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산림 대법회 154강 – 1 – b
오늘 여러분께 나눠드린 유인물 3페이지 잠시 봅시다.
기신론에,
심념이 미끄러져서 流轉緣起(유전연기)로 중생이,
우리가 생각이라 하고 마음이라고 흔히 살아가는 우리 心念!
사유를 어떻게 풀어놨느냐?
是故로 三界虛僞(삼계허위)라. 이러한 까닭으로 3계는 허위라.
욕계ㆍ색계ㆍ무색계가, 모든 세계 3계의 일체 제법이 헛것이다.
일체 유법이 여몽환포영이다.
唯心所作(유심소작)이라. 오직 마음으로써 지은 바인데,
일체가 유심조인데, 화엄경얘기와 기신론얘기가 똑 같지요?
離心(이심)하면,
離心이라고 하는 것은 지난 시간에 뭐라했습니까?
離妄緣耶(이망연야) 不離妄緣耶(불이망연야)
不離妄緣則(불이망연즉) 且聽山僧(차청산승) 末後一偈(말후일게)
四大各離如夢中(4대각리여몽중)
六塵心識本來空(6진심식본래공)이 바로 離心이거든요. 거기에 갖다가
무색성향미촉법이요. 무안이비설신의이다.
조견해서 5온이 개공한 것을 離心이라하고, 무심이라 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조작한 바이니 마음을 떠나버리면
심념을 떠나버리면, 망상분별을 떠나면,
則無六塵境界(즉무6진경계)하리라.
반야심경의 무안이비설신의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 못들어
가니까 글이 어렵고 힘들고 하지만, 여기에 기대면,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이런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지지요?
此義가 云何(차의운하)오? 이 뜻이 어떠하냐?
以一切法은 皆從心起하야 妄念而生(이일체법개종심기망념이생)이라
일체 법은 모두 다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서 망상 분별로써, 허망한 생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가 初發心時便成正覺(초발심시변성정각) 그렇지요?
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하시는 대목에서 게송이 어떻게 나옵니까?
知一切法이 卽心自性(지일체법즉심자성)이라.
일체 법이 곧 마음의 自性으로 되어있다. ‘마음의 자성이 본래 없다.’ 이 말
이잖아요. 그렇지요? 成就慧身(성취혜신)할 때, 우리가 견성 성불할 때는
不由他悟(불유타오)라. 남에게 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마음을 깨닫는
것뿐이다. 그러면서 “초발심시에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는 대목이
이 대목이지요.
일체 법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났다.
생멸 법은 전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서 허망한 집착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니 一切分別은 卽分別自心(일체분별 즉분별자심)이라.
일체 분별은 바깥에 무슨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심을 분별했을 뿐
이다. 그래서
心은 不見心(심불견심)이라.
눈이 눈을 못 보고 칼이 칼을 썰을 수가 없듯이,
마음은 마음을 절대 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혹시 “내가 내 마음을 보고,
남의 마음을 봤다고 하는 것은 전부 착각이다.” 이 말이지요.
心은 不見心이다. 기신론의 주제 같으면 이것이 아닐까요?
心은 不見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는, 금강경에는 이래놨지요.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은 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이음성구아시인행사도불능견여래)라.
凡所有相이 皆是虛妄(범소유상개시허망)이라.
若見諸相非相해버리면 卽見如來(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할 것이다.
“무상”을 봐야 “본다.” 할 것이다. ←이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心不見心이니, “봤다 하면 착각이다.”
여기서는 모양을 가지고 無相可得(무상가득)이라. 해놓고,
그 밑에 줄 그어 놓은 것 보세요. 無體可得(무체가득)이라. 해놨잖아요.
그렇지요? 기신론 본문에 ‘본체도 볼 수 없고, 본체에서 뻗어나온 바깥의
모양도 볼 수 없다.’ 이 말입니다.
當知(당지)하라. 마땅히 알아라.
世間一切境界(세간일체경계)가
皆依衆生無明妄心(개의중생무명망심)하야,
세간의 일체 경계가 皆, 모두 다 의지한다. 무엇을요?
중생의 무명으로부터 흔들려서 업상이 일어나서, 허망한 망심분별이 일어
나서 그것을 의지해서 而得住持(이득주지)라.
버티고 “내”라고 하는 아집을 가지고 바깥으로 탐진치를 일으키고,
교만을 일으키고 의심을 일으키고 우리가 살잖아요?
而得住持라. 딱~~ 그렇게, 안쪽에 마음을 딱. 아만탱천해서 버티고 있잖
아요?
是故로 一切法이, 이러한 까닭으로 일체법이 전부 여몽환포영이다.
유위법이 됐든 무위법이 됐든 전부 如鏡中像(여경중상)이라.
거울 속의 모양이라서, 거울 속에 있는 사람보고 부르면 대답을 합니까?
빌딩에 불이나서 텔레비전 뉴스에 막 나오더라고요.
뜨거울까 싶어서 제가 한 번씩 손 대보니까 안 뜨겁더군요. 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이아가라폭포가 텔레비전에 나오기에 가서 물 좀 받아보려고 가니까
물이 한 방울도 안 튀고요. 如鏡中像이라.
그런 것을 안다면 우리가 공부하다가 韓獹逐塊(한로축괴)라고, 흙덩어리를
쫓아갈 것인지? 흙덩어리를 던진 사람을 물어버리는 獅子咬人(사자교인)이 될 것인지? 이것은 분명하잖아요. 마지막에 그렇게 해놨습니다.
無體可得(무체가득)이라. 바로 “사람을 물어버리는 獅子가 돼라.” 이 말이
지요?
唯心虛妄(유심허망)이니, 오직 마음이고 허망하다.
이래서 우리가 “유식이다. 유심이다.” 하잖아요?
“유식이다.” 하는 것은 뭡니까? 뇌피셜. “오직 생각으로만 있을 뿐이지,
현실은 없다.” 이 말 아닙니까? 꿈이 좋은 꿈이 됐든 나쁜 꿈이됐든,
1000발짝 가든 10000발짝 가든 꿈 깨고 나면 한 발짝도 안 간 것을 어떡
합니까?
의상스님은 그 대목을 “至至發處요 行行本處(지지발처행행본처)라.”
말은 아는데 실제적으로 하려니까 어렵지만, 그런 구절들이 와 닿으면서
인생에서 서로 시비하는 것들이 많이 사그라들지요.
唯心虛妄이다. 그러니까 되게 말 안 들으면 “아이구, 니 소임이다.” 해버
리잖아요.
그 다음 대목은 그 유명한 원효스님께서 깨달은 대목이지요?
以心生則種種法이 生(이심생즉종종법생)하고
마음이 = 심념이 = 생각이 일어나니까 갖가지 法이 일어나고,
心滅則種種法이 滅故(심멸즉종종법멸고)니라.
한 생각 꺼져버리니까 心滅則 髑髏도 不二(촉루불이)더라. 해골바가지도
둘이 아니다. 갖가지 法이 다 꺼져버렸다. 이래서 지금 우리가 하는 대목하
고 기신론 대목하고 견주어서, 금강경을 조금 양념으로 뿌려가면서 했습니
다.
또 본문에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말을 조금 빨리 말씀드리는 것은 어쨌든지 진도 조금 빨리나가
보려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진도가 너무 느려서 완행열차 같아서요.
佛子야 如大龍王이 隨心降雨에 其雨가 不從內出이며
不從外出인달하야 如來境界도 亦復如是하야
隨於如是思惟分別하사 則有如是無量顯일새 於十方中에
悉無來處니라.
佛子야
如大龍王이, 마치 큰 용왕이
隨心降雨에, 마음을 따라서 마음껏 비를 내리지만,
其雨가 不從內出이며, 그 비가 안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不從外出인달하야, 밖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능엄경의 七處徵心(7처징심) = 재내ㆍ재외ㆍ잠근ㆍ장암ㆍ
중간ㆍ수합ㆍ무착. 7처징심에서 따져 봤잖아요.
능엄경 1권의 八還辨見(팔환변견), 명ㆍ암ㆍ통ㆍ색ㆍ영ㆍ공ㆍ울ㆍ청.
여덟 가지. 그 다음에 “재내ㆍ재외ㆍ잠근ㆍ장암ㆍ중간ㆍ수합ㆍ무착. 이 일
곱 가지에서 아무리 따져봐도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안에도 없고ㆍ밖에도 없고ㆍ중간에도 없고,
그 어디에도 없다. ←이래서 6조 스님은 “본래없다.” 이렇게 하지요?
이것이 그 비유들이 똑같이 나옵니다.
如來境界도 亦復如是. “안팎이 없다.” 이런 겁니다.
“아와 아소에 어디에도 없다.” 이 말이지요.
여래의 경계도 그와 같아서 隨於如是. 이렇게 생각하고 여시사유분별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분별을 따라서, 隨於如是思惟分別이라.
이와 같은 분별함을 따라서,
則有如是無量顯일새 於十方中에,
이와 같이 한량없이 시방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悉無來處니라. “여래자는 무소종래며 역무소거라.” 하는 것처럼,
어디서부터 오는 데가 없느니라.
佛子야 如大海水가 皆從龍王心力所起ㄴ달하야
諸佛如來一切智海도 亦復如是하야 皆從如來往昔에
大願之所生起니라.
佛子야
如大海水가, 마치 바닷물이
皆從龍王心力所起ㄴ달하야, 모두 다 용왕의 心力으로부터,
용왕의 마음으로부터, 마음의 힘으로부터 생겨지는 것 같이,
諸佛如來의 一切智海도 亦復如是하야,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바다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의 일체 지혜의 바다는 어디서 생겨지느냐?
“부처님의 원력으로 생겨졌다.”
皆從如來의 往昔에,
부처님께서 먼먼 아승지 겁의 그런 숱한 세월부터 중생을 제도해야 되겠
다고하는 大願之所生起니라. 큰 서원으로부터 부처님의 지혜가 생긴다.
그러니까 남을 도와주려면 어쨌든지 꾀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방편이 생겨지잖아요.
남을 도와주려면 어떤 방법이든지 되잖아요. 그래서 10지품에는 어떻게
나옵니까? 우리가 외우고 있는 게송으로,
汝雖已滅煩惱火(여수이멸번뇌화)라.
그대 이미 번뇌의 불꽃이 다 꺼졌다 하더라도,
世間은 惑焰猶熾然(세간혹염유치연)이라.
저 세간의 저 중생들은 惑焰이, 미혹한 번뇌의 불꽃이 猶熾然이라.
아직도 펄펄 끓는 용광로처럼, 세간의 사람들이 열 받아가면서 살지 않느냐?
當念本願(당념본원)이라. 마땅히 부처님의 본래 원력을 생각해서,
‘부처님의 본래 원력이 무엇인가?’ 度衆生(도중생)이라.
중생을 제도하라. ‘그 중생을 어떻게 제도해야 되느냐?’
悉使修因(실사수인)이라. 그들로 하여금 修因. 바라밀의 씨앗을 뿌리고,
趣解脫(취해탈)이라. 모두 이고득락할 수 있도록 해라.
이것이 부처님의 본래 원력이지요.
(2) 如來出現境界의 譬喩
佛子야 一切智海가 無量無邊하야 不可思議며
不可言說이나 然我今者에 略說譬喩호리니
汝應諦聽이어다
↑154 - 1
↓154 - 2
佛子야 此閻浮提에 有二千五百河가 流入大海하고
西拘耶尼에 有五千河가 流入大海하고
東弗婆提에 有七千五百河가 流入大海하고
北鬱單越에 有一萬河가 流入大海라
佛子야 此四天下에 如是二萬五千河가 相續不絶하야
流入大海하나니 於意云何오 此水가 多不아
答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佛子야 復有十光明龍王이 雨大海中에 水倍過前하며
百光明龍王이 雨大海中에 水復倍前하며
大莊嚴龍王과 摩那斯龍王과 雷震龍王과
難陀跋難陀龍王과 無量光明龍王과 連澍不斷龍王과
大勝龍王과 大奮迅龍王과 如是等八十億諸大龍王이
各雨大海에 皆悉展轉하야 倍過於前하며
娑竭羅龍王太子가 名閻浮幢이니 雨大海中에
水復倍前하니라
佛子야 十光明龍王의 宮殿中水가 流入大海에
復倍過前하며
百光明龍王의 宮殿中水가 流入大海에 復倍過前하며
大莊嚴龍王과 摩那斯龍王과 雷震龍王과
難陀跋難陀龍王과 無量光明龍王과 連澍不斷龍王과
大勝龍王과 大奮迅龍王과 如是等八十億諸大龍王의
宮殿各別이어든 其中有水가 流入大海에
皆悉展轉하야 倍過於前하며
娑竭羅龍王太子閻浮幢의 宮殿中水가 流入大海에
復倍過前하니라
佛子야 娑竭羅龍王이 連雨大海에 水復倍前하며
其娑竭羅龍王의 宮殿中水가 涌出入海에
復倍於前하니 其所出水가 紺琉璃色이며
涌出有時ㄹ새 是故大海가 潮不失時니라
佛子야 如是大海에 其水無量하며 衆寶無量하며
衆生無量하며 所依大地도 亦復無量하니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彼大海가 爲無量不아
答言하사대 實爲無量하야 不可爲喩니이다
佛子야 此大海無量이 於如來智海無量에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 不及其一이로대
但隨衆生心하야 爲作譬喩ㄴ정 而佛境界는 非譬所及이니라
如來出現境界의 譬喩(여래출현경계비유)
佛子야 一切智海가 無量無邊하야 不可思議며
不可言說이나 然我今者에 略說譬喩(약설비유)호리니
汝應諦聽(여응체청)이어다.
佛子야
一切智海가, 일체 지혜의 바다는
無量無邊하야, 한량없고 그지없고,
不可思議며, 헤아릴 수 없고,
不可言說이나, 말로도 할 수도 없고, 그러나,
然我今者에,
‘허공이 하도 넓어서 자를 가지고, 30센치 자로 잴 수는 없지만, 한 번 재보자.’ 이 말이지요.
略說譬喩호리니, 간략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조금만 비유하겠다.
汝應諦聽이어다. 그대들은 자세히 들어라.
첫댓글 기신론과 화엄의 일심에 대한 관점을 볼수 있어 무비스님 법문을 올렸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보세요
많은 토론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카페에 못 들어왔더니 보현 선생님께서 알아차리는 마음에 대한 답(?) - 심불견심....을 올려주셨네요.
기신론에도 이런 내용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_()_
알아차리는 마음은 제6식에 해당할 겁니다.
과거에 소승에서 제6식을 통째로 心이라 명명했지요.
그걸 대승에서는 심의식으로 3가지 구분을 합니다.
오온의 식은 인식한다는 뜻으로 식이라 하는데, 대승의 아라야식을 말한 건 아닌 듯.
그렇지만 심의식의 식이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식의 식이 오온의 식에서 나온 말일 거에요.
저도 전문 학자가 아니라 이런 데 오면 헷갈려요.
그런데 제가 공부를 비춰보면 그렇게 해석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음.
心이 과연 무얼 의미하느냐? 여기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요.
심에 대해 논의한 종파들이 크게 지론파, 섭론파, 그리도 화엄종이 있는데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화엄종의 心 해석에도 조금 불만이 있고요,
일체의 편견 없이 화엄경 자체에서 心을 어떻게 말했는지만 알고 싶어 하지요.
화엄종의 지엄스님은 아마 心을 정말 맑은, 아무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해석했던 거 같은데,
제가 보기에 화엄경에서 말하는 심은 정말 말 그대로 일체만유의 근원의 심입니다.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모두 있는 심.
화엄경의 심은 그야말로 無心 입니다
화엄경을 보면, 특히 유심게가 들어있는 (야마궁중게찬품?) 부분을 보면, 오온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되어 있어요.
즉, 물질계가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건 현대 과학이 들어면 어이가 없어 할 주장이지만, 남회근 선생님은 마음이 물질을 만들 수 있다, 마음에서 물질이 실제로 나온다 심물일원을 말씀하셨어요.
여하튼 화엄경은 우리 육체가 마음에서 나오는 걸로 말합니다.
저는 이 대목 아주 유의하게 봤습니다. 제가 공부한 경계와 맞았기 때문 이지요 화엄경이 제 견처를 증명해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