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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16. 큐티
창세기 37:12 ~ 28
애굽으로 팔려가는 꿈 꾸는 자 요셉
관찰 :
1) 아버지의 명으로 형들을 찾아다니는 요셉
- 12절.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 여기서도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버지와 함께 장막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 자체도 요셉의 형들에게 있어서는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 13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 야곱은 요셉에게 다른 아들들의 안부를 묻고자 합니다. 그래서 요셉을 불러서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편애로 인해서 자식들 간에 얼마나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셉 역시 형들이 자신에 대해서 미워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14절.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 세겜은 야곱 일가가 머물렀던 곳으로 디나 사건이 있던 곳입니다. 그로 인해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 남자를 모두 죽인 곳입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는 그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야곱의 가문이 그곳에 왔다는 것은 복수를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의 초장이 좋기에 야곱의 아들들은 그곳으로 양떼를 몰고 갔지만, 잠재적 위협의 요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로 인해서 소식이 오지 않는 아들들의 상황을 알고자 요셉을 보낸 것입니다.
- 15절.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나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된 네가 무엇을 찾느냐” => 채색옷을 입고 세겜의 광야를 방황하는 소년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띄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들에서 요셉을 만난 사람이 요셉에게 무엇을 찾는지를 묻게 되었습니다.
- 16절. “그가 이르된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 요셉은 솔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형들을 찾고 있고, 혹시 그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 본문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애를 썼지만 안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때까지 인내하며 새로운 길을 찾으며 노력하고 있는 요셉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 17절.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 요셉은 사실 형들이 머물렀던 들판까지 찾아갔었습니다. 하지만 형들이 장소를 옮겨서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그 형들이 어디로 갔는지 묻자 그들이 도단으로 간다고 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단에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도단”은 “두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린 장소이고, 엘리사 선지자가 자신을 잡으러 온 아람 왕 벤하닷의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던 곳입니다. 세겜 북쪽 약 22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있다는 도단으로 지체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2) 요셉을 팔아버리는 무정한 형들
- 18절.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야곱이 없는 상황에서 동생 요셉을 보고 그들의 적의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마음으로 요셉을 죽이기로 동의했습니다.
- 19절.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부르는 별명이 “꿈 꾸는 자”였습니다. 별명을 아주 잘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조롱이었습니다.
- 20절.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 누가 이 대사를 했는지 정확하게 나오고 있지는 않습니다. 요셉을 죽이는 것을 주동한 사람의 의견입니다. 동생 요셉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요셉을 죽이는 방식까지 모의하고, 또 핑계도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요셉의 꿈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21절.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 장자 르우벤은 그래도 연로한 아버지를 생각해서 요셉을 죽이지는 말자고 제안합니다. 동생들 몰래 요셉을 구하고자 시도합니다.
- 22절.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정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 르우벤은 맏아들로서 동생 요셉을 죽이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물에 던지고 혼쭐을 냈으니 구출해서 아버지에게로 데려가면 향후에 요셉의 행동이 변화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의 생각은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르우벤이 맏형이었지만, 그의 주장이 동생들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빌하와 성관계를 맺음으로 르우벤의 장자로서의 영향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 23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 요셉의 형들은 시기 질투의 상징인 요셉의 채색옷을 벗겼습니다. 그 옷을 찢고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 야곱을 속이기 위함이었습니다.
- 24절.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 요셉의 형들은 이 때만 해도 진짜 요셉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르우벤은 그렇지 않았지만 요셉을 때가 되면 죽이려고 물 없는 구덩이에 던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요셉이 형들을 향해서 살려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외치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에 대한 완악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 25절.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곱으로 내려가는지라” => 동생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놓고, 엉엉 울고 있는 요셉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형들은 음식을 먹고 요셉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상황에서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로 인해서 요셉 형들의 계획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르우벤은 양을 치러 다른 지역에 있었습니다.
- 26절.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 4째 유다가 형제들의 의견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의 의견은 구태여 동생을 죽일 필요는 없고,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과정입니다. 유다는 그가 제안한 이 제안으로 요셉이 향후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고, 요셉이 꾸었던 꿈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섭리를 통해서 구속사의 역사를 이어가시도록 이런 제안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 27절.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 유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모든 형제들이 유다의 말을 청종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유다가 다른 형제들을 리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형제들 중에는 진짜로 요셉을 죽이고자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요셉을 죽이는 일에 가장 선동적이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유다의 결정으로 인해서 요셉은 죽음을 모면하고,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 때 요셉을 평생 다시 만나게 되리라 결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28절.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지는 요셉은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팔지 말아달라고 사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버렸고, 요셉은 결박당하고 끌려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여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가르침 :
1)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명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세겜으로 형들의 안전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형들을 찾지 못했지만, 계속 형들의 행적을 찾고 찾았습니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으로 형들의 위치를 알게 되어 형들에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재수없게 여기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총명했지만 순진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도 이용하십니다.
2) 요셉은 형들에게 붙잡혀 옷을 벗기워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야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역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요셉이 옷을 벗기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것은 옷 벗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요셉이 당한 수모와 수치와 위기는 하나님의 숨겨진 은혜였습니다.
3) 요셉은 구덩이에서 목이 터져라 형들에게 용서를 빌고 또 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처음에는 진짜 죽이려 했습니다. 맏 형 르우벤은 몰래 요셉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맏 형으로서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말하고, 모든 형제들이 자신의 의견을 따르도록 이끌었습니다. 누구도 반발하지 않고 유다의 지도에 따라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리게 됩니다.
4) 구속사적 관점에서 유다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이가 나오게 되는 것에 대한 단초를 보게 됩니다. 향후에 애굽에서 야곱이 세운 장자권이 요셉에서 에브라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출애굽 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서도 12지파의 주도권이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쟁으로 나뉘게 됩니다. 사울 왕 때에도 그러한 알력이 존재했지만, 에브라임과 유다를 포함하여 명실공히 진정한 통일왕국을 이룬 것은 다윗과 솔로몬 두 왕의 때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한 10지파가 북 왕국을 이루게 되고, 유다를 중심으로 한 2지파가 남 왕국을 이루게 됩니다. 이미 야곱의 살아 생전에 유다의 리더십이 공교하게 세워져 가게 되었다는 것을 모세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용 :
1)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철이 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형들의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가 고난을 당함으로 야곱 가문 뿐만이 아니라 고대 근동과 이집트,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이르는 이들이 굶어죽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가 성취되기 위해서 요셉의 인생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일을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나게 되기를 소망, 또 소망합니다.
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유다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희생과 헌신은 필요합니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모든 과정을 기쁨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과의 동행을 더 깊이 체험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극한의 고난의 시간 속에서 역설적으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과정을 겪었듯이,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여정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