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허스트사건(납치된 인질이 범인과 한패가 된 사건)을 패러디한 이 영화는 '건강과 미'가 지배하는 2012년을 배경으로 상상력 넘치는 사기 액션극을 보여준다.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철저히 배척하는 미래 사회, 그속에서 라몬은 무탕트 군단을 조직해 건강상품 사장이나 성형외과 의사 등을 테러하기 시작한다. 테러를 위해 그들이 납치한 인물은 건강업체 사장의 딸 패트리샤,. 그러나 패트리샤는 이상하게도 라몬의 절대적인 추종자로 변신하고, 그가 부하의 돈을 가로챌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돕는다. 입술에 정을 박은 패트리샤가 악당의 하수인으로 변신하는 모습이 재미있는 영화.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제작을 맡아
신인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를 다방면으로 보필했다.
2. 스티븐 스필버그 -> 슈가랜드 특급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이 영화를 두고 '역사상 가장 경이적인 데뷔작'이라고 평했다. 물론 그것은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출발점으로 하는 작가주의 계보를 철저히 무시한 선택이다. 그러나 어쨌든 스필버그의 출현을 알렸던 이 영화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스필버그 연구자들은 '죠스'보다 '슈가랜드 특급'이 오히려 스필버그의 재능을 더 많이 알려준 영화라고 평한다. 팬시무비 전문가인 그의 데뷔작은 생각보다 꽤 수준이 높았던 셈이다. 한 전과자 부부가 양부모에게 넘겨진 아이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영화. 비록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74년 칸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사족을 붙이자면 극장용 데뷔작인 이 영화이외에도 이보다 먼저 제작된 TV용 영화 '결투'가 국내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다.
3. 피터 잭슨 -> 고무인간의 최후
이것은 처음부터 못 만들기로 작정한, 제목처럼 아주 '나쁜 맛'의 영화다. 공포영화의 대가답게 61년 '할로윈 데이'에 태어난 피터 잭슨은 '선더버드'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난 후 스톱모션 기법을 차용한 인형 영화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돈은 없고 재능만 넘쳤던 피터 잭슨은 정식이 아닌 좀 다른 경로의 데뷔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원맨 세션(피터 잭슨이 감독, 시나리오, 주연, 촬영, 소품, 특수분장 등을 모두 담당했다)의 비디오용 영화가 바로 '고무인간의 최후'다.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매일 밤 고무인형 소품을 만들기 시작한 피터 잭슨은, 친구들을 배우로 섭외하고(그들은 모두 이 영화에서 두 개 이상의 배역을 맡았다) 그 역시 데릴역으로 출연해 데뷔작을 완성했다. 5년간 틈틈이 제작된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컬트의 재단'에 바쳐졌으며, 칸영화제에 출품되는 등 전세계 배급망을 뚫고 활발히 보급되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대립구도를 외계인과 지구방위대의 대결로 상징화한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조소와 재기 넘치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진정한 의미의 '컬트영화'다.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지구로 원정나온 외계인은 '화이트칼라'를 단 인간을 사냥한 후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그러나 외계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 지구방위대의 습격을 받은후 그들의 꿈은 산산이 부서진다. 외계인을 블루칼라의 대변자로 그렸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 중 하나. 농기구를 들고 식량(인간) 사냥을 나선 외계인들의 모습이 귀였다.
4. 우디 앨런 -> 돈을 갖고 튀어라
영화역사상 가장 '위대한 만담가'임을 자랑하는 우디 앨런은 1966년 'What's Up Tiger Lily?'의 연출을 맡으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작가와 감독, 배우 겸업 시스템을 선언하고 만든 최초의 데뷔작은 분명 '돈을 갖고 튀어라'다.
이 영화는 슬랩스틱 코미디도 '작가적'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놀라운 데뷔작 중 하나다. 브룩클린 뒷골목에서 자라난 멍청한 강도 버질 스탁웰의 인생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쫓아가는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창조적인 캐릭터(영화 속 주인공으로 어느 모로보나 부적절한 '정서 불안자' 캐릭터)가 최초로 등장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멋진 갱스터가 되고 정서 불안과 칠칠맞은 성격때문에 강도질에서 매번 허탕만 치고 만다. 경찰을 향해 쏜 총구안에서 총알 대신 라이터 불이 켜지질 않나, 경찰을 위협하기 위해 만든 비누 권총이 갑자기 거품으로 변하질 않나, 갖가지 우디 앨런은 재치가 만면에서 발휘되는 영화가 바로 '돈을 갖고 튀어라'다. 그러나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우디 앨런은 언제난 백인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며 흑인들은 소외시켜왔다. 어쩌면 그는 백인들에게만(특히 뉴요커들에게만) '최고의 감독'일지도 모른다.
5. 자크 반 도마엘 -> 토토의 천국
'토토의 천국'은 '제8요일'로 잘 알려진 벨기에 출신 감독 자크 반 도마엘의 데뷔작이다. 유리창을 깨는 총성과 함께 시작되는 노인 토마의 내레이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잣집 아들 알프레드가 자신의 '진짜 삶'을 빼앗아 갔다고 믿는다. 원래 자신은 부잣집에서 태어난 행복을 위해 행복한 소년이었는데, 얌체같은 엄마가 아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과 알프레드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이 된 토마는 이제 알프레도에 대한 질투를 버리고,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6.제임스 카메론 -> 피라냐2
엄밀한 의미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제작사의 영화였다. 제작사인 오비디오 아소니티스가 '어용 감독'을 내세워 대부분의 필름을 자의적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라피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피라냐 2'는 제임스 카메론의 데뷔작임이 분명하다. 피라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스킨스쿠버 교사와 관광단지 사장의 갈등, 가족애 등이 크로스오버된 공포와 스릴러, 가족 드라마의 혼합형 영화.
7.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 엘 마라아치
완성도보단 '값싼' 제작비로 더 유명해진 영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은 23세의 젊은 나이에 단돈 5백만원으로 영화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엘 마리아치'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데뷔작이 아니다. 진정한 데뷔작은 자신의 막내 동생을 주인공으로한 16mm 영화 '배드 헤드'.
'엘 마리아치'는 오랜 섭작기를 거친 로드리게즈 감독의 프로 데뷔작 정도로 기록해야 적당할 듯하다. 신문에 '로스 롤리건즈'라는 만화를 연재했던 로드리게즈 감독은 자신의 프로덕션 이름을 '로스 홀리건즈'라 정하고, 그곳에서 '엘 마리아치'라는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오랜 친구인 카를로스 갈라르도가 멕시코 국경 마을 아쿠냐에 살고 있다는 걸 기억한 로드리게즈 감독은 그곳에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저예산 '네오스파케티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로케장소는 카를로스가 소유한 농장과 집이었고, 배우는 모두 친척 혹은 친구였다. 그래도 모자란 돈은 자신의 피를 팔아 충당하곤 했다. 가끔은 인간은 마루타 구실까지 겸해야 하기도 했다. '엘 마리아치'의 탄생은 어쨌든 보여지는 것보다 더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었나 보다. 멕시코 민속악사 마리아치가 살인자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담고 있는 영화. 물론 편집, 시나리오, 사운드 리코딩, 촬영 등은 모두 로드리게즈의 몫이있다.
8. 조나단 뎀 -> 분노의 창
'양들의 침묵'과 '필라델피아'를 만들었던 조나단 뎀의 데뷔작. 국내 출시된 비디오 표지에는 '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이하의 행동을 강요당한 여죄수'라는 선전 문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이 영화의 내용을 가장 적절히 대변해주는 문구다. 여죄수 감옥에서 탈출을 모색하던 재클린과 메기는 탈출 계획이 발각돼 특별 감독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이상한 사건을 겪는다. 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교도소장이 의사에게 수술도중 그녀를 즉사시켜달라고 사주했던 것이다. 모략을 알게된 두 사람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감방에서 벨을 구해낸다. 액션의 제목을 달고 나온 포르노이며, 실제로는 베트남전 시대를 풍자한 발칙한 문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