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을 말씀: 누가복음 14:25-33】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나눔】
전에 우리가 천착(穿鑿)이라는 말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같은 곳에 지속적으로 떨어지다 보면, 그 자리가 움푹 들어가게 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은 아무유익이 없는 우둔한 짓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천착의 원리가 적용되면 계란으로 바위를 파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원리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온 힘을 다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위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바위에 부딪히는 순간 산산이 부서집니다.
계란도 역시 바위에 부딪히는 순간 부서지고 맙니다.
더 이상 계란으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만큼 부서지고 맙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구멍이 뚫립니다.
우리들이 핑계를 대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힘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말은 어떻게 들으면 매우 겸손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내 자신을 변호하고 실패로 인해서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재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또한 조금도 손해 안 보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귀중한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손해 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와 무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포기하여야 할 것이 무엇이고, 또 포기함으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얻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땅의 것 무엇을 포기한다는 것이 무엇이 더 지혜로운 선택인지 깨달아 알게 되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길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뒤돌아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
첫 번째,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 부모, 자식, 형제자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가정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단 세력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가족과 단절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장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가정이 곧 그리스도의 몸 된교회라는 측면에서도 검증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미워하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인 가정을 미워하고증오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성경에서 어떤 용례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서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미워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μισεω(misei)라는 단어로 증오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성경의 용례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대부분 비교하는 문장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용례를 들면, 마태복음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라는 말씀에서 미워하다에 사용된 단어와 같습니다.
따라서 26절의 ‘미워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번역된 구문은 ‘하나님 보다 더 미워하지 않으면’ 또는‘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면’ 이라는 표현으로 대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26절 말씀을 이러한 비교 문장의 뉘앙스를 살려서 표현하면,
누구든지 내게 오면서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형제 혹은 자매와 자기 생명일지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모세 오경에서 부터 강조하신 명령으로,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명기 6:5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
두 번째, 예수님을 따르려면 각자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포인트는 자기 십자가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기 십자가’를 신앙 생활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썽 피는 자녀가 내 십자가라 말하는 분도 있고, 평생 원수 같은 남편이 내 십자가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고행의 길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녀나 남편이 자기 십자가라면, 사랑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내 십자가가 될 수 잇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십자가는 당시 로마에서 활용되었던 형틀입니다.
사형도구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사형장으로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를 죽이러 가는 것입니다.
본 회퍼 목사는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 것은 나와 함께 죽자고 초청하신 것이다”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결국 내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표현으로 ‘거듭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옛 사람은 죽고 주님과 함께 새 창조의 은혜로 태어난 새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새 사람은 땅에 매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임으로 하나님 나라의 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살아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삶을‘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것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결코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무렇게나 대충 살아도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육신에 매여 살던 옛 사람의 모습으로 싸우고 탐욕을 쫓으며 살아도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말씀하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의 특징은 예수 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
세 번째,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33절에,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소유를 버리라는 것은 빈털터리가 되어서 노숙자 생활을 하거나, 깊은 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의 소유권을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내 손에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간혹 뉴스에 가슴 아픈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여러분 내가 낳았다고 자녀가 내 소유입니까?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가정에 허락하신 기업입니다.
기업이라는 것은 어떤 공장, 회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약속의 땅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자녀는 누구의 소유입니까?
이스라엘의 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듯이 우리들에게 주신 자녀 또한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 자녀들 뿐일까요? 저와 여러분도 누군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사야서 43:1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라고 선포하십니다.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향하여‘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벧전2:9).
따라서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33절의 말씀은,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찾아 왔던 부자 청년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아 알았다면 가진 재산이 많아서 근심하다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기회를 놓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 말씀에 대해 부연 설명하시면서
두 가지를 강조하십니다.
첫 번째 예는 망대를 세우는 건축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공사를 시작했다면 그 공사의 완성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공사를 시작하는 목적을 상실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공사를 완공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사를 시작하는 건축주는 이 모든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 재산을 들여서라도 망대를 세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망대는 전 재산을 들여서라도 세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일,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전 재산을 팔아서 밭을산 농부나, 가장 귀한 진주를 발견한 진주장사가 전 재산을 팔아 그 귀한 진주를 구매한 것처럼, 나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모든 것을 잃어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만한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연 설명
두 번째는 전쟁을 앞둔 임금에 대한 비유입니다.
전쟁을 앞둔 임금은 사활을 걸고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
전쟁에 패배한다는 것은 곧 나라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즉생의 마음으로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 배가 넘는 적군을 어떻게 막아 낼 수 있겠습니까?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목숨을 걸고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성도의 자세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영접기도 한 번하고 삶 공부나 제자 훈련 받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운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러한 난관을 ‘사즉생’의 마음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결국은 타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일한 죄를 무한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성도의 자세
두 번째는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온 힘을 다해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다가‘안 되면 말고’라는 자세가 아니라 올 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쟁의 승리에 모든 것을 걸고 전쟁에 참여하는 임금처럼, 우리는 내 모든 것을 걸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모든 것을 올인 한 사람의 태도와 아니면 말고 라는 마음으로 따르는사람의 태도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길을 가는데 갑자기 앞에 가는 사람이 쓰러져서 응급상황이 발생하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119에 전화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선 배고프니까 중국음식점에 음식 배달 주문 먼저하고 119에 전화하겠다고 한다면 정상이겠습니까?
응급실에 실려 가면,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환자를 살리려고 노력합니다.
그 어떤 의사도 ‘안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응급환자를 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걸린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성도의 자세
세 번째는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주님이 정말로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주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주님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인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의 모습을 보면, 주님이 주인되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닌 주님이 내 주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내 주인 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은
내 옛 사람이 죽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성도의 자세
네 번째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성도는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거듭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옛 사람이 시퍼렇게 살아 숨쉬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옛 자아는 날마아 죽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성도의 자세
다섯 번째는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겠다고 결단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든 일을 내려놓고 두 귀를 쫑긋 세워서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마리아는 그 순간 다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그 순간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뒤돌아서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제자가 되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것을 함께살펴보았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만한 희생도 없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단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일 뿐입니다.
결코 주님의 제자 일 수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의 특징은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이 사랑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 이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소망합니다.
내 모든 것을 잃더라도 절대로 잃을 수 없는 것이 주님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 양】
주님만 사랑하리, 온 맘 다해, 나는 주만 높이리, 경배하리,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십자가 그 사랑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