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
황창연 신부
내가 사는 평창 성 필립보 생태生態마을의 설립목적은 유기농법으로 농사지어 건강한 먹거리를 세상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에 있다 보면 가끔 재미난 주문 전화가 온다.
“ 거기 생태 마을 이죠?”
“ 예, 생태마을입니다.”
“ 거기 생태生太 팔아요?”
“ 여기는 생태를 파는 곳이 아닙니다.”
“ 아, 그러면 황태黃太는 팔아요?”
“ 저희는 생태도 안 팔고 피정하는 집, 생태마을입니다.”
“ 아, 피조개만 취급하신다고요?”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회 쎈터’는 서강대학교에서 예수회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전화해서 “거기 회 싱싱해요?” 라고 묻는단다. 이분들에게는 ‘예수 회센터’로 들리나 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회센터니까 싱싱하고 가격도 좋을 것 같아 믿고 전화를 하는 것’이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단다.
잘못 알아들은 말 때문에 오해하는 견우가 얼마나 많은가! 생태미을에서 생태를 찾거나 예수회센터에서 싱싱한 회를 주문하는 경우는 귀여운 오해지만,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무지막지한 살인을 초래하기도 한다 .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 이야기가 좋은 예다. 젊은 시절 조조는 정의에 불타서 한나라 황실을 말아먹은 동탁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망명길로 들어섰다. 동탁은 온 나라에 방을 내걸고 조조를 잡아 죽이려 했다. 도망치던 조조는 진궁과 함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 여백사 집으로 숨어든다. 여백사는 조조를 숨겨주면 반역죄로 죽게 될 줄 뻔히 알았으나 친구인 조승의 아들인지라 위험을 무릅쓰고 조조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여백사는 쫓기는 조조가 안쓰러워 음식을 대접하려 했지만 마땅한 술이 없어마을로 술을 사러 나갔다. 한편 의심 많은 조조는 느긋하게 쉬면서 기다리라는 여백사으이 말을 믿지 못하고 염탐했는데 자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 큰 놈, 작은 놈 가운데 어느 놈을 먼저 잡을까?”
“ 글쎄, 그래도 큰 놈 먼저 잡는게 낫지 않을까?”
이 말을 들은 조조는 ‘여백사는 관아에 고발하러 가고 나머지 식구들은 나와 진궁을 붙잡으려고 하나 보다’라고 판단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엌을 들여다보니 여백사의 종들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쓱쓱 갈고 있었다. 조조는 진궁의 만류에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아버지 친구인 여백사의 식솔 아홉 명을 칼로 베어 죽였다. 모조리 죽이고 나서 ‘어디 더 숨어 있는 놈이 없나? 하며 뒤뜰로 나가보니 큰 돼지와 작은 돼지 두 마리가 묶여 있었다. 그 돼지를 본 순간 조조는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잘못한 판단 때문에 아버지 치구의 집안을 몰살한 조조는 반성할 생각은커녕 도망가는 길에 술을 받아 오는 여백사까지 죽여 벌렸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생기는 실수가 얼마나 많은가. 나도 내 말 뜻을 잘못 알아듣고 일 년 동안 오해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나를 미워한 사람을 만난 기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일이다. 사제품을 받을 때 광주대교구장으로 은퇴하신 최창무 주교님이 피정 지도를 해주셨는데, 에제키엘서 16장을 묵상 주제로 주셨다. ‘네가 아무리 욕정에 빠져 사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나 하느님은 너를 잊지않겠다’는 말씀이 참으로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마치 하느님과 유혹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내게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은 구절이라 고해성사 때 세상 유혹에 빠져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는 교우들이 있으면 에제키엘서 16장을 읽어보라고 보속을 주곤 했다.
그런데 에제키엘서 16장을 보속으로 받은 한 자매가 1년이 지난 뒤 고해소에 다시 들어와 서럽게 울부짖으며 나를 원망했다. ‘신부님이 주신 보속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다. 내가 그 정도로 더러운 여자는 아닌데 신부님이 나를 창녀 취급했기 때문에 모욕감으로 지옥같이 살았다’며 펑펑 울었다.
에제키엘서 16장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창녀에 빗대어 꾸짖는 내용이다. 하느님이 버려진 여인을 거두어 정성으로 키웠는데 은혜는 모른 채 자신의 아름다움만 믿고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러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다시 용서하고 사랑하겠다는 사랑의 맹세다. 이런 깊은 뜻은 모른채 그냥 딴 남자하고 불경한 잠자리를 했다는 내용만 눈에 들어 온 이 자매는 내가 마치 창녀 취급했다는 생각에 죽을 만큼 힘든 1년을 보냈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망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 후로 고해소에서 나는 감히 에제키엘서 16장을 읽어보라고 보속을 준 적이 없다. 내 말 한마디에 곱고 착한 자매가 1년을 지옥같이 살았다니 진실로 미안할 따름이다.
이렇듯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달 하고자 하는 참된 의미가 때로는 왜곡되어 상대에게 독화살로 꽂히는 경우가 있다. 또 같은 말도 장소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전달 될 수도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평생 은인이신 김창린 신부님은 회만 먹으면 감칠맛이 덜 하다며 꼭 밥과 김치, 굴젓이나 조개젖을 함게 주문하시곤 했다. 신부님은 소문난 미식가셨다. 상추에 밥을 싸서 그 위에 회 두점을 올리고 다시 김치와 젓갈을 올린 뒤 고추와 마늘을 된장에 찍어 쌈으로 말아서 한입 가득 먹으면 회와 김치, 그리고 젓갈에서 나느 특이한 바다냄새까지 어우러져 그야말로 꿀맛이 된다.
김창린 신부님도 그립고 회도 맛있게 먹고 싶어 어느날 횟집에 갔다. 직원을 불러 쌈을 싸서 먹을 수 있도록 김치와 젓갈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이 식당 단골이니 젓갈은 사장님께 이야기 하면 잘 주실 거라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젓갈을 달라는 우리의 요청에 일하는 아가씨의 얼굴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잠시 후 그 아가씨가 김치와 젓갈을 가지고 등장했는데, 오, 이런! 어찌 이런 일이!
아가씨가 김치와 함께 가지고 온 젓갈은 조개젓도 오징어젓도 아닌, 나무로 된 젓가락이었다. 이 아가씨는 우리가 말하는 젓갈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 젓가락이 다 있는데 왜 또 다른 젓가락을 가지고 오라고 할 까 ? 라고 의아해 하면서 쇠젓가락이 아닌 나무젓가락을 가져왔던 것이다.
한 단어도 여러 가지 의미로 들 릴 수 있으므로 내가 하는 말과 듣는 말이 다 맞다고 우길 수도 없다.
첫댓글 황창연 신부님의 글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여운이 커 함께하고 싶어 올립니다.-< 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 까> 중에서
좋은글 올려주셔서 잘읽고 가슴에 담아 감니다.
ㅎㅎㅎㅎㅎ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겪는 착오들이군요. 감사합니다.
한집에 사는 사람과도 서로 다른 통로로 한사람은 1층으로 한사람은 2층으로 가니 중간에 만나는 소통이 안되기 일쑤입니다.
하느님과도 그러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