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인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목사한테 말합니다.
“목사님,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당연히 현실 세계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세계,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된 세계, 주님의 십자가 사역이 완성된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입니다.
그런데 그 교인의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 됨이 드러나지 않는 세계, 하나님의 은혜보다 돈이 더 중요한 세계,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역사가 아니라 설화처럼 얘기하는 세계를 현실 세계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현실이 어느 쪽입니까?
우리 중에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그런데도 심판받을 세상의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실속 없이 신앙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장자권을 팔아서라도 팥죽으로 배를 불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됩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쓴 것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였습니다.
모든 교회가 어려움 중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하나님,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정말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할 만합니다.
어쩌면 이 세상을 통치하는 권세가 하나님이 아니라 로마 황제한테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한테 망했습니다.
성전은 불에 탔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더 이상 가나안 땅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나라가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느부갓네살이 꿈을 꿉니다.
머리는 순금, 가슴과 두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쇠, 발의 일부는 쇠, 일부는 진흙으로 된 신상이 있는데,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지 않은 돌이 신상을 쳐서 부서뜨린 다음에 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는 꿈입니다.
다니엘이 그 꿈을 해몽합니다.
지금의 바벨론에 이어서 바사, 헬라, 로마가 차례로 세상에 등장하는데,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당시 세상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느부갓네살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중략)…
성경은 우리한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돈을 섬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려는 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치고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 주인이라고 하면서 돈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닙니다.
로마는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앞으로 로마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종교를 철폐하고 황제 숭배만 인정한다. 황제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면 사자 밥이 된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섬기던 신과 겸하여 로마 황제도 섬기라는 것입니다.
따로 돈이나 노력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일 년에 한 번, 로마 황제를 모신 신전에 가서 향을 사르고는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별로 어려울 것이 없는 요구입니다.
로마는 상당히 합리적인 나라입니다.
가이사와 그리스도 사이에 양자택일을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둘을 같이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 얘기는 지금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받는 요구는 신앙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지키되 세상이 용인하는 선에서 지키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그런 요구를 누가 합니까?
간혹 세상이 하기도 합니다.
직장 상사가 술을 권하면서 신앙도 좋지만 너무 고지식하면 세상을 못 산다고 할 수도 있고, 어머니가 조건이 좋은 불신 남자와 결혼하라고 성화를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자기 스스로 그런 요구를 합니다.
“신앙이야 내가 알아서 지키면 되는 건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도 좋지만 세상에서 낙오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