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이 크면서 본의 아니게 그만 허리가 부러졌다. 볼품없다는 것은 사치일 뿐, 저러다 얼마 못 가서 죽지 싶었는데 어느 날 보니 그게 아니다. 남은 몸통의 잎 틈새에서 새순이 돋아났다. 처음에는 저것이 언제 자랄까 싶었다. 그러나 아픔이나 상처를 까마득히 잊고 오히려 디딤돌이라도 되듯이 앙다물고 일어서 새 가지를 짱짱하면서 다복하게 키워 꽃을 피웠다. 오히려 아무 어려움 없이 미끈하게 자란 풀들보다 소담스러운 꽃 무더기의 화려함이 그들 중에 단연 으뜸으로 눈길을 당겼다. 어찌 보면 인간 승리라 하듯 저 들풀의 승리이지 싶다. 누가 특별히 보살펴 치료하고 거름을 보탠 것도 아니다. 마치 농부가 논밭을 수시로 드나들며 가꾼 것 못지않다. 자수성가하듯이 잘 자라서 저렇게 우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비로소 싱글벙글 마음껏 제 모습을 펼치며 즐기고 있다. 누구 하나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장하다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어도 세상 부러운 것 없는 모습이다. 이처럼 생명은 함부로 짓밟거나 속단할 일이 아니다. 끝까지 놓지 않은 삶에의 강한 애착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 이면에 그 같은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져 있지 싶어 숙연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가 불타는 한 그 앞날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만큼 생명은 존엄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직간접적으로 도움도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 하는 내면의 힘이 있다. 우리의 피부는 상처를 입으면 스스로 낫기도 한다. 다만 시간이 다소 필요하고 흉측하게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강한 자생능력을 지녔다. 특별히 돌봐주어서가 아니다. 가만히 두어도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저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저렇게 해말간 모습으로 인간을 위로하고 있지 싶다. 이것이 자연에 주어진 특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권은 무한정이 아니라 자연이 견디며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