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박성배교수님이 보현행원 공부를 제대로 못하셨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보현행원을 제대로 아셨다면 이게 모든 공부 즉 철학 윤리 도덕 심지어 과학까지 보현행원이 끝판왕임을 분명히 아셨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보현행원을 제대로 아셨다면 당신이 무엇을 전공하고 무슨 논문을 발표하더라도 반드시 보현행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박성배교수님께는 그게 없어요 물론 간혹 언급 되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엔 부족합니다
거듭 외람되지만 투철하게 보현행원을 아신게 아니라는거죠 교수님의 말을 빌리면, 아직도 몸짓의 보현행원 인거죠
박성배 교수님, 성철스님까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큰스님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는 말씀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보현행원은 體와 用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보현행원을 공부하는 이로서는 정말 정말 중요한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 보현행원 뿐 아니라 불교의 모든 수행, 모든 교설이 다 한생각 일지 않으면 그 자체로 완벽한 수행이고 완벽한 가르침이리리라 짐작합니다. 보현행원을 염두에 두고 살면서도 늘 깜빡하고 놓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는 분리된 보현행원, 몸짓의 보현행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_()_
첫댓글 대단히 외람된 말씀 이지만
박성배교수님 보현행원을 제대로 공부를 못하신듯
안타깝습니다 박성배교수님마저 이러시다면
제가 왜 박성배교수님이 보현행원 공부를 제대로 못하셨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보현행원을 제대로 아셨다면 이게 모든 공부 즉 철학 윤리 도덕 심지어 과학까지 보현행원이 끝판왕임을 분명히 아셨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보현행원을 제대로 아셨다면 당신이 무엇을 전공하고 무슨 논문을 발표하더라도 반드시 보현행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박성배교수님께는 그게 없어요 물론 간혹 언급 되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엔 부족합니다
거듭 외람되지만 투철하게 보현행원을 아신게 아니라는거죠 교수님의 말을 빌리면, 아직도 몸짓의 보현행원 인거죠
제가 예전에 좀 아는게(?) 있어서 한창 보현행원 떠들고 다닐때 많은 분들이 제게 이런 불만을 표하셨어요
아니 보현거사는 다 좋은데 왜 끝에 가면 꼭 전부 보현행원 으로 끝나나?
그분들 생각으로는 논의 주제가 보현행원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데 왜 끝날때 꼭 보현행원을 연관 시키느냐는 불만 이시지요
보현행원에 빠진 젊은날의 박성배교수님께 온통 用에 빠졌구나 하셨던 성철스님도,
정말ㅈ송구스럽지만 보현행원을 제대로 보신 건 적어도 제가 보기는 아닙(?)니다 왜냐? 철스님은 박성배교수님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보현행원을 體가 아니라 用으로 보신 거거든요?
그런데 보현행원은 體와 用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한 생각이 일면 체와 용이 나눠지지만, 체가 있고 용이 따로 있지만, 한생각 일지 않으면 체가 바로 용이고 용이 체에요 그러니 보현행원으로 바로 體를 보는겁니다 아니 볼뿐 아니라 보현행원이 바로 體가 돼요
반면 성철스님은 보현행원은 體가 아니라 用이니 用을 주장하기 앞서 화두 들고 참선해서 얼른 體를 먼저 보고 그리고 보현행원을 하든말든 하라 이 뜻이었던 겁니다
이 부분은 정말 정말 송구스러운데, 우리 큰스님도 그러셨던 것 같아요
마하반야바라밀이 바로 보현행원이 되지 못하고 그 자체가 보현행원은 못되고 반야바라밀다 하고 나서 보현행원 이었거던요
박성배 교수님, 성철스님까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큰스님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는 말씀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보현행원은 體와 用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보현행원을 공부하는 이로서는 정말 정말 중요한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 보현행원 뿐 아니라 불교의 모든 수행, 모든 교설이 다 한생각 일지 않으면 그 자체로 완벽한 수행이고 완벽한 가르침이리리라 짐작합니다.
보현행원을 염두에 두고 살면서도 늘 깜빡하고 놓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는 분리된 보현행원, 몸짓의 보현행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