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시간여행' - 216. 무혈 체제 전환 어떻게 가능했나?①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
1982년 소련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사망했다.
그가 사망할 당시 소련과 동구권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국과 대적하는 강성 대국으로서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 노릇을 해왔던 소련의 영광이 빛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데다 강성 대국으로서 위상을 유지하려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과도했다.
그 결과 나라 살림이나 개인의 살림이 점점 더 궁핍해지기 시작했다.
소련뿐 아니라 동구권도 사정이 비슷했다.
브레즈네프가 죽은 뒤 안드로포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2년 만에 급사했다.
뒤를 이은 체르넨코도 1년 만에 사망했다.
다음 자리를 이어받은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 틀 안에서 개혁(뻬레스뜨로이까:Пeрестройка)과
개방(글라스노스찌:Гласность) 정책을 통해 소련 사회를 개조하려고 했다.
▶군비축소, 경쟁 원리 도입
고르바초프는 우선 브레즈네프 시대에 확대된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끝내고 비 공세적 방어개념을 도입해
공격무기를 축소 또는 폐지했다.
경제 부문에서는 자본주의 경쟁 원리를 도입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했다.
이와 함께 정보를 공개하고 대중의 정치 참여를 유도했다.
또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시도했다.
1989년 당시 어렵게 소련에 들어가 고르바초프가 주도한 개혁과 개방 바람을 취재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키예프 등 주요 도시를 취재하며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민주화 모임이나 언론사 앞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활발한 토론 그리고 인민 대표자를 뽑는 직선제 선거 등을 지켜봤다.
공산주의 사회가 예상치 못하게 급속히 변화해 가는 물결의 흐름에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변화하는 소련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모스크바에 부는 훈풍’이라는 제목으로 KBS에서 방송한 적이 있다.
▶개혁 바람, 몽골 민주화 운동 촉발
고르바초프의 그러한 변화 시도는 결과적으로 몽골과 동구권의 민주화를 촉발시켰다.
특히 몽골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련의 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무엇보다 몽골은 경제적으로 소련과 코메콘에 크게 의존하던 구조였다.
개발 자본과 기술 모두 코메콘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무역 수지 적자도 경제 원조에 의해 처리해 왔다.
그런데 고르바초프의 개혁 노선은 동맹국에 대한 경제 원조의 삭감과 함께 자력갱생을 요구했다.
기댈 언덕이 사라지고 있는 몽골은 스스로 살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된 것이다.
▶몽골판 개혁운동 신칠렐
그래서 몽골에서도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한 개혁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신칠렐(ШИНЭЧЛЭЛ:Shinechlelt)이라 부르는 몽골판 뻬레스뜨로이까가 시작된 것이다.
신칠렐이라는 말 자체가 개혁, 혁신, 개선 등을 뜻하는 몽골 말이다.
몽골은 우선 소련과 동구권 의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다.
특히 소련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몽골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친 소련노선으로 중국과 거의 적대관계에 있었던 몽골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됐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
소련과 동구권의 민주화 바람의 영향으로 몽골에서도 1989년 12월에 몽골 민주연맹이 공식적으로 결성됐다.
몽골 민주연맹이 주도하는 민주화 운동이 이듬해인 1990년 더욱 가속화됐다.
그 흐름 속에 5월 들어 헌법을 개정해 다당제를 도입했다.
7월에는 민주 절차에 의한 자유선거도 최초로 실시했다.
말하자면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성격의 총선이었다.
그 와중에 몽골은 한국과 가장 먼저 수교를 하게 된다.
한국과의 수교 과정과 그 배경은 조금 뒤로 미뤄 두도록 하겠다.
일당독재 폐지와 자유선거 실시에 이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국가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몽골은 결국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버리고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이듬해인 1991년 몽골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포기를 선언하고 사유화 규정을 확정했다.
가장 먼저 소련의 위성국가가 됐던 몽골은 소련의 틀에서 벗어나는 데도 앞장을 선 것이다.
▶희생과 진통이 거의 없는 체제 전환
한 국가의 체제를 바꾸는 데는 통상적으로 상당한 희생과 진통이 따른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러시아가 사회주의혁명 후 소련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겪었던 희생이나 몽골이 사회주의 국가 되는 과정에서
뒤따랐던 엄청난 피해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를 시장 경제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큰 진통이나 희생이 별로 없었다.
말하자면 무혈 민주화 혁명을 이루어 냈다.
동유럽 중심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 민주화, 즉 평화적으로 진행된 민주화였다.
낯선 자본주의 경제체제 도입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있었지만 정치적인 혼란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몽골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제 전환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몽골이 과거 사회주의로 체제를 전환하는 과정에 겪은 희생과 피해는 엄청났다.
당시 인구의 10%가 희생되는 진통을 겪었다.
그런데 그 희생은 소련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다.
소련의 지시를 받은 초이발산이 앞장서 엄청난 희생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은
어떤 외부의 입김이 없이 몽골 스스로의 ‘선택과 집중’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