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외 4편
한영미
라면으로 첫 끼니를 때운다
바닥엔 파지처럼 굴러다니는 쓰다만 이력서들
열정 하나로 통했던 시대는 갔다
모래 수렁을 떠도는 비문의 유령들,
오늘은 이 회사에서 내일은 저 회사에서
같은 얼굴을 만나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래바람은 깊은 수렁을 덮기도 하고 만들어내기도 한다
빠져나오려는 안간힘은 처음 몇 번의 좌절이면 족했다
움직일수록 흘러내리는 모래의 깊이는
늪처럼 빠져들고, 바닥처럼 측량되지 않는다
입구가 사라지는가 하면 출구가 봉합되기도 한다
수렁이 무덤이 되는 것은 한순간,
어제도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왔다
가수와 진수가 구별되지 않는 교묘함에도
구덩이를 채운 숫자는 갈수록 넘쳐난다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 쌓여가는 빈 소주병이
발굴된 유물의 전부가 될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빠져나올 수 있는 꿈이면 좋겠다
남은 국물에 식은 밥 한 덩이 말아 시어 빠진 김치 쪼가리로
후르륵 위장을 채운다
내비게이션 토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낯선 얼굴들이 모래 수렁에서 길을 찾고 있다
집 나온 고양이
이빨과 발톱 세우고 울고 싶을 땐 언제든
울 수 있는 길냥이가 되고 싶어요
울 수 없는 시간이 낭만인가요
안락을 위해 몸을 둥글게 말아 가장
보드라운 털을 내어 주어야 하는 일과
희롱하는 손끝에도 냐아옹!
그대 기쁘게 하는 콧소리,
그때마다 털이 바짝 일어서요
손끝을 와락 물어뜯고 싶어져요
좋은 옷, 머리에 달아준 분홍 꽃리본
날마다 입김 불어 건넨 사랑한다는 말,
연애를 위해 시를 쓸까요 시를 위해
연애를 할까요
너는 나라는 말의 함정에 한 번쯤
빠져본 기억 있다면 누구든 알 수 있어요
이제 그만 소설적 진실*을 밝히고 싶어요
밤거리를 걸어요 온 털끝 세우고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걸어요
상대가 놀라도록 두 눈 크게 떠요
어두울수록 빛나는 광채
집 나온 고양이에게 더 이상
집은 필요 없답니다
*르네 지라르의「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책 제목에서 차용
굴레방다리
아현동 굴레방다리 하면 목줄이 떠오른다
둥근 모양이 세 개나 들어가는 아현동이란 지명이
입 벌린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그들의 허기진 뱃속 같아서,
소가 벗어놓고 와우산으로 누웠다는 굴레가
골목 어디쯤에선가 나타나
기다렸단 듯이 목을 거칠게 잡아챌 것만 같은 동네
흑백 사진 속 배경으로 만나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목줄 덕으로 어렵게 대학까지 마쳤다
가난은 꿈도 사치라는 말을 배웠지만
철수된 고가 다리처럼 빠져나와 모두가 잘살고 있다
날마다 걷던 웨딩드레스 거리는 왜 그렇게도
퇴락한 슬픔이었는지,
조화롭지 못한 방석집과 한데 나열되어
흰빛이 눈처럼 순백색이 아닌 술집 여자들의 덧칠된 화장처럼
이물스러웠던 기억
밀폐된 어둔 공간을 찾아들던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의 술 취한 모습과
그들의 손을 잡아끌던 눈빛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 화려한 여자들과 마주칠 때면
그녀들이 입을 먼 미래의 웨딩드레스가 궁금해지곤 했다
눈부신 조명 아래 여전히 웨딩 타운으로 화려한 동네
이따금 생각나는 곳이지만 그와 동시에 목부터 죄어드는 곳,
모두가 치열했던 시절이 재개발된 모습으로 지워졌다
하지만 아현동 굴레방다리란 발음 속에서 여전히 되살아나는
허기와 굴레
목관(木棺)
끝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지
책장을 넘기듯 무심코 지나가는 하루하루
난 나의 변화무쌍한 책을 읽느라
어느 날 갑자기 너의 책이
찢길 수도, 찢겨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치 못했어
오늘 아르카디아에 살고 있다면
내일도 당연히 붉은 태양 아래 짙푸른 땅 밟으며
황금 같은 시계 종소리에 맞춰 눈을 뜨리라고 생각했어
날마다 안부를 묻는 건강한 목소리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도
인사도 생략한 채 보냈을까
꽃상여에 묻혀 떠나는 너 보지도 못하고
오래도록 빈 하늘 바라보며 바다만 그렸어
어디든 하나로 이어져 있으리라고
이제는 나란 책을 펼치면 매 페이지에
부록처럼 달라붙어 있는 목관과
짧은 한 줄의 글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니콜라스 푸생의 그림 작품에 쓰인 글 차용
일대 일 대응설*
꽃을 꽃이라 부르지 말자
세상 만물 이름 정해지지 않은 건 없다지만
밟고 가는 사람들에 따라 산길은 모양이 달라지지
없던 길도 눈앞에 펼쳐지고
있던 길도 초야에 묻혀 사라지기도 하지
같은 강물에 두 번 몸 담글 수 없듯이
네가 아는 나도 네 앞의 나일 뿐,
합목이 된 나무마다 비틀린 모양새를 보면
제각각 다르지
뿌리부터 가지 끝까지 뜨겁게 타올라
엉켜 붙은 절정의 모습도 있지만
겨우 무늬만 하나인 채로 합목이라 불리는 것도 있지
상대의 손끝 아래 세상에서 가장 정숙한
불감의 여자일 수도
가장 현란한 요부일 수도 있어
여기저기서 부르는 욕보다 못한 이름에 갇혀
그 값에 맞춰 살아야 하는 사람들
꽃을 꽃이라 가두지 말자
오늘도 내일도 그 이름 밖으로 모두가 흘러가지
길도 나무도 강물도 그리고 너도
* ‘모든 사물과 개념은 일대 일 대응관계다’ 아리스토텔레스
2019년 시산맥 봄호) 신인 문학상 수상작
** 심사평 일부
한영미 시인은 자신의 삶은 물론 주변 사람과 사물들에게서도 가장 작지만 큰 무늬와 숨결을 짚어내는 힘을 지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굴레방다리」 등의 시편들은 그가 얼마나 곡진한 귀와 눈을 가졌는지 잘 보여준다. 시인으로서 크고 귀한 자질들을 가졌으니 정진하여 시단에 우뚝 서길 빌어본다.(안차애)
한영미 시인이 축조한 시세계의 근저에는 ‘Les Miserable’(레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 있다. 안전하고 견고한 세계 밖에 거주하는 자들의 숙명인 가난, 배제, 고통, 슬픔, 낙오의 정서를 그는 곳곳에 편재시켰다. 생계와 희망의 출구 없는 자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방석집과 웨딩숍의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그린 「굴레방다리」는 모두 위태롭고 불안한 세계 끝에 매달린 존재의 슬픈 현상을 구현한다. 기교와 수사로 메시지를 가리는 기술언어를 선택하지 않고 세계 인식과 철학을 드러내려는 정공법적 태도가 그의 시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치열한 의식과 긴장된 삶의 의지를 잃지 않기 바란다.(강경희)
한영미 시는 좀 더 구체적이고 명징한 세계의 상흔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굴레방다리」 등의 언어들은 피를 토할 수밖에 없는 송곳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에게 삶이란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의 이중 격자다. 그는 이를 이렇게 압축하고 대칭한다: “하지만 아현동 굴레방다리란 발음 속에서 여전히 되살아나는/ 허기와 굴레”(「굴레방다리」). 그러나 적어도 시에서 형용되는 ‘고통’이란 자기극복의 전조이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딛고 설 수 있는 것이다. 삶을 형상하는 시들은 대부분 투박하다.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투박함이란 정제된 ‘투박함’이어야 한다. 이점을 늘 잊지 말기 바란다.(박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