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집회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핑계 같지만 정말 도저히 참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여기 모인 삼만 박사모 회원분들중 그 누구보다도
열혈 박사모요 진성 박사모라고 자부하지만 저는 앞으로 박사모를
비롯한 다른 어느 보수. 우익 단체의 집회라도 참석을 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 없지만 저 역시 안타까움과 송구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오늘 퇴근하기가 무섭게 집에 들어와서 컴 앞에 앉아
오늘 집회의 상황을 묘사한 회원 여러분의 글과 동영상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놀랍고 감격스럽고 흥분되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우선 집회 장소에 모인 그 많은 인파의 물결,
저는 지금까지 집회. 시위라면 대학다닐 때 좌익 운동권 학생들의 폭력시위나
그 이후의 친북. 좌익세력들의 시위밖에 보아 오지를 못했는데
이러한 보수. 우익세력들의 집회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고
그리고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수 많은 애국시민들이 흔들어대는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
하늘이 무너질 듯한 애국시민들의 포효,
그리고 청와대로의 행진을 가로막으며 무자비한 진압을 펼치는
전경들과의 치열한 혈전, 그리고 오늘 집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50대이상의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저씨, 아줌마였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연로하신 분들이, 특히 역사책에서나 그 존함을 들어보았던
6.25와 월남전의 영웅이신 백선엽장군, 채명신 장군, 이러한 분들이 손자뻘되는,
아들뻘되는 전경들이 무자비하게 휘둘러대는 방패에 짓이겨지고 진압봉에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장면을 보면서 온 몸의 피가 너무 끓어오르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제 자신이 송구스럽고 너무 한심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오늘 그 행진의 가장 선봉에 서서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러대는 전경들을 다 때려눕히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퍼부어대는 물대포를 제가 다 맞고 그분들을 보호하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더우기 애국시민들을 가로막고 있는 전경들 뒷편 멀찍이서 젊은이들이
무슨 서부활극을 보듯이 구경을 하고 있더라는 어느 회원님의 목격담을 읽는
순간 정말 눈앞이 캄캄해옴을 느꼈습니다.
어쩌다 나라라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아주 어려운
시기에 온갖 고초를 겪으시며 이 나라를 건국하고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청춘을
다 바치신 그 분들이, 사진으로 보아도 백발이 성성한 저 분들이, 어느 회원님의
말씀처럼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저분들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슨 덕을 보겠다고 이제 이런 일까지 나서셔야 하는가?
그리고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다 어디가고 이렇게 연로하신 분들만
저 자리에 모여 꺼져가는 촛불같은 마지막 기력을 소진하시는가? 그리고 이러한
연로하신 분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모습을 팔짱끼고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다던
그 젊으이들은 무엇인가? 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예전부터 제 혼자 마음속으로 염려해 오던 일들이 정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순간 눈앞이 캄캄해 옴을 느꼈습니다.
두 여중생의 추모촛불 시위때는 그렇게 많이 모이던 젊은이들,
월드컵때 그렇게 온 거리를 다 메우고 대한민국을 외쳐대던 젊은이들은 다 어디가고
이렇게 자기 한몸도 가누는 것조차 기력이 부치실 어르신들만 모여 계신가?
또 손자같고 아들같은 전경들에게 저분들이 저런 고초와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하는 참으로 슬프고 비통한 생각이 제 가슴과 머리속을 휘감았답니다.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또 세월이 더 흘러 저 연로하신 분들이 모두 가시고 나면 그 뒤에는 우리
나라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사모 회원 제위 여러분!
왜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오도되고 왜곡된 사고에 젖어들게 되고
왜 이런 방관자들이 되었는가, 우리 모두 정말 심각하고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정말 뼈를 깍는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게시판에서 우리 박사모 전 회원 여러분에게, 아니 우리 전 국민 모두에게
절규하고 싶은, 간절히 외치고 싶은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을 이렇게 불효자요 비뚤어지고 왜곡된 사고의 장으로내몰고
방관자로 만든데는 우리 사회와 또한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러한 젊은이들을 키우신
어르신들과 부모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가 자라서 말배우기 시작할때 쯤이면 영어학원이니 피아노학원이니
미술학원이니 등등 하면서 여러 종류의 학원을 보내서 지식과 기예를 연마하는데
최우선을 둡니다.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 잘하는데만 신경을 쓰고 온갖 종류의
과외를 다 시키지요. 그것도 웬만큼 여유가 있는 분들은 고액과외니 쪽집게과외니 하면서
서민들은 엄두도 못낼 그런 과외를 시킨다고 합니다.
부모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그야말로 전쟁이지요.
그런데 뭐 이것까지는 좋다 그겁니다.
그러나 자식 양육하고 교육하는데 이것이 전부입니다.
가정이고 학교에서고 공부 잘해서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좋은 대학교에 가서
출세하는 방법과 수단밖에 가르치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 절 젊은이들은 지극히 이해타산적이라고 합니다.
극히 이기적이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는 무관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아직 나이가 마흔이 채 안되었지만 (정확하게 38세입니다.) 제 또래의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경향을 사실 너무 많이 느낍니다.
정말 우리나라 교육이 더 이상 이렇게 흘러가서는 결코 안됩니다.
지식만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다름 사람 앞에 나가서 말만 번드러지게 잘 하고
눈치만 빠르고 기회와 찬스에만 강한, 그런 영악하고 얍삽한, 기계적인 인간만을
양산하는 그런 망국적인 교육은 이제 청산하여야 합니다.
한마디로 교육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왜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 사이에 폭력이 난무하고 이지메니 왕따라는 것이 활개를 쳐서
학생들이 깊은 상처를 안고 추억과 낭만으로 가슴에 간직되고, 기억되어야 할
학창시절이 지옥과도 같은 악몽의 순간으로 남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육이 인간교육은 등한시한채 특히 학교가 지식을 주입하는 입시학원화되고
치열하기 그지없는 경쟁속에 학생들의 순수함이 모두 사라지고 학생들의 정서가 황폐화되고
고갈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사모 회원 제위 여러분!
이제 더 이상 여러분의 자녀들을, 이 나라 청소년들에게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지 맙시다. 다만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기를 기대합시다.
그리고 또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는 첫째로 정의로운 인간이 되기를 기대합시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기대합시다.
같은 학급의 힘이 약한 친구가 그 학급에서 주먹으로 휘어잡는 불량스런 학생들로부터
부당한 괴롭힘과 따돌림, 혹은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나만 당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하에 책만 붙들고 앉아 공부만 하던지 방관하던 학생이 과연 정말 공부를 잘 해서
수재 소리를 들어가며 일류대학교 들어가고 또 판사, 검사,의사 되고 교수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었을때 그런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이 나라 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번 생각을 해 보셨나요.
반면에 같은 학급의 친구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때 그 친구를 외면하고
공부만 하던 그 학생보다 비록 공부는 약간 뒤떨어지지만 따뜻하고 의로운 마음으로
그 수렁에 빠진 고통받는 억울한 친구를 감싸주고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그
친구를 괴롭히는 불량스런 학생들과 용감하게 맞서싸울수 있는 그런 용기를 지닌 학생이
남의 불행을 외면하고 공부만 하던 학생보다는 인생을 훨씬 멋있고 보람있게 값어치 있는
삶을 살고 또 우리의 조국과 사회, 미래를 맡겨도 되는 학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옷을 남루하게 입으신 시골 할아버지가 시집간 딸의 주소
를 적은 종이쪽지를 들고 지리를 물어올때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여 그 할아버지의 거칠은
손목을 부여잡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채 도심의 복잡한 골목을 헤매다
닐수 있는 따듯한 인간미와 예의를 가진 그런 사람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키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말에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오고 훌륭한 부모밑 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고 합니다.
또, 옛 스승이나 부모님들은 제자나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먼저 제자나 자식이 보는 앞에서
,너를 잘못 가르친 나의 잘못이 더 크다, 고 이르시며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호되게 때리는
모습을 보여 주므로써 제자나 자식이 잘못을 뉘우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게 중요한 것
이 아니라 어린 자녀들에게 예와 도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른 것, 참되고 바른것, 진실한 것,정의로운 것을 먼저 가르쳐 한다고 생각합니
다. 텔레비젼의 저질 코미디 프로를 보고 즐거워하고, 연예인들의 이름이나 꿰고
하는 이런 감각적인 사람보다는 엄숙한 것, 진지한것, 크고 무거운 것들에 대
한 냉철한 이해와 뜨거운 정열을 가진 사람으로 자녀들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살신성인의 고귀한 정신을 일러주고 우리 역사가 어떻게 시작이 되어서
여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흘러왔고, 우리의 선조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떠한 역사적 과제와 숙명이
주어져 있는가에 대한 교육, 그것이 정말 오늘의 청소년들과 자녀들에게
필요한 지식이 아닐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우리 조상전래의 전통과
문화, 얼을 다시 창조적으로 오늘에 되살려야 합니다.
옛 신라시대의 화랑도의 세속 5계와 삼강오륜및 유교의 경전인 사서삼경에 등장하는
충효의 정신, 인과 예, 의와 같은 정신을 교과과목을 개혁을 해서라도 오늘날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멀리는 옛날 신라의 화랑인 관창과 반굴(솔직히 저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만)이 15세의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하여 적진으로 달려가
목숨을 바친 그 훌륭한 화랑의 얼과 기개를 가르쳐 주고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의 마지막 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으신후 숨을 거두시면서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던 그 위대한 우국충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가까이는 지금 학생들에게 왜곡교과서로 교육되고 있는 박정희 대톨령과 육영수
여사님의 위대함과 훌륭하신 정신및 그분들의 고귀한 일생을 바르게 알리고 진정 어떠한 삶이
보람있고 값어치있는 삶인가에 대하여 가르쳐 주어 남을 배려하고 아끼고 위할줄 아는 삶이 어
떠한 것이지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리거리에 빌딩만 많고 차량의 홍수를 이루고 국민소득 2만달러만 달성하다고 절대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충만한, 각자 세대가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또 그 소임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때 그것이 바로
세계 일등 문화선진국으로 거듭나 진정으로 풍요롭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를 건설
하는 첩경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에서 열거한 교육의 혁명이 이루어져 우리 학생들이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성장했을때 더 이상 오늘과 같이 연로하신 분들이 거리로 나서 손자뻘되는 전경들과 혈전
을 벌이고 피를 흘리시는 지극히 민망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지 않고 젊은이들이
진정한 애국의 목소리를 우렁차게 포효하는 그런 날들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를 잃고 이천년 동안이나 세계각지에 흩어져서 모진 학대와 멸시를 받
고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전통과 문화 주체성을 잃지 않고, 또한 타 민족에 동화되지 않
고 살아남아 끝내는 자신들이 나라를 건국 할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후세에
대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철저하고도 끊임없는 교육 때문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
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두서없는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신데 깊이 감사드리며 진정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충정에서 제가 느낀 바를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제가 오늘 올리는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박사모 게시판에 올린 글이 몇개 있는데
정말 제가 모든 박사모 회원님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국민에게 부르짖고 외치고 싶은
내용이기에 다시 한번 퍼다 올리겠습니다.
카페 게시글
박사모 대구달서구지부
2030을 위한 글(놀라움, 감격, 희망, 죄송, 그리고 크나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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