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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_ 2013 하반기 우수문학도서
_ 2013 겨울방학 책따세 추천도서
_ 2013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
_2013 책만사가 뽑은 '올해 의 책'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는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일하는 아이들의 삶을 가꾸고, 무능한 교육행정에 맞서던 때 쓴 일기다. 2권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는 1978년부터 1986년 학교를 떠날 때까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풀어 쓸 수 있도록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때 쓴 일기이며,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를, 4권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는 1992년부터 1988년까지 우리 말을 바로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과 교육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으며 삶과 사상을 정리하면서 쓴 일기를,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1999년부터 2003년 8월 돌아가실 때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쓴 일기를 담았다.
〈세트구성〉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나는 땅이 될 것이다』
목차
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1부 1962년 ~ 1970년
ㆍ때 묻고 찌그러진 조그만 책상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1962년 9월 21일 ㆍ저녁때가 되어도 아이들은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1964년 6월 6일 ㆍ바쁜 농사일도 그만두고 10리, 20리의 산길을 투표하러 가는 농민들 1969년 10월 17일 ㆍ눈이 와서 온 산천이 하얗다. 이런 날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1969년 12월 15일
2부 1971년 ~ 1973년
ㆍ우리 아버지 연탄 가지러 가요 1971년 3월 18일 ㆍ선생님, 몇 번 씁니까 1971년 4월 30일 ㆍ이 벙어리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1971년 10월 23일 ㆍ모두 모여서 같이 가야 돼요 1972년 6월 8일 ㆍ슬픈 얘기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요 1973년 1월 18일 ㆍ밥 많이 달라고 해서 많이 먹어라 1973년 3월 13일
3부 1974년 ~ 1977년
ㆍ눈 쌓인 재를 넘고 산길을 걸어오면서 1974년 1월 29일 ㆍ동화책 하나 변변히 읽지 못한 아이들 1974년 2월 11일 ㆍ아이 엄마는 빨랫거리를 이고 나는 연우를 업고 1974년 5월 12일 ㆍ서울에 가서 살고 싶어졌다 1975년 2월 17일 ㆍ그래도요, 북괴보다 덜합니다 1977년 11월 2일
ㆍ이오덕이 걸어온 길
2권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1부 1978년 ~ 1979년
ㆍ그저께도 험한 산길을 걸어오고, 오늘도 10리 넘는 길을 갔다 오고 1978년 6월 26일 ㆍ아이들에게 평생 서울 같은 곳 안 가도 자랑 가지도록 1979년 2월 6일 ㆍ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다 1979년 7월 9일 ㆍ자기의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1979년 12월 29일
2부 1980년 ~ 1981년
ㆍ검붉은 게 건강하고 좋잖아요 1980년 2월 13일 ㆍ광주 사건이 해결이 안 난 것같이 말하는 듯했다. 오늘 저녁 소쩍새는 저렇게 피를 토하듯 울고 있구나! 1980년 5월 22일 ㆍ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것이 내 운명인지 모른다 1981년 5월 24일 ㆍ달빛 속에서 운동장을 거닐면서 남은 내 생을 생각했다 1981년 8월 15일 ㆍ아이들이 심사하면 더욱 재미있고 잘될 것 아닌가 1981년 9월 3일
3부 1982년 ~ 1986년
ㆍ아이들 글을 보면서 살아온 것을 진정 다행으로 생각한다 1985년 4월 10일 ㆍ퇴직 서류를 내고 나니 한층 더 외로워진 것 같다 1985년 12월 16일 ㆍ가난하고 불행한 아이들을 나는 앞으로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1986년 1월 15일 ㆍ부끄러운 교육자 생활을 장사 지내고 1986년 2월 26일
ㆍ이오덕이 걸어온 길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1부 1986년 ~ 1987년
ㆍ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여 정직하게 쓰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1986년 10월 11일 ㆍ나는 최루탄 가스의 눈물이 아니고 진짜 눈물이 났다 1987년 6월 26일 ㆍ아, 이럴 때 힘차게 불러볼 애국가는 없는가 1987년 6월 26일 ㆍ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1987년11월6일
2부 1988년 ~ 1989년
ㆍ종일 방 안에서 ‘우리 말을 우리 말이 되게 하자’ 원고를 썼다. 밤 11시 반까지 1988년 1월 17일 ㆍ나는 모국어의 미아(迷兒)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1988년 8월 27일 ㆍ종로에서 이발을 했다. 이발료는 아직도 천 원이었다 1988년 11월 25일 ㆍ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시를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1989년 6월 8일
3부 1990년 ~ 1991년
ㆍ권 선생이 저녁밥을 해 왔는데, 간고등어 구운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1990년 1월 5일 ㆍ아이들이 쓰는 이야기글이야말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동화가 될 수밖에 없구나 1990년 3월 13일 ㆍ무엇 하나 세상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말과 글조차 돌이킬 수 없도록 병들어 버렸으니! 1990년 8월 15일 ㆍ올해도 여전히 일에 쫓기면서 살아갈 것 같다 1991년 1월 1일 ㆍ종일 ‘동시란 무엇인가?’란 논문 문장을 다듬었다. 내가 이런 글을 썼던가 부끄러워졌다 1991년 8월 21일
ㆍ이오덕이 걸어온 길
4권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1부 1992년 ~ 1993년
ㆍ5년쯤 썼던 안경을 잃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다. 이래서 옛사람들은 바늘을 제사 지내는 글도 썼겠다 1992년 9월 19일 ㆍ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우리 삶의 정서를 이어 주어야 한다 1993년 1월 1일 ㆍ삶이 무엇이냐구요? 밥 먹고 일하고 이야기하고 하는 것, 이것이지요 1993년 2월 18일 ㆍ사무실 구해서 우리 말 바로잡는 운동을 할 생각을 이것저것 하면서 그대로 날을 새웠다. 어린애같이 가슴이 부풀었다 1993년 3월 27일
2부 1994년 ~ 1996년
ㆍ42년 동안 몸부림치면서 살아온 것이 일본 말 귀신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을 1994년 3월 15일 ㆍ작품을 빈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1994년 12월 22일 ㆍ오늘이 동짓날이다. 참 오랜만에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 1994년 12월 22일 ㆍ선생님, 제가 골덴 바지를 떼운 것 입고 가니까 ‘너 궁둥이에 해바라기꽃 핐구나’ 하신 것 생각나셔요? 1996년 5월 9일 ㆍ부끄러운 저의 이름을 빼어 주시기 바랍니다 1996년 6월 6일
3부 1997년 ~ 1998년
ㆍ산벚꽃 쳐다보니 눈물이 난다. 새잎들 쳐다보니 눈물이 난다 1997년 4월 25일 ㆍ‘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글을 써야 하나’란 제목으로 1997년 5월 4일 ㆍ올해는 신문 보는 데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1997년 12월 31일 ㆍ오늘 하루를 살다가 죽자 1998년 2월 22일 ㆍ내 젊은 날 가장 큰 감격으로 맞이한 날, 죽음의 골짜기에서 살아난 날이다 1998년 8월 15일
ㆍ이오덕이 걸어온 길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
1부 1999년
ㆍ우리 말 바로 쓰자고 하는 사람은 마음도 참 고와요 1999년 1월 15일 ㆍ아, 나는 아직도 살아서 이 봄에 살구꽃을 보게 되는구나 싶었다 1999년 4월 16일 ㆍ어쩌면 분노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다 분노가 없으면 죽은 목숨 아닌가? 1999년 8월 8일 ㆍ사람 한 사람이 옮기는 데 무슨 짐이 이렇게도 많은지 1999년 8월 23일 ㆍ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외로운 것,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구나! 1999년 10월 7일
2부 2000년 ~ 2001년
ㆍ긴 세월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저 소쩍새 소리를 꼭 시로 쓰고 싶다 2000년 5월 12일 ㆍ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동화를 쓰고 싶어요 2000년 12월 13일 ㆍ내 나이가 지금 일흔일곱이다. 아직도 살아 있는 이 몸이 너무나 고맙다 2001년 1월 5일 ㆍ날마다 한 편씩 시를 쓰자. 그래야 내 정신을 긴장시켜서 기록을 남길 수 있지 않겠나 2001년 1월 27일 ㆍ오늘도 곶감 내다 말리고, 낮에는 팥 삶아 냉장고에 둔 것 새로 끓이고 2001년 11월 7일
3부 2002년 ~ 2003년
ㆍ아, 이제 몇 번 더 이날을 보낼 수 있을까 2002년 8월 15일 ㆍ‘쉬운 말로 세상을 확 바꾸자’라는 제목으로 2002년 12월 22일 ㆍ아버지 밥 못 잡수신다고 하면 좀 야단쳐, 나는 권 선생이 그토록 내 가까이 있었는 줄 몰랐다 2003년 6월 17일 ㆍ내 삶의 한 평생, 오늘 하루를 끝낸 것이다 2003년 8월 19일 ㆍ즐겁게 떠나니 웃으며 보내 달라 2003년 8월 20일
ㆍ이오덕이 걸어온 길
저자 소개
저 : 이오덕 (李五德)
1925년 11월 4일에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서 태어나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아홉 살에 경북 부동공립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예순한 살이던 1986년 2월까지 마흔두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스물아홉 살이던 1954년에 이원수를 처음 만났고, 다음 해에 이원수가 펴내던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이원수의 권유로 어린이문학 평론을 쓰게 된다. 1973년에는 권정생을 만나 평생 동무로 지냈다.
우리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1977년에 어린이문학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절대 자유의 창조적 정신을 발휘한 어린이문학 정신을 ‘시정신’, 그에 반하는 동심천사주의 어린이문학 창작 태도를 ‘유희정신’이라 했으며,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린이문학의 ‘서민성’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어린이문학인이 새로운 문명관과 자연관, 아동관에 서지 않고서는 진정한 어린이문학을 창조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가들과 함께 어린이문학협의회를 만들었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탰다.
2003년 작고 전까지 아동 문학 평론가로서 어린이들이 올바른 글쓰기 교육을 하도록 이끌었고,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어린이문학협의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들을 꾸렸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여는 바탕이 되었다. 한국 아동문학상과 단재상을 받았으며,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 일과 어린이 문학, 우리말 바로잡기에 평생을 바쳤다.
그동안 쓰고 엮은 책으로 『아동시론』『별들의 합창』『까만 새』『시정신과 유희정신』『일하는 아이들』『삶과 믿음의 교실』『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 땅의 아이들 위해』『울면서 하는 숙제』『종달새 우는 아침』『개구리 울던 마을』『거꾸로 사는 재미』『삶·문학·교육』『우리 문장 쓰기』『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참교육으로 가는 길』『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문학의 길 교육의 길』『나무처럼 산처럼』『어린이책 이야기』『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감자를 먹으며』『우리 말 살려쓰기(하나),(둘)』『고든박골 가는 길』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으로
지금은 4시 5분 전, 아무도 없는 교실에는 때 묻고 찌그러진 조그만 책상들이 60여 개 나란히, 꼭 아이들이 귀엽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뒤편에는 오늘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다. 거기에는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온갖 모습들이 재미있는 선과 아름다운 색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전시판 밑에는 조그만 손으로 주물러 짜서 걸어 놓은 걸레가 널려 있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온갖 희망과 걱정과 슬픔을 안고 67명의 어린 생명들은 이 교실을 찾아올 것이다. 교사라는 내 위치가 새삼 두려워진다. 이렇게 괴로운 시대에 내가 참 어처구니없는 기계가 되어 어린 생명들을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된다.
두고두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워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p.15 「『1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1962년 9월 21일 일기」
42년의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던지듯 훌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pp.368-369 「『2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1986년 2월 27일 일기」
지금 저녁 10시 반, ‘밖에서 들어온 말의 문제’란 원고의 중요 부분을 거의 다 썼다. 모두 약 190장. 앞으로 10장 정도만 쓰면 한자 말과 일본 말 문제는 다 쓰게 된다. 이것을 발표할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아무 데도 싣겠다고 하는 데가 없다. 없어도 계속 써야 한다. 안 되면 조그만 책자로라도 만들고 싶다. 우리 말을 지키고 살려 나가는 문제가 얼마나 큰가를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내 남은 목숨을 여기다 걸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제저녁에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사람도 못 쓰는 시, 나만이 쓰는 시를 꼭 쓰고 싶다. 내 외로움, 아픔, 그리고 고난당하는 생명을 나는 노래하고 싶다. 내가 아니면 그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짓밟혀 죽어 가는 생명들을 나는 노래해야지. 아름다운 그 생명을 노래해야지.--- pp.143-144 「『3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1988년 2월 14일 일기」
오늘 종일 집에서 작품을 읽으면서, 내년에 옮겨서 살게 될 곳과 집을 생각해 보았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좀 넓은 방 하나와 조그만 방 하나 그리고 부엌과 화장실, 이런 집을 다음 달에는 지어 놓고 싶다. 큰방에는 책을 모두 갖다 놓고, 작은방은 내가 자는 곳이다. 겨울이면 이 작은방에 장작으로 군불을 때 놓고, 온종일 이불 덮어쓰고 책 읽고 글 쓴다. 남쪽으로 난 영창은 나지막하게 해서 방바닥이 아침부터 환하게 볕이 들어오도록 하고 싶다. 여름이면 채소를 가꾸고, 가을이면 산에 올라가 밤을 줍고……. 내가 평생 그리워하던 그 삶을 70 고개를 넘어서야 실현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어린애처럼 가슴이 뛴다. 아, 어서 한 해가 갔으면 좋겠다.--- p.209 「『4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1995년 1월 29일 일기」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또 다른 한평생으로 살아간다. 오늘도 또 한평생을 살았으니 그것을 대강이나마 적는다.
“의사 선생님, 더 얘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암이란 말 듣고 내 마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아주 평온했어요. 하루하루 쇠잔해져서 이제는 다시 일어날 수 없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 죽을 준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살 만큼 살았고, 이 세상의 모든 인연과 헛된 욕망 다 버리고 또 다른 저세상으로 가는 것 참 즐거워요. 내가 죽을 때는 조금도 슬퍼 말고, 모두 웃으면서 흙에 묻어라, 그날은 기쁘게 잔치를 해라고 해요.”
아직도 오늘 하루 내 인생은 많이 남았다.
집에 와서 누워서 음악을 듣고, 하루 일을 대강 적고, 정우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이야기를 하고, 발 목욕을 하면서 앞으로 서둘러야 할 일을 의논했다. 내 삶의 한평생, 오늘 하루를 끝낸 것이다.
--- pp.380-382 「『5 나는 땅이 될 것이다』 2003년 8월 19일 일기」
출판사 리뷰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이오덕 일기〉의 탄생 과정
크고 두꺼운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슬며시 넘겨 본 1960년대 노트 일기장에는 습기를 먹어 번진 채 휘갈겨 쓴 글자들이 빼곡히 차 있었고, 또 다른 1980년대 일기장에는 날짜에 맞춰 손수 다녀왔던 강연 팸플릿과 오린 신문을 붙인 흔적들이 보였다. 2000년대에 쓴 손바닥만 한 수첩 일기장을 들추니 단정하게 쓴 깨알 같은 글씨들과 함께 쓸 자리가 모자란 곳에 종이를 오려 붙여 더 쓴 흔적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낡은 책장 속에 이처럼 켜켜이 먼지 쌓인 채 보관된 일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가 2011년이다. 교육자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42년 동안 날마다 쓴 일기였다. 처음에는 ‘와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42년의 기록’이라는 일기의 힘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일기장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만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42년의 시간. 원고지로 37,986장, A4 용지로 4,500장.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몇 권의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세 사람의 편집자가 다른 일은 제쳐두고 고스란히 일기를 읽어 나가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전체를 세 번 정도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두 번 정도 더 꼼꼼히 읽고 가리게 된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던 이오덕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이오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기를 가려 뽑는 기준으로 시대와 맞닿아 쓴 역사 기록 쪽에 자꾸 눈길이 갔다. 워낙 하루 동안 겪은 일, 보고들은 일, 생각한 일 따위를 빠짐없이 꼼꼼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던 터라 교육 운동, 아동문학사, 우리 말 운동 따위와 관련하여 남길 만한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일기 읽기에 흠뻑 빠져들 때쯤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려 뽑는다. 둘째,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 이야기에서 겪은 일을 더 또렷하게 붙잡아 쓴 글을 뽑는다. 셋째, 한 개인의 역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시기별로 중요한 행적을 가능하면 빼지 않는다. 이런 기준으로 세 번에 걸쳐 날짜마다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를 했고, 세모와 가위표 된 날짜 일기도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한 끝에 걸렀다. 그러고 나서도 모자라 살아 있을 때 이오덕과 함께했던 동무와 따르던 선생님 몇 분에게 〈이오덕 일기〉가 이오덕의 온 삶을 온전히 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 〈이오덕 일기〉(모두 5권)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가까운 일기를 6,200장 정도로 줄인 것이다. 2년 8개월이 걸렸다.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만큼 〈이오덕 일기〉를 통해 이오덕이 한 사람으로 우리 삶 속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오덕 일기〉, 어떻게 다섯 권으로 구성하게 되었을까?
〈이오덕 일기〉는 시기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교사로 살았던 24년 동안의 기록(1, 2권)이고, 두 번째는 학교를 떠난 뒤 경기도 과천에서 살면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13년 동안의 기록(3, 4권), 세 번째는 충주 무너미 마을로 내려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쓴 5년 동안의 기록(5권)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행적 혹은 장소에 따라 세 권으로 내는 걸 고민했다. 하지만 일기를 읽어 나갈수록 시기에 따라 선생님의 고민과 생활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일기와 비슷한 시기에 썼던 시를 찾아 읽으면서 선생님의 고민 내지는 화두를 좀 더 선생님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오덕 일기〉의 권별 제목은 선생님이 쓴 시 구절과 일기 본문에서 찾아 썼다. 1, 4권은 일기 본문에서 찾아 쓴 것이고, 2, 3, 5권은 선생님이 쓴 시에서 찾은 표현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좀 더 잘 드러내기 위해 권마다 ‘여는 시’를 넣었다. 그래서 독자들도 이오덕이라는 한 사람이 1권에서는 답답한 현실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느낌, 2권에서는 확신에 차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은 느낌, 3권에서는 퇴직한 다음에 좀 더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느낌, 4권에서는 사상과 삶이 깊어지고 초연해진 느낌, 5권에서는 자연 속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소박한 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이오덕 일기〉는 시간 순서대로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는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일하는 아이들의 삶을 가꾸고, 무능한 교육행정에 맞서던 때 쓴 일기이고, 2권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는 1978년부터 1986년 학교를 떠날 때까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풀어 쓸 수 있도록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때 쓴 일기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이고, 4권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는 1992년부터 1988년까지 우리 말을 바로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과 교육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으며 삶과 사상을 정리하면서 쓴 일기다.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1999년부터 2003년 8월 돌아가실 때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쓴 일기다.
이오덕의 평생을 온전히 담은 최초의 책 〈이오덕 일기〉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1989년에 한길사에서 〈이오덕 교육 일기〉가 두 권으로 나온 일이 있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10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담은 교단 일기였다. 이번에 양철북에서 펴낸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는 〈이오덕 교육 일기〉를 포함(〈이오덕 일기〉 1권의 일부)한 이오덕의 평생을 온전히 담은 최초의 책으로,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치열하게 써 내려간 42년의 기록이다. 그동안 이오덕의 교육 철학, 글쓰기 교육 이론을 담은 책, 어린이를 위해 쓴 동시와 동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엮은 글쓰기 모음집, 우리 말을 살리기 위해 펴낸 책들 70여 권을 통해 분야별로 이오덕의 삶과 사상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온 삶을 다 들여다보고 그의 생각의 바탕과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조망해 보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오덕 일기〉는 아이들과 함께한 삶에서 찾은 이론을 바탕으로 선생님으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그 성장을 관통하는 생각의 바탕과 뿌리를 바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 될 것이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 이오덕의 삶을 다룬 평전이 나오지 않은 지금 그의 온 삶을 바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정본 기록이자, 손수 쓴 자서전의 역할을 대신할 책이다.
〈이오덕 일기〉를 통해 새롭게 만나는 인간 이오덕
사람들은 보통 이오덕을 말할 때 교육자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이야기한다. 실제 〈이오덕 일기〉에도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함께했던 삶, 가난하고 힘든 형편에 놓인 아이들이 제 삶에 당당해지기를 바라며 건강하고 바르게 키우려고 글쓰기 교육을 했던 모습, 어린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동시, 동화, 평론을 쓰며 어린이 문학에 힘을 기울이던 모습, 백성들이 쓰던 자연스런 우리 말과 말법을 바로 쓸 수 있어야 우리 민족의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다며 우리 말 운동을 펼치던 모습들이 때마다 곳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맞게 본 것이다. 하지만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한 만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오덕은 늘 세상을 약자의 눈으로 진실하게 바라보았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기대지 않고 살아갔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의 삶으로부터 자신의 사상을 찾아갔다. 그런 면에서 그의 모습은 머리띠 묶고 거리의 군중을 향해 목청을 돋우는 광장의 실천가와도, 책에서 찾은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원고지와 만년필을 무기 삼는 실천가와도 달랐다. 이오덕은 오로지 자신이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이오덕의 삶을 두고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교실에서 실천하며 이오덕을 따르는 초등학교 교사 탁동철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평범한 것에서 찾아내는 평범하지 않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찾아내는 아름다움.’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그의 눈은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아이들의 편에 서서 바닥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 선생님 일기에는 나날의 생활,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둘레 사람과 그들의 말 따위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론이 되고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어 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 탁동철 (속초 청호초 교사,《달려라 탁샘》저자)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바닥의 눈,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 상식이랍시고 굳어져 있는 통념과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의 통찰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오덕에게 무능하고 부패한 학교 행정당국, 아이들을 외면하고 사회적 지위, 평판 따위에만 눈이 먼 아동문학가, 핍박받는 노동자 농민을 외면하고 지식인들의 언어로 차별을 만들어 내는 신문, 방송, 학자들은 모두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고, 투쟁의 대상이었다. 이오덕이 살았던 교육자의 삶, 아동문학가의 삶, 우리 말 운동가의 삶 모두가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오덕 일기〉를 통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 약한 아이들 편에 서서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던 사람, 책에서 얻은 이론이나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은 게 아닌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세상과 맞닿은 하루를 되돌아보고 쓰면서 살아간, 삶의 구체로부터 생각의 바탕과 뿌리를 찾은 사람,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선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진실하게 보았던 한 사람으로 이오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이오덕 일기〉가 되기를……
일기를 만들며 만난 젊은 독자들 대부분이 이오덕을 몰랐다. 요즘 세대는 이 땅에 살아 있는 정신으로 존경받는 함석헌, 장일순, 문익환……처럼 마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우리 시대 어른들도 잘 모른다. 실제로 둘레에 물어봐도 ‘이오덕’ 하면 “우리 말 운동했던 깐깐한 어르신” 정도로 어렴풋한 인상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와 다음 세대가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사람과 가치를 잊은 채 지내는 것은 잘못될 교육 현실이라 생각된다. 〈이오덕 일기〉를 통해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 세대, 다음 세대들이 이오덕을 다시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오덕은 우리 교육사에 잊혀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다. 1970~80년대 ‘글짓기’를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한 이오덕의 이야기는 교육 혁명이었다. “네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네 말로 쓰렴.”이라고 한 이오덕의 가르침은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어른들 글을 흉내 내고 거짓으로 꾸며 쓰는 ‘글짓기’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많은 선생님들이 글쓰기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1960년대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닐 때부터 이오덕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닌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있음을 깨닫고 아이들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커서 직업이 꼭 판사, 의사가 아니라도 국숫집 주인으로, 농사꾼으로, 노동자로 스스로 제 삶에 당당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아나갈 수 있다고 여기며 아이들을 대한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안네의 일기〉를 통해 나치 독일의 유태인 탄압에 분노하고 안네라는 솔직한 소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감동했듯이, 〈난중일기〉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역사적 상황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번뇌에 찬 내면마저도 들여다보았듯이 〈이오덕 일기〉가 청소년들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게 한 사람 이오덕을 오롯이 이해하는 귀한 책으로 선물되길 바랄 뿐이다.
〈이오덕 일기〉로 들여다본 이오덕과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 그리고 만남들
10월 유신, 5ㆍ18 광주민중항쟁…… / 권정생, 이원수, 문익환, 함석헌, 염무웅, 신경림……
1962년부터 2003년까지 42년 동안 기록된 〈이오덕 일기〉에는 말 그대로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단면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42년이라는 긴 시간을 후루룩 넘기면서 해마다 기억나는 사건이 일어난 날짜 언저리를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사건과 관련한 이오덕의 기록이 남아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늘 세상과 맞닿아 있어 일기 자체가 고스란히 시대의 기록이기도 했고, 또 누구보다 솔직하고 진실한 눈으로 보고 썼기 때문에 시대의 증언이자, 사료로서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0월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공포했을 때(1권 218~226쪽 참조), 10ㆍ26 때(2권 65~68쪽 참조), 5ㆍ18 광주민중항쟁 때(2권 165~175쪽 참조), 87년 6월 항쟁 때(3권 90~103쪽 참조), 그 뒤 몇 번의 대선……처럼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경우다. 이때마다 이오덕은 스스로의 눈으로 본 진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또 〈이오덕 일기〉에는 세상 속에서 이오덕이 문학으로 우정을 나눴던, 우리 말 살리는 일로 뜻을 함께했던 여러 소중한 인연들이 등장한다. 이오덕은 길 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생각을 키워가고 뜻을 펼쳐나갔던 것이다. 권정생, 이원수(1권 305~328쪽 참조), 문익환(4권 142~143쪽 / 149~156쪽 참조), 함석헌(1권 214~216쪽 / 293쪽 참조), 염무웅(1권 332~342쪽 참조), 신경림, 백낙청, 김남주……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그 가운데 특히 평생의 동무로 만나 지냈던 권정생과의 첫 만남(1권 227~232쪽)은 인상적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오덕은 늘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고 발 벗고 나섰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그런 모습이 감지된다.
추천사
한평생을 하얀 칼날 위를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걸어가신 분. 돌아가시기 사흘 전 “꼬리뼈, 등뼈가 아프고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는 밤에도 당신 삶의 기록을 놓지 않으신 분. 장엄하다. 그분의 꼼꼼하고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읽으면서 이 말이 맨 먼저 떠올랐다.
― 이상석(부산 신도고 교사)
간교한 말, 앞뒤 안 맞는 말, 무지한 말, 감성에 깊이 닿지 않는 말이 판치면서 학교에서 청소년이, 농촌에서 농민이, 북한에서 동포가, 자연에서 새와 벌레가 시들어 가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바른 삶에서 나온 말과 진실이 담긴 글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이오덕 선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 홍순명(전 풀무학교 교장)
추천평
나는 이오덕 선생의 책이 나올 때마다 다 샀다. 《이오덕 교육일기》, 《우리 글 바로 쓰기》,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 간에 오간 편지글 모음, 그리고 이오덕 선생이 엮은 아이들 글 모음과 산문집은 헌책방을 뒤져 샀다. 이제 또다시 선생의 글이 나온다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오덕 선생의 골수 ‘팬’인 성싶다.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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