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발전법 국회 문턱서 스톱… 부처 산발적 정책추진으론 한계
[지방 소멸에서 지방 부활로]
尹정부 국정과제 ‘지방시대’ 위해선
“지역소멸 대응 위해 신속 처리해야
컨트롤타워 명확히 해야 효율적”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 소멸 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가 여러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책의 근거가 될 법안조차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멈춰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들이 산발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안’은 지난해 9월 입법예고, 11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쳤지만 여야 대치로 국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고 해를 넘긴 상태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시대’를 위한 정책 핵심은 ‘지방시대위원회’ 출범과 ‘기회발전특구’ 및 ‘교육자유특구’ 수립이다. 위원회는 국정과제와 지역 공약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기회발전특구에서는 지방으로 이전하는 수도권 기업에 각종 세금을 감면해 준다. 교육자유특구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 초중고교 운영 자율성을 보장한다. 지방의 명문 ‘초중고교’를 되살려 인재 쏠림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은퇴자 등이 정착할 수 있는 ‘복합주거단지’, 기업과 청년이 모이는 ‘도심융합특구’ 구축도 추진 중이다.
특별법은 이런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근거가 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특별법이) 국회에서 빨리 처리돼야 지역 소멸 위기 대응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 도시 현황을 파악하는 일조차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년 급증하고 있는 빈집 집계 방법이나 관리 체계 등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대표적이다. 빈집 통계는 어느 지역이 인구 감소로 인한 인프라 과잉 상태에 빠져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초 자료다. 하지만 한국은 각 부처의 빈집 정의부터 서로 다르다. 소관 부처도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으로 나뉘어 있다. 국토부가 지난해부터 관련 통계를 하나로 통합해 새 빈집 통계를 내놓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제도 개선 연구 용역만 진행 중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해야 정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빈집 조사 등 기초 조사부터 서둘러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워케이션-농촌유학 오세요”… 지자체 ‘일시거주인구’ 유치 안간힘
[지방 소멸에서 지방 부활로]〈5·끝〉지역경제 활성화 현실적 방안
정주인구 늘리는 기존 정책 한계
‘두지역 살이’ 등 체류형 기획 늘어
“지역별 창의적 생존전략 고안해야”
지난해 12월 강원 속초시의 한 카페에서 공간기획 서비스 스타트업 ‘호퍼스’의 조정현 대표(30·가운데)가 업무를 보고 있다. 조정현 씨 제공
“경치가 좋은 곳에서 일하니 창의성은 물론이고 효율성도 오르는 것 같습니다.”
공간기획 서비스 스타트업 ‘호퍼스’의 조정현 대표(30)는 지난해 12월 3박 4일간 강원 속초시 바닷가에서 일했다. 강원도관광재단에서 운영하는 ‘속초 워케이션’(Workation·일과 휴가의 병행) 사업에 참여해 바다 앞 카페에서 근무한 것이다. 여가시간에는 케이블카 탑승 등 재단이 마련한 관광 프로그램을 즐겼다.
비슷한 시기 속초로 워케이션을 온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인맥도 넓혔다. 조 씨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인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타격을 입은 관광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2021년 3월부터 워케이션 사업을 진행했는데, 지난해 3월부터 운영한 개인형 상품은 두 달 만에 2만 박 넘게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재단 관계자는 “체류객 1명이 3박 4일 머무는 동안 숙박비 외에 10만∼30만 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렇게 유입된 ‘생활인구’의 소비는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 ‘생활인구’가 지방 소멸 막는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생활인구’가 주목받고 있다. 생활인구란 기존 주민등록인구에 근무·통학·관광·업무 등으로 월 1회 이상 체류하는 인구와 외국인을 포함한 것이다.
올해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생활인구 개념이 도입됐고, 정부도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체류인구를 측정하기 위해 어떤 데이터를 사용할지 논의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최근 도시민 사이에서 유행하는 ‘두 지역 살아보기’도 대표적인 생활인구 사례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서형석 씨(53) 부부는 2019년 3월부터 경기 용인시 학일마을에서 주말을 보낸다. 연 430만 원에 황토집과 495㎡(약 150평)의 텃밭을 빌려 고추와 감자를 재배한다. 서 씨는 “농촌으로 이주하고 싶었지만 직장 때문에 불가능해 대신 선택한 삶”이라며 “주민들과 수확한 농작물을 나눠 먹을 만큼 친해졌다. 이제는 ‘우리 마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도 관련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경기도는 독일의 도심 속 농장 ‘클라인가르텐(작은 정원)’을 벤치마킹해 2015년부터 ‘학일마을 살아보기’를 운영 중이다. 현재 대기자만 60여 명에 달할 정도다. 김시연 학일마을 위원장은 “학일마을의 주민등록 인구는 112명이지만 1년에 1만2000여 명의 방문객이 온다”고 설명했다.
2021년 2학기부터 전남 해남군에서 농촌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방준식 군(11)이 승마를 체험하고 있다. 학부모 김호연 씨 제공
‘농촌 유학’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김호연 씨(36)는 2021년 2학기부터 초등학생 두 아들과 전남 해남군에서 진행하는 ‘전남농산어촌유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가 문을 닫는 기간이 늘자 아예 농촌에서 지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 씨는 “풍요로운 자연환경 덕분에 아이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반 인원이 적어 친구들과도 친밀하게 지낸다”며 “이제 아이들이 서울에 안 가려고 한다”고 했다.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2021년 1학기부터 학부모와 학생 등 총 715명의 생활인구가 농촌유학으로 유입됐다.
● “생활인구 확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가 현실적”
행안부는 그간 지자체가 중심이던 생활인구 확대 사업을 올해부터 정부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두 지역 살아보기 △워케이션 △농촌 유학 △은퇴자 공동체마을 △청년 복합공간 조성 등에 참여할 지자체 20곳을 공모로 선정해 2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최병관 행안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은 “각 지역이 창의적인 생존전략을 고안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생활인구 사업에 나선 이유는 정주 인구를 늘리는 기존 대책만으론 지방 소멸을 막는 데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인구가 감소세로 전환한 상황에서 지역 간 정주 인구 유치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주민등록인구는 2019년 5184만9861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3년 연속 감소했고, 17개 시도 중 2021년보다 지난해 인구가 증가한 곳은 5곳에 불과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출산 후 보조금 지급 등 양적인 인센티브만으로 정주 인구를 충분히 늘리긴 어렵다”며 “생활인구를 늘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먼저 지방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은 생활인구와 유사한 ‘관계인구’를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주 전 단계인 특산품 구매, 기부, 봉사활동, 두 지역 거주 등이 모두 관계인구에 포함된다.
다만 일각에선 생활인구 확대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 전문가는 “생활인구 확대 사업이 기존 상권 활성화에 그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자칫하면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