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說四十二章經
* 본문에 나오는 비구와 사문은 수행자들이다. 사부대중은 수행해야 한다. 수행하지 않는 자는 불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와 사문 불자 전체를 하나의 수행자로 통칭한다.
世尊成道已作是思惟離欲寂靜是最爲勝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나서, 세상의 욕망을 버리고 쓸쓸히 맑은 수행을 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었다.
住大禪定降諸魔道
그 때문에 큰 선정에 들어 모든 마장을 항복 받았다고 생각하셨다.
於鹿野苑中轉四諦法輪度憍陳如等五人而證道果
그리고 녹야원에 가셔서 사성제로 불법을 펴 교진여 등 다섯 수행자를 제도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셨다.
復有比丘所說諸疑求佛進止世尊敎勅一一開悟
또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에 의심을 가진 자들에게는 부처가 되는 과정을 일일이 지도해 막혀진 마음을 열도록 하셨다.
合掌敬諾而順尊勅
그래서 모두 부처님께 합장하고 존경하며 그 가르침을 온순하게 따랐다.
第一章 出家證果
제1장. 수행하면 네 단계의 깨달음을 얻는다.
佛言辭親出家識心達本解無爲法名曰沙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의식의 작용과 마음의 근본을 통달하려면 원래의 마음이 어떤 건지를 알아야 한다. 그걸 알려고 하는 자가 수행자다.
常行二百五十戒進止淸淨爲四眞道行成阿羅漢
수행자 중에서 출가한 자는 항상 250계율을 지키면서 네 가지 진리인 사성제를 청정하게 수행하라. 그러면 아라한이 된다.
阿羅漢者能飛行變化曠劫壽命住動天地
아라한은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고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 수명은 영원토록 이어지며 그 능력은 천지를 움직인다.
次爲阿那含阿那含者壽終靈神上十九天證阿羅漢
그 아래는 아나함이다. 아나함은 수명이 다해 죽으면 그 신령스런 혼령이 19천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아라한이 된다.
次爲斯陀含斯陀含者一上一還卽得阿羅漢
그 아래는 사다함이다. 사다함은 여기서 한번 죽으면 천상에 올라갔다가 다시 이 땅에 재림한다. 그리고 여기서 아라한이 된다.
次爲須陀洹須陀洹者七死七生便證阿羅漢
맨 아래는 수다원이다. 수다원은 여기서 죽고 천상으로 갔다가 다시 재림하는 것을 일곱 번 한다. 그리고서 아라한이 된다.
愛欲斷者如四肢斷不復用之
아라한이 되려면 애착과 탐욕을 끊어라. 그러면 끊어진 팔다리처럼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第二章 斷欲絶朕
제2장. 탐욕을 끊으면 가짜 나는 없어진다.
佛言出家沙門者斷欲去愛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들은 탐심을 끊고 애욕을 물리쳐라.
識自心源達佛深理悟無為法
부지런히 마음의 근원을 찾아라. 그러려면 내가 가르친 심오한 이치를 파악해 원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內無所得外無所求心不繫道亦不結業
원래 마음은 무엇을 얻을 것도 없고 무엇을 구할 것도 없다. 어떤 법도에도 얽매지 않고 어떤 세계에도 묶임이 없다.
無念無作非修非證
거기엔 망념도 없고 망작도 없다. 닦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다.
不歷諸位而自崇最名之為道
수행의 단계도 없다. 그 자체가 가장 높고 크다. 그것이 원래의 마음이다.
第三章 割愛去貪
제3장. 애착을 끊고 욕심을 버려라.
佛言剃除鬚髮而爲沙門受道法者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한 자들은 불도의 계법을 받아라.
去世資財乞求取足
그리고 세상에서 가진 모든 재산과 재물을 다 내려놓고 걸식의 삶으로 만족하라.
日中一食樹下一宿慎勿再矣
하루에 한 번씩만 먹고 한 나무 밑에서 하룻밤만 자라. 두 번을 먹는다든지 두 밤을 같은 곳에서 보내지 말라.
使人愚蔽者愛與欲也
수행자의 마음을 어리석게 하고 두 눈을 멀게 하는 것은 애착과 더불어 욕심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第四章 善惡並明
제4장. 선행과 악행의 결과는 명확하다.
佛言衆生以十事為善亦以十事為惡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은 열 가지 일로 착하게 되고 열 가지 일로 악하게 된다.
何等為十身三口四意三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손발로 짓는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생각으로 짓는 세 가지다.
身三者殺盜婬口四者兩舌惡口妄言綺語意三者嫉恚癡
손발로 짓는 것은 살생과 도둑질, 그리고 불륜이다. 입으로 짓는 것은 두 말과 악한 말 거짓 말과 아첨하는 말이다. 생각으로 짓는 것은 질투와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如是十事不順聖道名十惡行是惡若止名十善行耳
이와 같은 열 가지는 불도를 거스르는 행위다. 그래서 악행이라 한다. 이런 악행을 하지 않으면 반대로 십선의 행이 된다.
第五章 傳重令輕
제5장. 중죄는 참회해서 가볍게 하라.
佛言人有衆過而不自悔頓息其心罪來赴身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죄 많은 중생이다. 그 죄를 뉘우치지 않고 그대로 둬 버리면 내생에 더 불어서 돌아온다.
如水歸海漸成深廣若人有過自解知非
마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죄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
改惡行善罪自消滅如病得汗漸有痊損耳
죄악을 바꿔 선행으로 옮기면 그 죄는 점점 소멸된다. 그것은 병자가 몸에서 노폐물을 빼 내면 몸이 점차 가벼워지는 것과 같다.
ㅡ계속ㅡ
출처:대승기신론해동소 전문도량 원효센터 1부 법회 공파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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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불교를 안착시킨 한자 최초의 경전 42장경을 아십니까? 공파스님이 의역한 42장경을 연재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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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구와 사문이라는 호칭대신 수행자라고 통칭하니 우리에게 더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불자는 수행해야 한다. 수행하지 않는 불자는 불자가 아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방관자거나 구경꾼입니다. 직접하지는 않고 뒷짐지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자들입니다.
마치 바둑판을 내러다보는 훈수꾼과도 같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문장이 보입니다. 원문에 교진여등에게는 비구라는 말이 없고 그 뒤 문장에는 비구가 보입니다.
교진여를 제도하실 때는 그들이 비구들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그런거라 생각하니
이어지는 한 문장 한문장이 대단히 정확하고 체계적이어서 감동적입니다.
이런 고귀한 경전이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기도 풍조에 파묻혀 있는지 그저 안타깝습니다.
생존에 애착을 두지마라는 뜻에서 걸식으로 하루에 한번씩만 먹어라 하셨고
주거지에 탐착을 하지마라는 뜻에서 어떤 곳이든 하루 밤만 자라고 하신 말씀에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그런 말씀을 따라 힘들고 고독하게 수행하신 수행자들께 목슴다해 귀의합니다. 나모 상가야.
들어가는 글, 비구와 사문 불자 전체를 하나의 수행자로 통칭한다에서 역해자의 고심이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소승불교는 프로페셔널한 출가주의 종교라 넘겨짚고 있었는데요.^^
아라한이 되려면 애착과 탐욕을 끊어라. 그러면 끊어진 팔다리처럼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정말 쥑입니다!
비록 제가 이 삶에서 구현할 순 없다할지라도....
놀랍습니다.
제2장 斷欲絶朕.
소제목을 다신 수수선사의 선기 드날리는 안목도 놀랍지만 절짐을 가짜의 나는 없어진다로 해석하시다니요.
不歷諸位而自崇最名之為道
수행의 단계도 없다. 그 자체가 가장 높고 크다. 그것이 원래의 마음이다.
道를 원래의 마음이라고 풀이함으로써,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구족되어 있는 상태임을 명확히 드러내십니다.
주거지에 탐착을 하지마라는 뜻에서 어떤 곳이든 하루 밤만 자라고 하신 말씀에,
저는 법회 때 한 자리에 계속 앉아 내좌석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공파스님 말씀이 생각 납니다.
물론 말씀 듣지않고 내좌석 꼭 지키고 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람은 죄 많은 중생이다. 그 죄를 뉘우치지 않고 그대로 둬 버리면 내생에 더 불어서 돌아온다.
마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죄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 죄악을 바꿔 선행으로 옮기면 그 죄는 점점 소멸된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