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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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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자유게시판 중국에 불교를 안착시킨 한자 최초의 경전 42장경을 아십니까? 공파스님이 의역한 42장경을 연재합니다. 2
The west 추천 1 조회 433 26.03.04 00:00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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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3.04 07:55

    첫댓글 비구와 사문이라는 호칭대신 수행자라고 통칭하니 우리에게 더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불자는 수행해야 한다. 수행하지 않는 불자는 불자가 아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방관자거나 구경꾼입니다. 직접하지는 않고 뒷짐지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자들입니다.

    마치 바둑판을 내러다보는 훈수꾼과도 같습니다.

  • 26.03.04 08:03

    아주 흥미로운 문장이 보입니다. 원문에 교진여등에게는 비구라는 말이 없고 그 뒤 문장에는 비구가 보입니다.

    교진여를 제도하실 때는 그들이 비구들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그런거라 생각하니

    이어지는 한 문장 한문장이 대단히 정확하고 체계적이어서 감동적입니다.

    이런 고귀한 경전이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기도 풍조에 파묻혀 있는지 그저 안타깝습니다.

  • 26.03.04 08:14

    생존에 애착을 두지마라는 뜻에서 걸식으로 하루에 한번씩만 먹어라 하셨고

    주거지에 탐착을 하지마라는 뜻에서 어떤 곳이든 하루 밤만 자라고 하신 말씀에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그런 말씀을 따라 힘들고 고독하게 수행하신 수행자들께 목슴다해 귀의합니다. 나모 상가야.

  • 작성자 26.03.04 08:23

    들어가는 글, 비구와 사문 불자 전체를 하나의 수행자로 통칭한다에서 역해자의 고심이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소승불교는 프로페셔널한 출가주의 종교라 넘겨짚고 있었는데요.^^

    아라한이 되려면 애착과 탐욕을 끊어라. 그러면 끊어진 팔다리처럼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정말 쥑입니다!
    비록 제가 이 삶에서 구현할 순 없다할지라도....

  • 작성자 26.03.04 08:24

    놀랍습니다.
    제2장 斷欲絶朕.
    소제목을 다신 수수선사의 선기 드날리는 안목도 놀랍지만 절짐을 가짜의 나는 없어진다로 해석하시다니요.

  • 작성자 26.03.04 08:25

    不歷諸位而自崇最名之為道
    수행의 단계도 없다. 그 자체가 가장 높고 크다. 그것이 원래의 마음이다.

    道를 원래의 마음이라고 풀이함으로써,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구족되어 있는 상태임을 명확히 드러내십니다.

  • 작성자 26.03.04 08:38

    주거지에 탐착을 하지마라는 뜻에서 어떤 곳이든 하루 밤만 자라고 하신 말씀에,

    저는 법회 때 한 자리에 계속 앉아 내좌석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공파스님 말씀이 생각 납니다.

    물론 말씀 듣지않고 내좌석 꼭 지키고 있습니다.^^

  • 작성자 26.03.04 08:41

    명심하겠습니다!

    사람은 죄 많은 중생이다. 그 죄를 뉘우치지 않고 그대로 둬 버리면 내생에 더 불어서 돌아온다.

    마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죄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 죄악을 바꿔 선행으로 옮기면 그 죄는 점점 소멸된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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