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호의 기승일지(騎乘日誌)4
“하늘 아래 두 영웅은 없다”고 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지만 특히 경주로에서는 더욱 맞아떨어진다.
최고를 가려야 하는 경마의 속성 상 동착이란 없다. 있을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의미다.
살다보면 때로는 운이라는 게 너무도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말을 배우고 탄지 15년의 시간이 흘러 기수라는 직업을 내려놓기까지
항상 마음 한 구석을 아련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말, 하늘 아래 주인은 둘이 될 수 없었기에 불운했던 명마! 바로 ‘강호명장’이다.
편치 않은 기억이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마음에 남아있었기에 불운했던 그 녀석을 끄집어 내봐야 하겠다.
2006년 봄쯤으로 기억된다.
항상 34조는 신마 수급이 다른 마방에 비해 엄청나게 많았다.
1년 내내 망아지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고 그걸 경주마로 훈련 시켜 내보내는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다른 마방은 봄에 망아지가 10두에서 20두 사이 들어오면 훈련을 시켜 1년을 버틴다.
적어도 3개월 정도는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34조에서는 어림없는 얘기다.
망아지 10두가 들어와 해결하면 또 들어오고, 현역으로 데뷔시키면 새로운 망아지가 또 들어와 있던 때다.
그만큼 최고의 자리에서 바쁘게 시간이 흘러가는 때이기도 했다.
어느 날 새벽, 조교를 하기 위해 마방에 들어갔더니 못 보던 망아지들이 와 있었다.
그것도 한꺼번에 7∼8마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또 망아지를 훈련해 데뷔시켜야 하니까.
훈련이 다된 말들은 그나마 쉬운데 이놈의 망아지들은 걷는 것부터 뛰는 것 등등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한 마디로 숨쉬는 것만 빼고 새롭게 거듭나도록 훈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날 새로 온 망아지들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았다.
내가 모두 할 수는 없으니 그 중 몇 마리만 골라 조교를 시도해 볼 요량이었다.
유독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조마삭 운동이 시작되고 어느덧 기승해도 될 즈음, 그 녀석부터 올라가 보기로 했다.
기승하자마자 입가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걸음걸이가 참으로 부드러웠고 망아지인데도 힘이 있었다.
좋은 놈을 만지게 됐다는 데 대한 즐거움이랄까!
시간이 흘러 주행심사를 받게 됐다.
나는 이 녀석의 능력을 알기에 주행심사에서는 모든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잡고 합격을 시키는 수준 정도.. (그때는 다들 그랬다.)
2006년 10월 22일 일요일 1경주가 데뷔전이었다.
인기순위는 4위. 첫 경기를 맞아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1000m를 1분01초5라는 빠른 기록에 주파하면서 같이 뛴 상대들과 9마신이나 차이가 났다.
게다가 들어 올 때는 별다른 추진 없이 잡고만 있었다.
당시만 해도 1000m 1초대의 기록은 거의 없었으니 엄청난 것이었다.
강렬한 데뷔전을 통해 만천하에 이름을 알리는 순간이었고 명마의 탄생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그때가 시작이자 마지막이었음을,
앞으로 길고 긴 악연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같은 경주에서 마찬가지로 데뷔전을 치른 국산마가 있었다. ‘제이에스홀드’였다.
당시 인기 2위였던 ‘제이에스홀드’는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모습으로 4등을 했다.
기억으론 발주 당시 앞발을 들고 늦게 나왔던 것 같다.
아니, 그때 제대로 출발을 했어도 ‘강호명장’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제이에스홀드’는 처음부터 문정균 기수가 탔고 은퇴까지 함께 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는 48조를 넘어 한국 경마를 대표하는 명마였다.
후문으로는, 문정균 기수가 이 말 덕에 아이 셋을 잘 키울 수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기수로서 선배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마 나에게서 ‘터프윈’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내가 가끔 그를 떠올리듯 선배도 ‘제이에스홀드’ 생각이 날 거다.
어쨌든 ‘강호명장’이 경주로에서 ‘제이에스홀드’를 이긴 건 데뷔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강호명장’의 길고 긴 불운이 시작된 것이다.
둘은 이듬해 4월 「뚝섬배」에서 다시 만났다.
3살이 된 후 본격적으로 뛰어야 할 시점에 드디어 대상경주로 마주한 최고의 두 마리.
최선을 다 했지만 ‘강호명장’은 무려 7마신 차이로 2등을 했다.
‘제이에스홀드’가 괴력을 드러내며 당당히 1등을 한 것이다.
(‘강호명장’의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