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지 못한 보배
(몽골 바얀 작)
서정길
고비 사막의 지평선은 끝이 없다. 그 망막한 모래의 바다를 가르듯 8시간 만에 도착한 바얀 작(Bayan zag)은 몽골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린다. 몽골어로 ‘사크사울 나무가 풍요로운 곳’이라 한다. 하지만, 초라한 팻말이 서 있는 초입은 아이러니하게도 키 낮은 나무가 듬성듬성할 뿐, 황량함 그 자체였다. ‘그러면 그렇지’ 사막에 뭐 그리 대단 한 게 있을까. 혼잣말을 되뇌며 비탈진 곳을 10분쯤 걸었을까. 메마른 풍경 속에 9천만 년이라는, 인간의 생애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거대한 절벽을 마주했다. 사방으로 갈라진 절벽은 마치 지구가 제 속살을 갈라 보여주는 거대한 상흔 같았다.
절벽 가장자리에 이르자 공기부터 다르다. 바람은 수억 년 전 백악기의 건조한 모래 먼지를 실어 날랐다. 발밑의 붉은 사암은 아직도 여전히 뜨거운 생명력을 품고 있는 듯하다. 1923년, 미국의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가 세계 최초로 공룡알 화석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곳이다. 거대한 파충류들이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던 요람이 이곳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발바닥에 닿는 이 붉은 모래알 하나하나가 어쩌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태고의 신비를 품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바얀 작이 왜 ‘불타는 절벽(Flaming Cliffs)’이라 부르는지를 증명해 보이기 시작한다. 한껏 기운 햇살이 사암의 철분과 만나 반응하는 순간, 절벽은 일제히 불을 뿜어낸다. 그것은 빛과 사암이 만든 자연현상이 이라기보다 대지가 하늘에 바치는 장엄한 번제燔祭, 지구가 고이 간직해 온 태고의 의식을 펼쳐 보이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 속에 담기는 것은 사방으로 펼쳐진 절벽의 장엄한 외형일 뿐, 고비의 정적과 내 심장을 두드리는 파동까지 담아낼 수는 없다는 게 아쉽다. 수많은 사진작가가 더 극적인 장면을 담느라 위험천만한 절벽 끝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나 역시 그 황홀경에 취해 몇 걸음 더 나아가려 했으나, 이내 멈춰 섰다.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아찔한 높이보다 더 위험한, 방치된 채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자연유산이자 고고학적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장치는커녕 안내판 하나, 안전요원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절벽은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관광객의 발길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문득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 떠올랐다. 그곳 역시 붉은 사암의 절경을 자랑하지만, 철저한 통제와 관리로 대자연의 위엄을 유지한다. 국가의 부강함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들이 가진 문화적 자산과 자연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귀중하게 꿰어내는 안목과 힘, 그것이 진정한 국력이자 국민의 수준임을 실감케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개인이나 나라나 스스로 귀하게 여길 줄 알 때 비로소 타인도 그 가치를 존중하는 법이다. 문화의 꽃은 구성원 각자의 역량의 총합이다. 찬란한 보석을 눈앞에 두고도, 그것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조차 없는지, 몽골의 문화적 토양이 안타까울 뿐이다. 적어도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의지가 있을 때 인류의 문화 자산이란 보석이 온전하게 빛날 것이 아닌가.
아무튼 바얀작은 인류 이전의 시간을 상상하게 하는 겸허한 공간이자 동시에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성찰의 장소였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붉게 타오르던 절벽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러져 갔다. 화려한 막이 내린 무대처럼 적막만이 감돌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여전히 뜨거운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수천만 년 전의 공룡들이 이곳에 생존의 흔적을 남겼듯, 나 역시 이곳에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발자국 하나를 깊게 남겨둔다.
한 발 짝 옮길 때마다 적막에 휩싸인 거대한 절벽이 절규를 쏟아낸다.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듯한 고독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가치를 몰라주는 초라한 대접에 대한 서운함일까.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이 붉은 제단이 이름만큼이나 귀하게 대접받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가치를 알아보는 눈과 그것을 지켜내는 의지가 없다면 대자연도, 인간의 삶도 그저 흩어진 모래알에 불과할 뿐이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고비의 정적은 더욱 단단해지는 것만 같다.
첫댓글 "한껏 기운 햇살이 사암의 철분과 만나 반응하는 순간, 절벽은 일제히 불을 뿜어낸다."
"절벽 가장자리에 이르자 공기부터 다르다. 바람은 수억 년 전 백악기의 건조한 모래 먼지를 실어 날랐다. "
"어느덧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붉게 타오르던 절벽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러져 갔다."
이런 표현이 참 좋습니다.
반면에
"아무튼 바얀작은 인류 이전의 시간을 상상하게 하는 겸허한 공간이자 동시에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성찰의 장소였다. "
많은 수필작가님들이 어런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런 표현은 초등학생 글짓기 시간에 주로 쓰는 표현 입니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고 독자들이 상상할 여백을 작가가 꽉 채워버리는 표현으로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을 반감 시킨다는 뜻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추사의 세한도 처럼(회장님 작품인지라 수필작가님들 공부를 위해 감히 평한 것이니 양해 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서회장님 기행수필 한 편 잘 읽었습니다. 나는 먼 곳을 여행하지 못하니 이런 작품들을 꼭 읽으며 또 좋아합니다. 작품 여러 곳에서 좋은 표현들이 많이 있어서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