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무렵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수비아코에서 3년 동안 고행과 기도의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베네딕토는 마침내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 규칙」을 썼다.
이 규칙이 널리 전파되어 ‘서방 수도회의 시조’라고 불리게 되었다.
성인은 547년 무렵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하였다고 전해지며,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에 그를 기념하며 공경하여 왔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그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여러 고을에 파견하시며 당부하신다.
말씀의 핵심은 제자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니,
그들도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거저 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하늘 나라의 현존을 드러내며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것이다 (마태10,7-15)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이는 세례를 통한 구원의 은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어떤 보상을 바라지 말고, 거저 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계속 충만이 받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을 비워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채워지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풍부한 은총은 이웃 모두에게 거저 주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버림으로써 만족을 얻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구속이었고
자신을 묶어 두는 사슬이었다.
하루는 동냥 그릇을 들고 물을 마시러 강가에 다다랐는데
개 한 마리가 그를 앞서 강으로 뛰어 들어 가서는
물을 마시며 목욕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디오게네스는 갑자기 깨달은 바가 있어서
개처럼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래, 이 개는 아예 동냥 그릇조차 가지고 다니질 않는 걸 보니
나보다 더 자유로워. 그 동안 나는 나의 유일한 재산인 그릇 때문에
밤중에도 누가 가져갈까 봐 불안해서 잠을 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릇이 안 보이면 주위사람을 의심도 하고 말이야.”
그러고는 손에 들었던 동냥 그릇을 아무 미련 없이
강물에 던져버리고는 자유롭게 헤엄도 치고 물을 마시며 한참을 놀았다.
디오게네스와 개는 어느덧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10,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어느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빌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는 평화를 빌어 주는 사람에게 돌아온다고 하십니다.
중국의 『노자도덕경』에는 ‘음성상화’(音聲相和)라는 말이 나옵니다.
음(音)은 내는 소리이고 성(聲)은 듣는 소리인데,
음과 성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곧, 먼저 나에게서 나가는 소리가 온전해야 듣는 소리도 온전해집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의(善意)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악담이나 저주를 했을 때에는
그것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평화를 빌어 주고 그를 축복해 줄 때
그의 삶 또한 성장합니다.
축복의 말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누군가에게 평화와 축복을 빌어 줄 때
그 사람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불신이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빌어 주는 평화와 축복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 줍니다.
이처럼 세상을 치유하는 힘은 우리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그리고
복음은 또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