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 의례 / 송덕희
초가가 옹기종기 앉은 마을에 네댓 기와지붕은 팔영산을 향해 목을 빼고 있다. 미자네 집은 초입에서 세 번째다. 밭 흙을 돋워 네모반듯한 마당을 만들었다. 냇바닥에서 실어 온 크고 작은 돌멩이로 담을 쌓았다. 새로 지었지만 낡은 티가 나는 세 칸 기와집은 안쪽으로 앉혔다. 목재를 바닷물에 담가 잘 썩지 않을 거라고, 어촌에서 헐린 기둥과 서까래를 그대로 옮겨와 끼워 맞췄다. 경계를 따라 논시밭(텃밭의 전라도 방언)을 만들고도 마당이 넓다. 우물가에 아버지가 심었던 감나무는 제법 어린 티를 벗고 한 뼘 정도 둘레가 굵어져 가지를 쭉 뻗었다.
미자의 엄마는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손가락은 갈퀴처럼 구부러졌고 손바닥을 비빌 때 메마른 지문 부딪는 소리가 난다. “인제 그만 열을 내려 주시오. 어린 것이 뭔 죄가 있다요? 시원하게, 머리 안 아프게, 제발.” 되풀이하는 몸짓과 표정은 평소와 다르게 사뭇 엄숙하다.
인근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성숙이 할머니가 첫새벽에 왔다. 흰 저고리에 펑퍼짐한 검정 치마를 입었다. 하얀 고무신 코가 푸르다. 머리카락은 한 올도 흐트러지는 걸 허락하지 않을 듯 촘촘하게 빗어 넘겼다. 뒤통수로 모아 녹색 비녀를 꽂았다. 우물가 감나무 아래에 무명천을 깔았다. 열세 살, 미자가 먼 산의 여덟 봉우리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빨간 바가지에 금방 떠 온 샘물이 찰랑인다. 한 손에는 칼을 들었다. 아무 말 없이 한참 하늘을 쏘아보더니 물 한 모금을 머금어 미자의 얼굴로 확 뿜는다. 깜짝 놀란다. 이마와 콧등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린다. 동시에 칼로 정수리를 두어 번 두드리다 위아래로 쓱쓱 긋는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이 움츠러든다. 식칼 등은 뭉툭하지만 칼날은 번뜩인다. 허공에 대고 훠이 훠이 쫓는 시늉을 한다. 뿜고 두드리고 문지르기를 반복하며 주문을 외운다. 선득한 기운이 돈다.
해가 떠오르는지 하늘 끝은 벌겋다. 물을 뿜으면 눈을 감고 숨을 참는다. 마당 끝에 쌓아둔 두엄 더미에서 수증기가 무명실처럼 피어오른다. 앞이 하얗다가 무지개처럼 여러 빛깔이 아른거리다 사라지기도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려운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고 어깨에 힘이 빠진다. 열이 내리고 몸이 가벼워진다.
머리가 아팠다. 오후가 되면 관자놀이를 누르며 참아 보지만 저녁에는 눈물을 흘리고 잠든 날이 많았다. 약이 없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짓다 말고 샛문으로 들어온다. 물 묻은 손으로 이마를 짚어 주면 좀 덜하다. 손바닥이 피부에 닿을 때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다. 떼면 또 아프다. 향기도 없는 열꽃이 얼굴과 다리에 자주 피었다.
희미하고 조각난 유년의 기억을 붙잡으려고 미자는 안간힘을 썼다.
햇살 좋은 가을이었다. 쌀뜨물이나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놓은 돼지 밥통 앞에서 고구마 껍질을 깎았다. 한순간 칼이 풍덩 빠지고 왼쪽 집게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피가 많이 나자 재빨리 아버지가 싸매고 뒷집 큰어머니에게로 갔다. 담뱃재를 뿌려서 동여매 주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쌀알처럼 하얗고 동그란 흉터가 생겼다. 날마다 보고 만지는 손끝에 남은 아버지와 연결된 유일한 흔적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크고 넓은 어깨 위에 앉았다. 번쩍 펼친 손을 서로 맞잡았다. 큰댁 대문을 들어서면, 무척 높아서 무서웠다. 이마가 부딪칠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문을 통과하자 하늘까지 닿을까 봐 마음이 콩닥거렸다.
미자의 아버지는 이장이었다. 동네에서 하나뿐인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여름 한낮, 툇마루에 앉아 밥을 먹는데 갑자기 김치가 맛없다며 일어났다. 헛청에 새끼줄 꼬는 기계 옆으로 비스듬히 세워 둔 그것을 끌고 휑하니 나갔다. 삽짝을 빠져나갈 때 펄럭이던 흰 셔츠가 환영처럼 느껴졌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링거액이 든 큰 병이 서너 개 있고, 고름 냄새가 섞인 방안 풍경을 마당 가운데서 바라본다. 아버지는 아랫목에 누운 채 방문한 이들과 이런저런 말을 했다. 마지막이라고 한 번씩 얼굴을 보고 가느라 일가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드나든 모양이다. 그 병은 광에 오래도록 두고 잡곡을 넣은 그릇으로 썼다. 검은색 동그란 고무마개가 압력이 세서 잘 열리지 않았지만, 그때 맡았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머리가 지근거렸다.
오빠가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울었다. 동생도 돌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유언을 한 것 같다. 주위를 얼쩡얼쩡하다 아버지 무릎에 앉았다. 계속 코를 훌쩍이며 울음을 그치지 않자 “사내가 울면 안 된다.”고 했다. 한참을 타일렀다. 속도 모르고 둘 사이에서 멀뚱거렸다.
미자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상여를 빙빙 돌며 뛰어다녔다. 동네 사람들이 제 아비 죽은 줄도 모른다고 혀를 찼다. 모서리는 빨강, 나머지는 온통 하얀 꽃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축 늘어졌다 오므라지는 종이꽃이다.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상여꾼이 둘러앉아 있다가 풍경소리 신호에 맞춰 일어섰다. 그들의 얼굴이 꽃에 묻혀 사라졌다 언뜻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교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를 한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복받쳐서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꼭 있어야 할 존재가 없다는 걸 친구들 앞에서 보이는 게 그토록 서러웠을까? 더 아프고 목이 멨다.
미자는 아이답지 않게 신열을 달고 살았다. 그날 아침, 차가운 물을 뿜고 칼로 머리를 두드리자 서서히 열이 내렸다. 거짓말처럼. 눈을 감으면 엄마가 마른 손바닥을 비비며 기도하던 소리가 가냘프게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