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57]아름다운 사람(64)-표구 43년 ‘서울 고진’
전북지역의 사투리 ‘고진’을 아시나요? 고진은 한마디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일컫는데, 흔치는 않다. 평생 착하고 고지식한 사람 또는 성품이 아주 곧고 정직한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예전 시골에는 동네마다 꼭 한두 명의 고진이 있었다. 동네의 궂은 일을 솔선수범하면서도 표내지 않고, 자신이 손해를 봤으면 봤지 크고작은 이득을 위해 아득바득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엊그제 서울 인사동에서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한 고향선배가 시골 살았다면 딱 그런 분이다. 대도시인 서울에 산다고 그런 성품이 어디 갈 리가 없어 나는 ‘서울 고진’이라고 부른다.
나보다 여덞 살 위인 그 형님은 고향(이웃마을)에서 국민학교만 나오고 이런저런 노동을 하다 스무 살이 다 되어서야 먹고 살기 위하여 상경을 했다. 돈암동 사거리의 표구사에서 잔심부름을 4년여 하다 독립했다. 그림의 테두리나 뒷면에 종이나 천을 발라 멋지게 꾸미는 표구 기술을 배운 것이다. 아무리 잘 그린 명화라 해도 표구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파이’인 것을 알 것이다.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박물관 등에 걸려 있는 수많은 명화들도 사각의 액자 속에 멋지게 담겨 있지 않으면 그게 ‘작품’이겠는가. 글씨, 그림, 병풍 등 43년 동안 수 천 점의 작품을 표구했을 터. 조선시대에는 ‘장황(裝潢)’이라고 했다. 종이나 비단에 그린 작품을 빳빳하게 만드는 배접(褙接)보다 힘든 일은 화제(畫題)를 익히는 것. 짧은 한자 실력에 초서(草書)로 휘갈긴 것들은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자였다. 한 자 한 자 눈에 담아 놓은 게 이제는 어지간하면 읽을 수 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堂狗三年吠風月)는 셈. 그러다가 언제부터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른바 문인화가가 되었다. 일삼아 취미를 즐긴 게 작품이 제법 쌓였다. 인사동 경인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두 번 열었으니 확실한 작가이다. 성취감에 배가 불렀다.
공덕동과 굴레방다리 아래에서 40년의 세월이 한순간 지나갔다. 눈도 침침하기 시작하고 나이도 있어 표구사를 접었다. 무료함에 파크 골프에 매료됐다. 백내장 수술을 잘못한 듯해 속이 상하고 눈이 불편한 데도 고향후배의 전화에 선뜻 나와 점심을 샀다. 객지에서 그 형님을 만난 게 77년이었으니 50년이 다 돼간다. 사실 나는 고향선배라 하지만 이름만 알고 얼굴을 모르는데, 어느날 귀가길에 가게(표구사)에서 달려나와 “00 동생 아니냐”며 아는체를 먼저 해 알게 됐다. 52년생과 내가 빼박은 것이다. 나도 서울에 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때여서 반가웠다. 이후 지금껏 2,3년에 한두 번 만나거나 전화하는 사이로 지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선배이지만 성품이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것, 아우 입장에서 ‘결이 참 고운 분’ ‘고진’이라고 말하면 실례이지만 정말 그런 분이어서 편하고 좋다. 친동생처럼 아껴준다. 몇 년 전엔 벌초를 한다며 찾은 고향길에 형수와 함께 우리 사랑방에서 주무시고 가기도 했다.
아들 하나를 낳아 잘 키웠다. 금융기관에 다니는 중견 사원으로 손자를 두 명이나 안겨줬다. 형수와 70대 후반 파크골프 파트너로 노후를 즐기고 있다.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해(害)를 끼친 적 없고, 거짓말한 적이 없다. 후배를 보면 뭐 하나라도 못줘서 안달이다. 술도 사고 밥도 사고, 당신이 그린 소품 부채나 그림 그려진 가방도 준다. 그 마음씀씀이가 참 고마운 보통사람, 이런 분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아름다운 사람일 것인가. 당신은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럴 이유는 전혀 없다고 역설한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으랴. 그만큼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으면 알아줘야지, 저 거짓말로 똘똘 뭉친 수백, 수천의 위선적 정치가들보다 백 번 낫지 않은가.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위대하게 산다는 것보다 백 배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평범(平凡)=비범(非凡)이라고 하지 않은가. 평생 말없이 고생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건하며 손자들의 재롱에 오래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그분을 만나 떠오르던 우리 고향의 사투리 ‘고진’의 뜻과 어원을 생각해본다. 고진은 요령 피울 줄 모르고, 남을 속이지 않으며, 정해진 도리나 원칙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저 사람은 고진해서 손해를 보면 봤지, 남한테 해코지할 사람이 아녀” 등으로 쓴다. 표준어 ‘고지식하다'는 요즘 시대에 ‘약간 답답하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지만, "사람이 고진하다”는 표현은 ‘사람이 진실되고 바르다’는 신뢰와 칭찬의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다. ‘곧다(straight)’라는 형용사에서 유래됐을 듯. ‘곧은’에서 ‘ㄷ’불규칙 활용이나 발음이 변하며 ‘고든’을 거쳐 ‘고진’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고진막대기’는 전북 사투리의 정수(精髓)와 같은 깊은 뜻이 담긴 표현이다. 단순히 착한 것을 넘어 ‘융통성이 전혀 없는 고지식할 정도로 바른 사람’을 비유한다. 긍정적인 뜻이지만, 고집이 센 정직함을 약간 놀리는 듯한 의미도 있다. “그 사람 참 고진막대기여”는 칭찬하면서도 정겨운 핀잔이 담겼다. 아무튼, 나는 ‘고진(곧은) 성품'을 극대화한 고진막대기라는 표현이, 전북의 선비정신이나 정직함을 귀하게 여기는 정서가 그 말에 녹아 있는 듯해 좋아하는 말이다. 누가 나의 성품을 평할 때 이런 말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