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위기 극복하기 위한
'성시화운동'에 한국 교회 하나
되어야 김준곤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는, 20세기
한국교회 부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목회자 가운데 한 명이다. 특히 평생 초교파적으로 ‘민족복음화’와 ‘대학 캠퍼스 선교’를 위해 헌신해온 김준곤
목사는, 반세기 가까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나팔수로 복음의 최전방에 있었다.
올해 2007년이면 어느덧 83세의
나이가 되는 김 목사는, 외형은 백발노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민족복음화를 위해 시간을 쪼개며 스케줄 관리를 하고,
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령의 열정으로 민족과 세계를 품는 복음을 이야기할 때면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열정이
묻어나온다.
1958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빌 브라이트 박사와 함께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립하고, 한국 사회와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김 목사와 C. C. C.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셈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리한 C. C.
C. 건물 여러 동 가운데 별관 1층에 자리한 김 목사의 사무실은, 50년 동안 한국교회를 이끌어온 전도자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김 목사는 여전히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연구하고, 비전을 나눈다. 이를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누구를 만나든
복음을 이야기한다. ‘평생 우리 민족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한국 민족이 사는 길은 신앙공동체가 되는 것으로, 오늘의 민족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이기 때문이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최근 김 목사는 조금도 쉼 없는 일정을,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한국
교회를 향해,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이야기한다. 2007년을 ‘성시화운동(Holy City Movement)'의 해로
선언하며, 이 운동을 통해 1907년에 일어났던 평양대부흥운동과 1970년대에 일어났던 전도부흥운동처럼 다시 한 번 한국 교회에 제3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한국 교회 현실을, 마른 뼈로 비유하는 김 목사는, 한국 교회 위기를 성시화운동을 통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국가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개신교 인구가 지난 10년 동안 144,000명 감소되었고, 대학생들도
4%만 교회 생활을 하겠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타났으며, 2005년 한 해 동안 3천 교회가 없어졌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2006년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최근 <세계전도운동사>를 집필한
김남식 목사가 한국 교회 전도운동의 중심축을 이뤘던 김준곤 목사와 대담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김 목사의 저서 <세계전도운동사>
내용 가운데는 한국 교회 전도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지면이 상당히 할애되었는데, 그 중에 C. C. C. 운동과 다락방전도운동에 관한 내용도
상당 부분 비중 있게 다룬 바, 본지 지면에 소개되는 이 의미 있는 대담은, 늘 ‘한국교회와 함께 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온
다락방전도운동으로서도 또 다른 응답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다음은 본지 편집국장 장일영 목사의 진행으로 이뤄진 김준곤 목사와 김남식
목사의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 대담 : 김준곤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 김남식 목사(한국상담선교연구원 원장) ◇ 진행 : 장일영 목사(세계복음화신문 편집국장)
-
장일영 목사 : 2007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평생 민족복음화를 가슴에 품고 달려가시는 김준곤 목사님을 모시고 한국 교회 현
상황과 전도ㆍ선교 운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특히 2006년부터 한국 교회
곳곳에서 한국 교회 위기론을 이야기하며, 평양ㆍ원산 부흥운동 어게인(Again)을 외치며 열망은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안타까운 부분도
있습니다. 전도와 부흥의 본질 보다는, 조직부터 하려는 움직임이 더 대두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가운데 김 목사님이 한국 교회를 살리기
위한 대안으로 ‘성시화운동’의 총재를 맡으시면서, 활발한 움직임을 갖고 계시는데요.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21세기 민족 구원운동을 위해, C.
C. C. 운동과 성시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때마침 김남식 목사님이 세계교회사를 전도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한
<세계전도운동사>를 출간하게 돼 한국교회의 전도운동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두
분 목사님께서 나누는 오늘의 대담을 통해 한국 교회가 함께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을 나누고, 또 그 기도가 우리 삶 속에서 응답받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C. C.
C.와 함께 한 시간들 - 김남식 목사 : 먼저 김준곤 목사님께서는 1958년 한국 C. C.
C.를 창립하시고 지금까지 민족복음화의 큰 물줄기를 이어오셨는데요. C. C. C. 창립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김준곤 목사 : C. C.
C.는 1958년에 발족되었습니다. 그 배경이 있습니다. 제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여러 가지 어려운 위기 중에 살아왔고, 또 6.25를
겪었습니다. 그 때 장로교인이었는데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주님께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민족의 역사를 보는 관점도 주셨고, 무엇이
고쳐져야 하겠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잠깐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제 생애 최대의 의미 있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빌 브라이트 박사입니다. 저에게는 형제 같은 사람이지요. 빌 브라이트 박사는 프린스턴에서
공부하고, 풀러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집안도 대단했어요. 백만장자였는데, 그 좋은 환경을 다 내버리고, 목사를 10번도 될 사람인데 그것도
마다하고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UCLA 대학 근처에서 걸인들에게 전도하며, 조그만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저에게 접근을 해왔어요.
그 사람이 가진 복음과 삶의 방식은 사도행전 29장, 성경에서 막 튀어나온 사람 같았어요. 먹는 것, 자는 것도 오직 전도를 위해서였어요. 이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마치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가 배울 것이 이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빌
브라이트 박사가 한국에 대한 가슴이 있었어요. 빌 브라이트 박사는 세계, 특히 한국을 잘 모르면서도, 기도할 때마다 한국에서 전도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1958년에 한국에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미국 유학 이전부터 서약하고 헌신했던 것이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전도해서 민족복음화, 한국 복음화를 이뤄 세계 선교를 해야겠다는 비전이 있었어요.
- C. C. C.가 어떻게 각 대학 캠퍼스마다 확산되어갔는지요. ▲ 처음에는 개인 전도를 했습니다. 서울공대, 이화여대, 고려대, 서울여대(前 수도여자사범대학)
등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당시 총장이었던 김활란 박사, 고황경 박사 등과 친분이 있었는데, 이 분들이 함께 기도하고 후원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이들 대학을 포함해 5개 대학 앞 다방에 가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생들을 만났어요. 다방 주인에게 돈을 더 얹어줘서 고정좌석을 예약했어요.
주로 학생들이 이용하는 다방이었는데, 다방 주인이 학생들 인상을 봐서 좋은 사람 같으면 예약석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학생들에게
전도를 했지요.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같이 자기도 하면서 처음 2년 동안 250명의 결신자 학생들을 얻었어요. 개척 전도였습니다. 여러
유형의 대학생들을 만났어요. 다방뿐만 아니라 교문 앞에서, 도서관, 식당, 개인 벤치, 하숙집 등에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어요. 2년 동안
7번 돌아가면서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여름수련회를 했습니다. 그 때 주제가 고린도전서 4장 15절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는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250명을 모아 한 명씩만 전도하자고
했어요. 정말 500명이 모여졌어요. 4박 5일 동안 제가 설교를 하면, 그 내용을 그대로 일대 일로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4시간
동안 제가 250명을 다 만났습니다. ‘전부 결신하게 될 것’이라는 기도가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결신하는 시간에, 단 두 명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마치 총 맞은 노루가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어쨌든 그 자리에서는 두 명 외에 전부 결신을 했는데, 하나님은
너무나 정확하고 멋진 분이셨습니다. 수련회가 끝나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제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그 중의 한 명이었어요. 나중에 미국 유명한
신학대학을 나와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습니다. 이렇게 250명이 모두 결신하게 되었고, 수련회를 통해 500명의 제자가 세워지게 된
것이지요. 이들을 전국 캠퍼스에 파송했습니다. 지도교수 세워 학교마다 네트워크화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도훈련을 시키는 요원이 된
것이었어요. 교회 가면 칭찬을 듣고, 각 현장에서는 ‘순 운동’이라고 해서 순 조직을 했습니다. 세포가 모든 세포와 연결되는 것처럼, 순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의 입체적 복음화를 위해 나사렛형제들을 창립했습니다. 나사렛 형제들의 가장 작은 단위의 순은 7명입니다. 순은 가정(사회의
기본 단위)과 교회(영적 공동체의 단위) 사이에 사회구조론적 생세포 사이에서 새로운 단위로서 지역별, 남녀별, 직능별, 소사이어티 특수 사명을
고려해 다양한 형태를 형성하여 생세포 조직망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캠퍼스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시험을 했습니다.
특히 농촌교회에서 초등학교 교사 14,600명을 데리고 2년 동안 방학을 이용해 4박5일 동안 훈련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사들이 각 학교로
흩어지면 반 아이들이 100% 믿게 되고, 학부형도 믿게 되고, 농촌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었습니다. C. C. C. 교사 한 명이 300명을
전도해서 훈련시키고 관리하는 사례가 생기기도 했었어요. 세일즈맨으로 치면 최고의 세일즈맨이고, 예수님은 최고의 상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소문이
나자 각 교회 목사님들이 서로 자기들도 훈련시켜달라고 해서, 각 학생들이 각 교회로 흩어지게 됐어요. 그래서 300개 교회를 택해서 1년 동안
해봤는데, 각 교회마다 배 부흥은 물론이고 심지어 10배가 되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입소문은 엄청났습니다. 각 교회마다, 목사님들이 찾아와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 이런 부흥 속에서 C. C. C.
주관으로 이뤄진 엑스플로 ’74대회는 한국 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 이렇게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확장되고, 확산되니까 70년대 당시 4영리를 배워 전도하는 학생들이 금새
8천여 명을 넘어섰어요. 폭발이 일어난 셈입니다. 엑스플로 ’74를 기획하면서 참으로 핍박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장로교 합동 측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박형룡 목사가 제 스승입니다. 족보는 분명한데, 하는 것을 보면 초교파적으로 통일교의 문선명 비슷하게 하는 행동이었나 봅니다.
노회에서 결의해 총회까지 저를 반대하는 입장들이 올라왔어요. 조사위원들이 저에게 왔는데, 아는 사람들도 참 많이 왔어요.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학생들을 움직이니까 예의주시하는 눈길이었습니다. 엑스플로 74 대회를 하기까지는 불가능한 것들이 74가지도 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요소들이 참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플로 74는 한국 교회 부흥 폭발을 위한 불씨였어요.
197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5박 6일 동안 여의도 광장에서 모였는데, 당시 한국에 280만 명의 교인 중 10분의 1인
32만3천4백19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교회 수는 95%에 달했습니다. 그 이듬해 1천 개의 교회 주보를 수합하여 조사한 결과
교회출석수는 33% 증가하고, 헌금은 64% 증가했습니다. 매일 개척교회가 하루에 6, 7개씩 세워졌습니다. 수십 만 명이 선교 헌신을
했습니다. 이때 경제기획원 통계에 의하면, 1970년대부터 1980년 중반까지 15년 동안 경제가 980% 성장했다고 나옵니다. 가은 시기에
우리나라 교회들은 350% 성장했습니다. 즉 영적 부흥이 경제 부흥으로 이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운동이 한국에 다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 한국 교회 위기의 주원인은 개 교회주의 - 최근 목사님은
한국 교계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현재 한국 교계의 현실과 전도운동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시지요.▲ 한마디로 한국 교회는 비만증이고
운동부족증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하는 잔치를 벌이고, 성도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벽돌 안에서 가둬놓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단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개 교회주의라는 말이지요. 사단의 전략이라는 것은 통계청의 결과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5년 648만
명에서 1995년 876만 명으로 급성장하던 기독교인들이 2005년 861만 6천명으로, 14만4천명이 줄었다고 합니다. 전체 종교 인구수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증가해 불교와 천주교 인구는 늘었는데, 유독 개신교 인구만 줄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천주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진석 대주교가 서울 대교구에 본당 100개가 더 필요한데, 성당을 새로 짓지 말고 여러 구역이 하나의 성당 건물을
사용하자고 말했습니다. 즉 큰 교회 하나를 짓는 대신에 10개의 작은 교회, 공동목회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는 어떻습니까.
재판해서 갈라져 나오고, 싸우고 또 세우고, 이제는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전부 흡수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인 셈입니다.
물론 개 교회 목사님들이 그 동안 잘 한 점도 많습니다. ‘교회 경영(처치 매니지먼트)’를 너무 잘 했어요. 세상적인 경영도 못 따라올 만큼 잘
했어요. 목회자들이 유급 전도사를 활용하여 각 성도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하게 케어 합니다. 심지어 성도들의 수입, 생일이 언제인지, 자녀
학교 문제까지 상담해줍니다. 그런데 이 교회 경영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지금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작년 1년 동안 3천 교회가 없어지고,
청년들은 떠나고, 교회를 개척하면 3년 만에 없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신학교도 지나치게 신학생들을 과잉 생산한 것도 잘못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주실 만큼 주셨습니다. 헌금, 십일조, 신학교, 주일 성수, 성도들의 헌신 등등 많이 주셨어요. 그런데 이것이 개 교회화
되어 과부화가 됐어요. 가분수가 됐습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은 사라지고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 방향을 바꿀 때가 됐습니다.
한국 교회도 번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장2절 말씀대로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개 교회주의에
머무른다면 한국 교회는 10년 내에 구라파처럼 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 70%가 성도 100명 미만인데, 각 교회들이 전체 재정의 70%를
선교비로 책정한다면, 특히 교파 단위로 하지 말고, 교회 짓는데 쓰지 말고 전도하는데 사용한다면, 한국 교회는 70년대처럼 부흥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국내 선교가 일어나는 만큼 세계 선교는 되어 집니다. 모든 부흥의 열매는 전도로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전도라는 말만
있지 전도 실천이 없습니다. 지금의 교회 부흥이라고 해봐야 도시로 모여든, 문화의 대형화 때문에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하는
지, 10년 후면 알게 될 것입니다.
◇ 성시화운동(Holy City
Movement) - 한편 원산, 평양 선교 100주년 기념에 맞춰 한국의 대표적인 목사님들과 함께 다시 한 번 한국 교회 부흥을
위한 성시화운동에 온 힘을 쏟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성시화운동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성시화운동은 주님의 지상명령 성취(마28:18-20, 막16:15-16, 행1:8)를 돕는
운동이자 민족복음화운동입니다. 완전복음화, 입체복음화, 전인복음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영어로 호울(Whole), 토털(Total)
컨셉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인데 4복음서에 79회나 기록되었고, 복음도 하나님 나라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으로 인간들의 육체도 구원을 하시는 것이지만, 전인 구원, 우주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몸도, 건강도
예수님이 돌봐주십니다. 우리 육신이 병들고 죽더라도 생명은 바꿔졌습니다. 그러면 전인적으로,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든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교인 전도인화, 제자화, 전 시민 신자화, 전 복음운동을 전개하여 제2의 사도행전의 폭발이 일어나 민족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시화 운동을 하는 데는 모델이 있습니다. 칼빈이 30년 동안 있었던 제네바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제네바는
세계 도시 중 범죄율이 제일 낮고, 문화ㆍ교육ㆍ환경 등 국제기구 조사 중 종합평가 제1위 도시였습니다. 칼빈은 20여년 간 제네바에서 성경이
시민 생활의 전 영역에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고, 예수님의 주권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사회적으로 실천된 것을 목표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로 말하면 내각의 국무위원에 해당하는 25인을 구성하고, 또 국회에 해당하는 시민을 대표하는 200인회를 선출하여
제네바 성시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제네바는 16년간 유럽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낮으며 거룩한 도시, 독립 도시, 말씀의 도시로 명성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3번이나 제네바를 방문하면서, 한국에서도 도시 하나를 선택하여 성시화운동을 하자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972년에 춘천에서 성시화운동을 기획했습니다. ‘메인드인 스위스 제네바’ 시계를 최고로 알아주는 것처럼, ‘메이드 인 춘천’ 하면 예수 믿는
도시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되었어요. 도시 전체가 영이 바뀌면 그리스도가 지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회를 하는데 춘천의
목회자들이 전부 하나가 됐습니다. 춘천 시장, 강원일보 사장, 춘천지검 검사 등 VIP는 VIP대로 일대일로 맡아 ‘Whole Church,
Whole Gospel, Whole city'운동을 펼친 것입니다. 춘천성시화운동의 첫 열매는 춘천시장이었습니다. 춘천시장은 춘천성시화운동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취지를 듣고, 내가 제1호로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춘천성시화운동에 참석했던 전용태(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이건오(포항선린병원 원장), 두상달(홀리클럽 상임총무), 정정섭(한국국제기아대책본부 부회장), 조남진(전 강원일보 회장),
문선재(전 강원대 총장) 등 40여 명은 지금도 성시화운동을 전개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개인이 구원되면 의식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그가 속한 사회가 변화됩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 공동체가 시 공동체를 전인 건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운동을 다시 한 번 하자는
것입니다. 성시화운동의 5년 목표는 교회마다 절대 부흥하는 것이며, 10년 목표는 10만 명의 자비량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구체적인 액션 포인트를 두고, 전도운동을 펼칠 것입니다. 전도 홍보 분위기 조성, 전도훈련, 더불어 살기 좋은 우리 동네 운동, 태신자 운동,
교회배가 운동, 기도운동, 도시 단위 연합예배, 십대의 예수혁명 운동, 가정 선교운동, 북한 복음화와 통일 준비운동, 경건생활과 환경보호
캠페인, 기독교 문화 운동 정보와 자원 은행, 대학생 통일 자원 봉사단 10만 명 훈련, 10만 자비량 세계 선교단 훈련 파송 등을 기도하면서
실천하려고 합니다.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미주를 비롯해 해외에도 성시화운동을 펼칠 것입니다. 2007년에는 전도 훈련을 비롯해 전국 167개
시·군 단위 엑스플로 2007대회와 프랭클린 그래함 전도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반가운 것은, 진보세력이었던 KNCC가 이 운동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로 합쳐서 전 교인들이 도시마다 예수 행진을 벌이게 되면 여리고성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18.3%의 기독교인이
합심하여 81.7%의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우리나라가 예수 믿는 민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 올바른 전도와 선교는 - 평생을 전도운동, 선교운동에 헌신하셨는데, 그야말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전도와
선교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전도와
선교는, 예수님을 우리 민족의 주로 삼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제자가 되어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잘못 해석하면 안 됩니다. 네 지역만 전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 문도가 성령 충만했고,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안에만 있었어요. 그러자 스데반 순교 사건을 계기로 흩어졌습니다. 안디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소명을 받았는데도 제자들은 예루살렘 안에서 있었어요. 그러자 박해가 시작되어 흩어지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저는 일찍이 우리 민족이 항상 제 가슴속에 있었는데, 민족이 신앙공동체가 되었을 때, 국내 전도한 만큼 세계 선교는 되어 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 복음과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신학이 부패하면 인본주의가 되기
십상입니다. 성공회가 한 예인데, 도덕적인 운동을 하면서 영혼 구원이 잘 안됩니다. 복음과 사회운동에 대해 존 스토트 목사가 너무나 잘 정리해
놓았어요. 첫째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사회적인 행동이 전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복음주의자들은 사회 행동 하면서 전도한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나라를 망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행동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십자가를 사회 행동으로 희석 시키면 안 됩니다. 셋째는 정치 해방이 구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위 해방신학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예수님의 속죄함 없이는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무관심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한 예로 기독교는 북한한테 할 소리를 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제사장이면서 예언자로서,
인권이나 민족정통성, 정치의 정통성, 생존의 자유도 없는 독재 정권에 할 말을 하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는 할 말을 잘 못합니다. 민족복음화를 위해 정치도 복음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만 있으려는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가정, 학교 교육, 정치에도 있어야 합니다.
◇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견해 - 장일영 목사 :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전도운동 가운데 다락방전도운동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도하고자 하면 분열이 납니다. 저도
C. C. C. 초창기에는 억울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기존의 조직들은 어떤 도전을 받게 되니까 자를 수밖에 없어요. 제가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자, 자료들과 메시지를 쭉 검토해봤습니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가 컸습니다. 다락방전도운동이
이단이라고 결정된 것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 교단에서 교회사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자는 것인데, 기존의
교단에 조금 마음의 상처가 나도 어떻게든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년 전에 교단끼리 합치자는 이야기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온 것으로
압니다. 저도 미력하나마 그렇게 되도록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기는 했습니다. 다락방전도운동을 이끌고 있는 류광수 목사도 모든 것을 양보하고, 모든
재단을 갖고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교계 임원들이 이 의견에 지지하고 추진한 것으로 아는데, 일부 교인이동으로 피해 받은 쪽에서 너무나 심하게
반대를 했어요. 그러자 교단 내부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하고, 합치자는 의견은 뒤로 미뤄진 것으로 압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어요. 전도운동
하려면, 모든 부분을 초월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다락방전도운동에서도 안티적인 부분을 많이 없애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또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교단은 커질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연합 사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 마지막으로 팔십 평생, 오직 민족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신 목회자로서 한국 교회에, 젊은이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1962년 민족복음화에 불타는 가슴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했을 때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특히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속을 누비는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수년 내에 대 부흥이 일어나, 니느웨 성처럼 회개한 민족, 해골 떼가 생명의 군대로
부활한(겔37장) 민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장일영 목사 : 바쁘신 가운데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21세기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주제로 두 분 목사님과 귀한 시간,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목사님의
기도대로, 이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다른 민족을 살리는 ‘예수 한국, 선교 한국’이 되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장일영 편집국장 /정리=오윤정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