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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서설(瑞雪)을 보다
최 순 태
경북 포항의 강진으로 인하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이제까지 다른 이유로 시험이 미루어진 일은 몇 번 있었지만, 자연재해 때문에 시험이 제때 시행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일주일 늦게 치러진 시험이 무사히 끝난 다음날인 11월 24일 대구, 경북 지방에 첫눈이 내렸다. 작년에 비해서 이틀 빨리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인근 초등학교 지붕에 눈이 쌓이고 하늘에서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원래 첫눈은 서설(瑞雪)이라고 한다. 즉, “상서로운 눈”이란 뜻이다. 시험을 치른 수험생 모두가 좋은 성적을 받게 되리라는 의미 같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아무쪼록 수험생 모두가 자기가 여태까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눈이 내리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어린이들과 청춘남녀들이다. 흔히 연인들은 처음 눈이 내리면 서로 어디에서 만나자고 연락을 하여 데이트를 즐기고 밤새 걸어 다니며 추억을 쌓는다. 나는 젊은 시절 그런 기억이 없어서 아쉬웠다.
눈을 보면 김효근 작곡가의 가곡 “눈”이 생각난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눈 덮인 한적한 산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시로 이루어진 명곡이다.
나는 이 노래를 겨울이 되면 즐겨 부른다. 작곡가님은 원래 대학 및 대학원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강의를 하던 학자인데 작곡공모에서 이 곡을 발표하여 유명해졌고, 이외에도 “첫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국가대표선수들의 겨울 훈련장소인 함백산을 등정했을 때 눈이 내리는 산에서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길에서의 정취를 느껴보기도 하였다. 사실 그 때 눈덮인 산에서 길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어 같이 간 일행을 놓쳐서 겁이 난 까닭도 있었다. 집에서 혼자 부를 때와 다른 감흥이 있었다.
어느 해에는 전형적인 과우지역이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대구에서 첫눈을 보지 못하고 직장에서 단체 야유회를 갔을 때 문경에서 첫눈을 맞은 적도 있었고,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시작된 3월에 상주 갑장산에 올랐을 때 산중턱에서부터 눈이 내려 정상 부근에서 아름다운 설화(雪花)와 상고대(霜高帶)를 보는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영국시인인 T.S.Eliot는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4월의 날씨는 변화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지 확실히 기억할 수 없지만 4월 어느 날 대구지방에 함박눈이 내렸다. 점심시간에 자동차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가던 길에 펑펑 내리는 눈을 흠뻑 맞은 일이 있었다.
연인들은 눈 맞으며 손잡고 걸어가면서 낭만을 느끼겠지만 내가 복무하던 강원도 홍천은 겨울이 되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우선 우리 대대의 제설작업이 끝나면 인근 연대본부로 출동하여 일을 해야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
올해 첫눈을 보니 고향집에 계신 노모가 생각난다. 93세인 노인이 눈이 많이 오면 앞마당과 뒷마당이 넓은 우리 집의 눈을 어떻게 치울까 걱정이 태산이다. 같은 동네에 6촌 형님도 있고, 이웃 사람들이 도와주시겠지 라고 자위해 본다.
농촌에 눈이 내리면 온 동민들이 동원되어 농로를 거쳐 신작로까지 눈을 치워서 사람들의 통행을 쉽게 하고 동네 안길에 쌓인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을 하여 지금은 복개된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랑에 갖다 버려서 녹게 하였다.
겨울에 눈이 자주 내리면 그 다음에 농사가 잘된다고 하였다. 강수량이 풍부해져 다음 해 봄 농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작물의 성장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눈을 반긴다.
도시에 눈이 내려서 도로나 인도가 얼어붙으면 시청이나 구청에서 염화칼슘을 뿌려 눈을 녹인다. 그런데 너무 많은 양을 뿌려 낭비가 심하고,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타이어 손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적당량을 뿌리거나 환경오염이 덜한 소금물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고등학교에는 학교 뒤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김천은 대구보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어서 학교 뒷산의 설경은 멋지다. 김천중학교에서 교감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사진작가이신 동문이 모교의 송정 설경을 찍은 사진을 밴드에 올렸다.
교주의 묘소 주변 및 산소로 올라가는 돌계단, 교주 할머니가 거주하던 취백헌과 정걸재, 학교 설립 시 건축한 붉은 벽돌로 된 본관, 교주의 동상이 눈과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여 천하 절경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때 눈이 오면 아이들은 비료 포대를 이용하여 눈썰매를 만들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며 눈에서 신나게 노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요즈음 도시의 아이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네들로서는 상당한 부러움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마을 뒤의 산에는 꿩이나 산토끼가 많아 눈 쌓인 산에서 사냥을 한다. 동물들이 눈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서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가 다가가면 재빠르게 도망을 가서 사냥이 마냥 쉽지는 않다.
공직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시행하는 퇴직 후 미래설계교육이 천안상록회관에서 시작되었다. 수업 중 갑자기 하늘에 눈구름이 형성되어 컴컴하게 되었다. 이윽고 사방에 눈이 내리더니 온 세상이 설원으로 변하였다. 눈이 귀한 우리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경치였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당시 부산의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룸메이트와 오랜만에 눈꽃을 감상하고 정신없이 휴대폰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지금도 그때의 사진을 보면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천안은 중부지방이라 눈이 많이 오는 지방인 것 같았다. 공직생활 중 업무 때문에 제3정부종합청사가 위치한 대전에 출장갈 일이 많았다. 대구는 화창하였으나 대전에 가까워지면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젊을 때는 첫눈이 오면 마음이 설레고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한 연인들은 서로 만나 눈을 밟고 맞아가며 그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때로는 “눈이 내리네”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추억을 쌓아간다.
농촌에서는 겨울이 많은 눈이 내리면 길조라 하여 크게 반긴다. 눈으로 인하여 땅속에 물이 스며들어 땅을 비옥하게 하고, 저수지에 물을 가득 채워 이듬해 본격적인 농사철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지구의 온난화로 인하여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여 눈, 비 오는 양이 적어서 농민들은 애를 태운다. 이 모든 것이 인간들의 무분별한 욕심으로 환경오염이 되어 생긴 것이다. 지금이라도 오염을 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모든 방안을 강구하여 하루빨리 예전과 같이 겨울에 춥고 눈도 많이 오던 시절이 돌아오면 좋겠다. 빠른 시일 내에 자연환경이 복원되어야 한다.
첫댓글 눈이 기다려지는 계절입니다. 특히 눈 구경하기 힘든 대구에서는 남여노소 다을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눈에 얽힌 다양한 추억들 잘읽었읍니다. 감사드립니다.
계절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이다. 눈도 비도 우리가 생각하던 옛날 만큼 내려주지 않는 자연을 보며,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 가사를 생각합니다. 이제는 많이 올 때 잘 모아 두었다가 훗날을 기약하는 지혜가 필요힐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눈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사연을 담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연환경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옛날 삼한사온 기후에다 눈도 제법 많이 내리던 때가 지구가 건강한 모습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눈 내리는 산에서 눈에 대한 노래를 부르시고 설경의 몇 장면들이 명화처럼 남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군요.. 차로 출퇴근하던 겨울에는 눈이 내릴까봐 노심초사하던 일만 떠오릅니다. 눈에 대한 낭만적 시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눈내리는 날은 무작정 걷고 싶은데 눈이 녹는 날은 질척거리고 미끄럽고 무척 조심해야 하지요. 여기저기서 넘어지는 사람이 많아 병원이 북새통이라고 들었지요. 하지만 어릴때 눈은 먼 훗날 이야깃거리가 되지요. 눈오는날 눈싸움은 운동장이 제격이지요. 눈뭉치로 몹시도 괴롭히던 그 많던 개구쟁이들이 일년에 한번씩동창회에서 만납니다. 허연 할아버지가 되어 생생한 기억만은 어린시절로 돌아가 눈오는 날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눈이 가져다 주는 여러가지 잇점들, 수험생들은 서설이고 청춘남녀에게는 추억을 나누는 기회, 등산객에게는 흥얼대는 기분을 주고, 농사에는 풍년을 예약하고. 눈은 우리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온난화로 눈 내리는 양이 적어지니 걱정입니다. 눈이 많이 오던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눈이 귀한 대구에도..이번 겨울엔 눈과 함께 할 수 있길 기대를 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공직생활을 하면서 눈에대한 환상은 걱정거리로 변하였습니다. 새벽에 눈이 내려 비상이 걸리면 한시간 이내에 도착하여야 하는데 고산에서 차량으로 기다시피 조심조심 응소한 기억과 비탈면 제설작업등으로 눈을 싫어 하였습니다. 지금은 설산에 등산하며 눈을 즐기고 있으니 환경따라 변하는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