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가 무너질 때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두고 패권을 다투었다. 결국 유방이 이겨 한나라를 세웠다. 그 한나라를 중간에 토막 낸 자가 있었다. 왕망이 그다.
왕망은 신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15년 만에 유방의 후손인 광무제에 의해 평정되었다. 그 광무제부터 후한이라는 연호를 썼다.
후한의 광무제가 죽고 그의 넷째 아들인 효명이 천자로 즉위하였다. 천자가 된 7년 후 황상에 앉아 낮잠을 잤는데 기이한 꿈을 꾸었다.
황금색을 띈 거룩한 신인이 저 멀리서 태양과 같은 광명을 찬란하게 내뿜으며 천천히 날아왔다. 그러더니 공중에서 여러 번 황궁을 둘러보다가 궁궐의 정원으로 위엄스레 내려왔다.
꿈이 매우 신기해 신하들에게 물었다. 한 신하가 주서이기라는 책을 보았는데 거기에 주나라 소왕 24년 4월 8일 주소왕이 상서러운 오색광명이 황궁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답니다.
대신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하자 기록관인 소유가, 서방에 대성인이 나타날 것입니다. 천년이 지나면 그 성인의 교법이 폐하가 다져 놓은 이 땅으로 들어와 후손들에게 큰 복전이 될 것입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주소왕으로부터 천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인도에 큰 성인이 태어났을 것 입니다. 그 교법이 이 땅으로 들어오는 인연이 이제 된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 말에 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곧 두 명의 왕과 대신 18명을 뽑아 그 신인을 직접 모시러 월지국으로 보냈다. 거기서 그들은 인도 최고의 고승 카샤파마탕가와 다르마락사스님을 만났다.
그분들이 황제의 읍소를 받아들여 월지국을 떠날 때 난데없이 고삐 없는 백마 한 마리가 나타나 크게 울었다.
그러더니 불상과 경전이 놓인 곳으로 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스님들은 그 백마에다 사십이장경과 십지단결경, 그리고 불화 한 폭을 실었다.
백마는 중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훤히 알고 있는 듯 늘 앞에서 이끌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땅에다 엎드리지 않았다. 칙사들은 백마와 함께 천신만고를 겪으며 3년 만에 낙양성에 들어왔다.
금빛 나는 불상을 태운 새하얀 백마가 당당히 앞서고 대신들이 머리 숙여 따라가는 행렬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 특별하고 장엄한 모습은 장안의 모든 백성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매불망 불법을 기다리던 황제가 가섭마등과 축법란으로부터 불상과 불화, 그리고 경전을 받고는 크게 기뻐했다. 더불어 백마의 노고까지 치하하려 했으나 백마는 이미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백마를 다시 못 본 황제는 몹시 아쉬워하면서 두 스님을 홍려사에 머물도록 하였다. 그리고 칙령으로 장안성 서쪽 옹문 밖에 따로 홍려사를 지어 그들을 편안하게 모시라고 조처했다.
홍려寺라고 하니 절인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때는 불교가 없었기에 절 자체가 없었다. 그것은 국가의 객사로써 나라의 큰 손님을 위한 영빈관이었다. 그러니까 그 寺는 관청 사 자다.
후한의 국교는 유교였다. 물론 도교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황제가 불법을 모시러 인도에 사자를 보냈다는 소문이 장안에 퍼지자 온 나라의 민심이 벅적하고 흉흉하였다.
그러자 전국의 유생들은 물론 5대 명산의 도인들까지 장안으로 내려와 궁궐 앞에서 큰 시위를 벌였다. 천하없어도 중국에 불교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며 결사 항전을 하였다.
그런데 머리를 깎은 검은 피부에 황색가사를 걸친 불교스님이 장안에 나타났다. 그들은 폭발했다. 그래서 떼거리로 황궁에 몰려가 일제히 부복하고 불교인입을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불교는 출가를 독려하기에 인본이 무너진다는 유교와, 진리는 오로지 무극대도밖에 없다는 도교와 오랑캐종교는 민심을 흐리게 한다는 5두미파와 태평도등 토속 무속인들이 목숨을 걸고 극렬하게 반대를 했다.
급기야 그들은 황제에게 두 스님을 참수하고 불경을 불살라달라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가르침이 더 우수한지 각자가 내세우는 경책을 불에 태워 그 진위의 진가를 가려보자고 했다.
이 우격에 황제는 기가 막혔다. 그들은 셋 다 타버리면 구태여 불교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고 했다. 만에 하나 불교의 경전이 타지 않으면 불경죄로 당당히 참수를 당하겠다고 했다.
황제는 어쩔 수 없이 그 생뚱맞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황제는 셋 다 타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경책만이 최고라서 결코 불경보다 뒤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유교에서는 논어를 도교에서는 도덕경을 불교에서는 사십이장경을 대표경전으로 내놓았다. 그것들을 각각의 토기 함에 넣고 장작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시뻘건 불을 붙였다.
불길이 사그라지자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잿더미 속의 토기 함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논어와 도덕경은 다 타버렸지만 사십이장경은 그대로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을 본 그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제 분에 못이긴 자들은 바로 우물에 빠져 죽거나 나무에 목을 매었다. 어떤 도사는 씩씩대며 자기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기도 하였다.
이 이적을 본 황제는 이제 정식으로 불교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저항하는 자들이 있었다. 황제는 두 스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약속대로 참수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불교가 처음으로 동북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명나라 고승 고령대사는 사십이장경을 해설하면서 머리글에서 자세히 밝혀 놓았었다.
그와 같은 일은 구마라지바에게서도 일어났다. 공의 도리로 마음의 틀과 의식의 기준을 철저히 깨뜨린 구마라지바를 사람들은 무섭게 질시했다. 급기야 그들은 그가 번역한 경전들을 믿을 수 없다고 까지 했다.
구마라지바는 내가 죽고 난 뒤 다비를 할 때 평생 空을 설한 내 혀가 불에 타버린다면 내가 번역한 것들은 다 거짓이다고 했다. 그가 죽어 다비를 하니 연꽃이 그의 혀를 받치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 요흥이 칙령으로 그가 번역한 모든 경전들을 천지에 전파하라고 했다. 그렇게 금강경과 일체의 실상경전이 공인이 되어 만천하에 보급된 것이다.
효명황제는 42장경의 말씀이 희고 깨끗한 마음의 백마를 타고 대륙 전체에 백마의 속도처럼 빠르고 힘차게 퍼져나가라며 그들이 머물고 있던 홍려사를 서기 68년에 백마사로 개명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 건물이 동북아의 최초 불교사찰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천년이나 되는 셈이다. 그 절에서 수많은 대소승 경전들이 번역되어 동북아의 중생들을 고해에서 건져내기 시작했다.
초발심자경문은 수행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행실에 대해서 스님들과 보살이 설했다면 이 사십이장경은 불교의 핵심사상인 고 무상 무아 공의 진리를 부처님이 직접 설하셨다는 것이다.
이 경전과 쌍벽을 이루는 경전은 부처님의 유언인 불유교경이다. 사십이장경은 부처님의 재세시에 제자들을 위한 말씀이고 불유교경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난 뒤의 중생들에게 남긴 말씀이다.
큰 게 좋다고 해서 큰 것을 머리에 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비틀거리다 넘어져 다리를 다친다.
복도 근기도 안 되는 불자가 소의경전이라며 금강경을 이고 비틀거리는 대신 차라리 간단하고 명료한 이 사십이장경을 신행의 지표로 삼으면 늦게나마 인생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42 챕트로 구성된 사십이장경의 말씀들을 한 챕트씩 의역해 그 뜻을 심도있게 공부해 나간다. 챕트의 제목은 송나라의 수수스님 것을 기준으로 한다.
ㅡ계속ㅡ
출처:대승기신론 해동소 전문도량 원효센터 1부 법회 공파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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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불교를 안착시킨 한자 최초의 경전 42장경을 아십니까? 공파스님이 의역한 42장경을 연재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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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나라가 멸망할 때는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투어 유방이 이겨 한나라를 세웠고
한나라가 무너질 때는 그 유명한 삼국지의 무대 조조와 유비와 손권이 패권을 두고 싸웠지요.
셋 다 천하의 패권을 잡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요.
백마사에 그런 감동적인 뜻이 들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왜 중국 최초의 절 이름을 백마사라 했는지 늘 궁금해 왔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글 올려주신 분 The west 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저는 다른 42장경 역해서 보고 경전과 불상 싣고 온 말이 백마여서 그 공덕을 기리느라 백마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The west 더 놀라운 것은, 42장경만 불타지 않고 남아있다면 그걸 읽어 볼 생각을 해야지 왜 성급하게 자살을 하는겁니까? 확인작업 안 하고! 어짜피 죽을 목숨.
우물에 빠져 죽고, 목매어 죽고, 고집 부리다 참수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은 정말 소름끼칩니다.
@The west 우리가 불경을 싣고 중생세계 어디든 백마처럼 뛰어야 하는데 그 능력이 안되어서 심히 죄송스럽습니다.
동아시아 문명의 종주국인 중국이 불교를 수용하는 '첫 관문'이 된 경전, 이 거룩한 42장경을 공파스님의 깊은 안목과 혜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불자들에게 둘도 없는 감동이자 축복입니다.
30년 전 1996년 불유교경 역해서인 말세중생들을 위해 남긴 금쪽같은 최후의 유언, '부처님의 유언'의 충격을 기억합니다.
이번 역해는 시중의 여타 번역서와는 궤를 달리하는 정통 역해의 정수입니다.
스님의 깊은 안목과 혜안으로 걸러진 문장들은 마치 봄비가 대지를 적시듯, 아니 여름 소나기처럼 메마른 우리 마음에 부처님의 지혜를 깊숙이 스며들게 할 것입니다.
공기 먹고 구름똥 싸는 슈퍼 파워가 아닌, 세상사람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써 정통 불교를 알리려는 노력이 중국최초의 불경 42장경으로 불씨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_()_
불교가 없던 곳으로 처음 들어갈 때는 다 그런 이적을 보이나 봅니다.
신라에 들어올 때도 이차돈이 목을 내놓았는데 그 목에서 흰 젖이 솟구쳤다지요.
다 전설로 묻어버리기엔 너무나 거룩한 희생이고 아까운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이 귀중한 경전이 수 천년 동안 이 사바 세계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지키고 보호하여 보잘 것 없는 저마저 볼 수 있도록 노력해 오신 수많은 스님들께 한없는 경의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_()_
사람들 욕심이 많아서 큰것만 좋아하다 보니 금강경을 택하나 봅니다.
맞지도 않는 큰신발을 신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금강경을 신행하는 자들이 다 중도에서 그만두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금강경이 곧 불교인가?
오염된 마음의 분석과 분류에 치중하느라 번뇌와 무지의 소멸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놓치고 만 금강경 아닌가요?
금강경 오가해 중 야보스님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찌해야 할까요.
사실 금강경을 풀어놓은 야보스님의 풀이를 다시 풀어놓은 역해서를 꼽씹어도 법문듣고 아아 감탄하다 빈 깡통 들고 다시 다리밑을 벗어나는 거지와 무엇이 다를까 자괴감을 느낀적 있습니다.
그런다고. 까마귀가 백로 되나유~~
야단법석tv~ 불교뉴스 브리핑 =자승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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