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원 福州園>
오키나와의 중국인 이주 내역은 특별하다. 명나라 책봉국으로 중국과 정식 교류관계를 갖던 유구에게
1.방문지대강
명칭 :福州園
위치 : 〒900-0033 沖縄県那覇市久米2丁目29−19
입장료 : 200엔(야간에는 300엔)
방문일 : 2026.1.15.
2.둘러보기
2.1.
나하에서도 중국인 이주의 흔적, 현재적 교류의 장을 만난다. 福州園은 복건성 복주시와의 교류 속에서 자매도시 결연 10주년을 기해 1992년 조성한 공원이다.
복주원은 복건성의 대표적인 풍경과 건축물을 재현하고, 3산 2탑 1강의 복건성 풍광을 재현하고 있다. 용주와 8선인도 재현하고 있다. 4계와 8대경관 등 복주지방의 전통적 기법을 이용하 중국식 정원이다.
일부 자재는 중국에서 직접 져오기도 했다. 소주의 태호 근처의 석재인 태호석도 보인다. 태호석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조경 석자재다. 이화원도, 고궁도 태호석이 사용되었다.
2.2.
중국의 책봉국이 되어 1372년부터 조공을 받치는 유구를 위해 명나라는 외교를 위한 문서나 통역등을 담당할 수 있도록 일군의 중국인을 파견하였다. (14~16세기) 이들은 유구에 와서 지식인으로 대대로 살며 상층귀족으로서 유구를 도와 많은 일을 하였다. 이들은 쿠메촌에 살면서 중국의 풍속과 제례를 유지하고 중국 성씨를 그대로 가지고 살았다. 이들은 외교관련 문관을 대대로 담당하는 지식인들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로 이주한 많은 화교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이들은 주로 유구와 가까운 복건성 출신으로 유교문화를 간직하고 들어와 외교와 학문을 담당하는 지식인으로 살면서 동아시아 문명의 책봉체제 유지의 한 축으로 유구와 중국의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쓰마 번이 유구를 공격(1609)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단일한 색채가 유지되면서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유지할 수가 있었다.
유구의 국왕이 침략자 사쓰마 번으로 잡혀가고, 유구가 대내적으로는 속국, 대외적으로는 독립국의 국내외의 입장이 다른 이중적인 행태를 가져야만 했다. 사쓰마번은 유구의 조공을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봉을 못 받는 번의 유구 침공은 중국과 외교적인 마찰도 생길 수 있었다.
이후로 쿠메촌 사람들은 대외적으로만 외교 담당자로서 실무를 담당하고 대내적으로는 구메촌 사람으로 살면서 유구인과의 혼인관계를 넓히고 유구인으로 점차 뿌리를 내렸다.
쿠메촌 사람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채온이다. 철학자이자 행정가 관료로서 유구가 행정적으로 기틀을 잡는 데 많은 기여을 하였다. 심지어 도자기촌의 구분에서도 채온의 영향이 있었다. 자기를 상요? 황요? 둘로 구분한 사람도 채온이었다. 그에 대한 연구는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설파 선생님은 일본의 가장 수준 높은 사상가로 채온과 안등창익을 든다. 둘 다 일본에서는 애써 주목하지 않으려 한다. 내부적 결속에 장애가 된다고 보기 때문인 거 같다. 특히 채온이 가진 여러가지 정체성은 유구와 본토의 관계와 역사에 있어서 어떤 관점에 서느냐에 따라 다양한 문제를 낳기 깨문이다.
2.3.
복주원의 위치해 있는 곳이 바로 이전의 쿠메촌이다. 주소에 그대로 살아 있다.
쿠메촌은 쿠메지마와 이름이 같고 쿠메지마가 복건성에 더 가까운 서쪽에 있어서 중국인들이 쿠메지마를 거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경외와 관계된 의미가 쿠메에 들어 있어 명칭이 동일한 거 같다.
1879년 일본이 속국으로 만든 이래 당인의 사용도 금지하고, 구메촌도 해체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주소에 이름이 있고, 복건성의 상징적인 풍광등을 재현하는 것을 보면 일본도 일방적인 압제가 가능하지도 않고, 실속도 없다고 보는 거 같다.
어쨌든 유구 속의 복건계가 이처럼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좋지만, 500년이 넘도록 하나가 되지 못하고 유지하는 정체성이 긍정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도 중국 왕조가 체될 때마다 수많은 중국인이 새왕조를 피해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런 중국인들, 지금은 모두 동화되어 문화적으로 완전히 우리나라 사람이 되어 있다.
복주원은 1992년 건립되었다. 공식적으로 쿠메촌민의 뿌리가 중국 복건성임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강압으로 문화를 말살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이제 일본도 대외관계에서 자신감과 여유를 갖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거 같다.
정문
조벽
구메촌문
쌍탑 중 하나 백탑.
지춘정
능파랑
정자 지춘정과 아래 연못 도화계
능파랑
능파랑
동야당. 여기서부터 여름 풍광이다.
오탑
오탑
청묵정
야산과 야정
야정
총가정
앞 다리는 비홍교
야정
공자상
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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