪽 구석엔 한반도와 일본열도, 그리고 동해와 북태평양 상공, 북미주 대륙의 일부가 드러난 북반구 지도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그 위쪽으로는 별모양의 인공위성과 알라스카 산맥으로 보이는 산악지형이 그려져 있다.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 순 없으나 50~60년대 미·소를 필두로 각축을 벌인 우주개발 경쟁과 인공위성 발사 소식에 몹시 고무된 나머지 향후에 다가올 미래 사회를 앞질러 표현해 보고자 이를 디자인적인 요소로 삼아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현금에 이르러 보편적으로 보급된 초음파진단 장비나 MRI나 CT를 비롯한 영상투시 장비, 그리고 인공위성을 활용한 위치정보 추적기술(GPS) 등이 상용화 되어 서비스되는 현실이므로 반세기 전의 가상현실은 그다지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수록된 가정구급법이나 잡방들은 모두 전근대적이며, 민간전래의 불확실한 정보들이어서 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겉표지에 이어 표지이면에는 세계중요발명표가 들어 있는데, 제빙기, 전화기, 타이프라이터, 축음기, 백열등, 자동식 수화기, 사진기, 전기기관차, X광선 등 이른바 현대과학 문명을 일으킨 발명품들이 열거되어 있고 그 옆으로는 발명시기가 단기로 기재되어 있으며, 이어 발명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여기에 에디슨의 발명품이 5가지나 올라 있어 지난 세기 그가 발명왕이라 불린 명성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이어 퀴리부인이 발견한 라듐, 마르코니의 무선전신, 잠수함, 비행기, 천연색영화, 비타민이나 원자탄, 페니실린 등이 들어 있다. 미량원소의 발견으로 부터 전기, 전신의 원리 발견, 그리고 군사무기의 개발, 시네마스코프의 발명, 영양소와 항생물질의 발견 등이다.
이 책의 표지서명은 『健生必知』로 되어 있다. 아마도 건강생활에 필요한 필수지식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겉표지의 서제 위쪽에 다시 ‘社會常識’이란 부제가 달려 있어 다소 의아스럽다. 하지만 본문에 앞서 차례를 살펴보면 무슨 의미인지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우선 첫머리에 家庭訓書라 하여 三綱五倫과 朱子十悔가 적혀 있다. 이는 아마도 조선시대 이래 이어져 내려온 기존질서 체제와 倫理道德律이 아직 健在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 다음 장에는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과 殉國烈義士 22인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어 광복 이후 당시 한국내의 사회적 분위기를 감지해 볼 수 있다. 수록한 본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轉換期 민간의약 지식의 斷面. 健生必知
지난 주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의 첫머리에는 家庭訓書라는 제목 아래 三綱五倫과 朱子十悔가 적혀 있고 또 다음 장에는 기미독립선언을 주도한 민족대표와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순국한 애국열사들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짐작케 해한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의 본문이라 할 내용은 그 다음에 실린 가정구급법이라 할 수 있으므로 내용상 직접적인 연관성은 그리 없다.
본문은 첫 장은 내과편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위장병, 급성장카다루, 위암 증상, 그리고 현기증, 구토, 두통, 복통이 있을 때의 구급법에 대해 기록하였다. 이로 보아 이 책자의 성격을 구태여 나눠본다면 민간단방요법을 소개하는 민간의약서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위암의 증상은 위내부에 종지가 난 것인데 만성위카다루, 위궤양 등의 병이 있으며, 술을 많이 먹는 사람들에게 많이 생긴다. 처음에는 위 일부가 아프다가 나중에는 위 전체가 아프며, …… 특히 이 병은 40이 넘은 자에게 많다. 치료법은 山豆根 뿌리를 다려 연복하거나 가지꼭지를 다려 복용하면 대효”하다고 적혀 있다.
이어 외과편에는 동맥출혈, 코피 날 때, 토혈, 출혈, 자궁출혈, 음식중독에 대해서, 중독편에서는 가스중독, 수면제 중독에 대해, 또 인사불성을 일으킬 때 항목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 쥐나 독사, 벌에게 물렸을 때의 처치법에 대해 기록하였다. 대략 가정에서의 구급처치법에 대해서는 (가)(나)(다)(라)항으로 세분하여 기술한 것도 특징이다.
가축치료법에 대해서도 수록해 놓았는데, 소와 말, 개, 닭, 돼지(도야지)등 가축에 대한 질병치료 방법을 다루고 있다. 이어 合食物注意法은 이른바 음식궁합이라고 불리는 음식금기법에 대한 것이다. 또 전통적인 태아의 남녀구별법(아이 밴데 男女 아는 법)도 수록하였다.
기타 여러 가지 잡다한 생활상식류에 해당하는 지식들을 열거해 놓았는데, 예를 들자면, 식초제법, 新舊時間對照表, 비누를 만들자(비누제법), 거울(面鏡)제조법, 포마-드 제법, 비듬향수제법(香水製法), 脫毛劑 제법, 안전잉크(證券用) 제법, 파리잡이(蠅取紙) 제조법 등이다.
각종 서식류도 구비해 놓고 있는데, 혼례서식, 약혼서식, 청첩장서식, 상례, 부고서식, 弔電文, 弔慰文, 輓章쓰는 법 등이 들어 있고 이어 지방서식(의례규법, 재래서식), 銘旌, 제물 차리는 식, 제 모시는 순서 등 초상을 치르는데 반드시 필요한 지식을 소개하였다. 또한 민원서류에 필수서식으로는 출생과 사망신고를 비롯하여, 고소장, 호주상속신고, 시말서, 신원보증서양식, 위임장 양식 등이 수재되어 있다.
아울러 말미에는 꿈해몽법, 흉한 꿈을 길하게 하는 법, 內外計寸法, 모자 쓰는 모양으로 보는 점괘, 신발 신는 모양으로 보는 점괘 등 다분히 이해납득하기 어려운 요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전래 지식 가운데 불안하고 변동이 많았던 시대상에 비추어 나름대로 대중적 수요가 많았던 콘텐츠가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러한 면모는 비록 30여 쪽에 불과한 소략한 분량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뒤표지에는 나이에 따른 출생년의 단기와 서기, 그리고 간지를 간편하게 대조해 볼 수 있도록 표로 작성해 놓았다.
식초합성법(合成酢)은 전통 양조법이 아닌 화학합성법을 소개한 것으로 빙초산, 구연산, 아지노모도(米之素), 설탕(砂糖), 물을 혼합하여 속성으로 제조하는 것이다. 오래 동안 변질되지 않은 채 사용하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어 있으니, 식품공업의 화려한 등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