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指示後友
善男子야 汝當往詣文殊師利善知識所하야 而問之言호대
菩薩 云何學菩薩行
云何而入普賢行門
云何成就
云何廣大
云何隨順
云何淸淨 云何圓滿 ?
善男子야 彼當爲汝하야 分別演說하리라 何以故오
文殊師利의 所有大願은 非餘無量百千億那由他菩薩之所能有
善男子야
文殊師利童子는 其行廣大하며 其願無邊하야 出生一切菩薩功德하야 無有休息이라.
善男子야
文殊師利는 常爲無量百千億那由他諸佛母하야
常爲無量百千億那由他菩薩師하며
敎化成熟一切衆生하며 名稱普聞十方世界하며
常於一切諸佛衆中에 爲說法師하며 一切如來之所讚歎이며
住甚深智하야 能如實見一切諸法하며 通達一切解脫境界하며 究竟普賢所行諸行이라
善男子야
文殊師利童子는 是汝善知識이니 令汝得生如來家하며 長養一切諸善根하며
發起一切助道法하며 値遇眞實善知識하며 令汝修一切功德하며
入一切願網하며 住一切大願하며
爲汝說一切菩薩秘密法하며 現一切菩薩難思行하며 與汝往昔에 同生同行이니라
是故로 善男子야 汝應往詣文殊之所요 莫生疲厭이어다
文殊師利가 當爲汝說一切功德하리라 何以故오
汝先所見諸善知識에 聞菩薩行하고 入解脫門하야 滿足大願이 皆是文殊威神之力이니
文殊師利가 於一切處에 咸得究竟이시니라
時에 善財童子가 頂禮其足하며 遶無量帀하며 殷勤瞻仰하고 辭退而去하니라
* 화엄경 끝에 이르면 문수와 보현의 구분이 없어집니다.
문수가 보현이 되고 보현이 문수가 되지요.
그래서 입법계품 미륵보살을 만날 때 미륵은 문수를 만나라고 하면서 문수가 바로 보현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보현은 다시 보현慧行이라, 보현이 지혜행을 하는 것으로 나오지요.
문수가 따로 있고 보현이 따로 있는 줄 알았던 선재에게,
사실은 문수 보현이 따로 있지 않음을 미륵은 알려주는 것이지요.
보현행원품에도 막바지에 가면 보현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주는 것으로 나옵니다.
문수가 바로 보현임은 깨달음이 자비행과 따로 있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수가 지혜가 뛰어난 건 지혜를 따로 구하거나 지혜를 따로 이루는 방법이 있어 그걸로 지혜를 이룬 것이 아니라, 문수가 보현이 되어 자비행을 끝까지 했기에 문수는 비로소 지혜를 이룬 것이지요. 다만 문수는 그렇게 이룬 지혜가 너무 눈부셔 지혜의 상징이 되었고, 보현은 지혜 또한 문수와 똑같지만 자비행이 너무 눈부시니 또한 자비의 상징이 되어버렸이고요. 따라서 문수와 보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수가 때로는 보현으로, 보현이 또 문수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본문은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화엄은 이처럼 나누는 걸 무척 경계합니다. 그냥 거짓으로, 중생이 알아듣기 쉽게 나눌 뿐인데 마치 그 나눈 것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중생들은 거기에 빠집니다.
원효가 기신론에서 일심을 둘로(진여문 생멸문) 나누니 사람들이 마치 마음에 두 가지 마음이 있는 줄로만 안다고 비판한 것도 그런 이유지요.
첫댓글 화엄경 끝에 이르면 문수와 보현의 구분이 없어집니다.
문수가 보현이 되고 보현이 문수가 되지요.
그래서 입법계품 미륵보살을 만날 때 미륵은 문수를 만나라고 하면서 문수가 바로 보현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보현은 다시 보현慧行이라, 보현이 지혜행을 하는 것으로 나오지요.
문수가 따로 있고 보현이 따로 있는 줄 알았던 선재에게,
사실은 문수 보현이 따로 있지 않음을 미륵은 알려주는 것이지요.
보현행원품에도 막바지에 가면 보현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주는 것으로 나옵니다.
본문 따로 번역 안해도 다들 이해 되시지요?
究竟普賢所行諸行 !
문수가 바로 보현행원을 구경까지 해 마치신 분!
문수가 바로 보현임은 깨달음이 자비행과 따로 있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수가 지혜가 뛰어난 건 지혜를 따로 구하거나 지혜를 따로 이루는 방법이 있어 그걸로 지혜를 이룬 것이 아니라, 문수가 보현이 되어 자비행을 끝까지 했기에 문수는 비로소 지혜를 이룬 것이지요. 다만 문수는 그렇게 이룬 지혜가 너무 눈부셔 지혜의 상징이 되었고, 보현은 지혜 또한 문수와 똑같지만 자비행이 너무 눈부시니 또한 자비의 상징이 되어버렸이고요. 따라서 문수와 보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수가 때로는 보현으로, 보현이 또 문수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본문은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화엄은 이처럼 나누는 걸 무척 경계합니다. 그냥 거짓으로, 중생이 알아듣기 쉽게 나눌 뿐인데 마치 그 나눈 것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중생들은 거기에 빠집니다.
원효가 기신론에서 일심을 둘로(진여문 생멸문) 나누니 사람들이 마치 마음에 두 가지 마음이 있는 줄로만 안다고 비판한 것도 그런 이유지요.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자비행이 함께 있는 것!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문수가 보현행을 다 마친 것은 깨침을 이룬 후에 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보현행을 함으로써 문수의 지혜가 완전한 지혜로 탈바꿈하는 것이지요.
화엄경은 십지 법문에서 보듯 지혜 우선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비로 인해 지혜가 자라고 대비로 인해 지혜가 완성된다고 하지요. 우리가 아는 깨달음을 먼저 이룬 후에 자비행을 한다, 보살행을 한다, 가 아닌 겁니다. 지혜와 자비가 함께 갑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비가 지혜를 이끌어 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