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금) 잠언 30:1-9 찬송 325장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개역 개정)
- 지혜를 추구하는 아굴 -
제25-29장까지가 히스기야 신하들에 의해 편집된 잠언들인데 반해
30장은 솔로몬 당시 지혜자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 모음집이다.
이러한 30장도 앞선 다른 잠언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지키고 기억해야 할 짤막하고
다양한 잠언들을 풍자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 말씀은 아굴 잠언의 표제어 1절과
세부적인 잠언들을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영적 무지를 고백한 2-4절과
참된 지식의 근원인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밝힌 5-6절 및
자신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도록 자신의 내부적, 외부적인
범죄 요인들을 없애달라고 기원하는 7-9절로 다시 나누어진다.
이는 30장의 잠언을 기술하는 아굴의 겸손한 신앙적 자세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거룩한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열심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죄악된 인간은 제한을 갖는 자신의 지식만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며(잠9:10)
오직 무한하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딤후3:16)
그러므로 진리에 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소중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한편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지닌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간적인 욕망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다 실제적인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9절)
즉 세속적인 인간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나(요일2:16)
우리는 오로지 영원히 남을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을 추구해야 한다.(요일2:17)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은 8절에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며’라고
기도했던 이유에 대해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셜명한다.
여기서 전반절은 지나치게 부해질 때 하나님을 잊고 교만해진다는 의미이며
후반절은 지나치게 가난해질 경우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이는 자신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동시에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 역시 여느 평범한 사람과 같이
부해지거나 가난해질 경우 상황에 따라 인품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보면 성숙하고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일수록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겸손히 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는 달리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함부로 행동할 때가 많다.
그리하여 조금만 높아지면 이내 교만해져서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행동하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뻣뻣한 목을 숙이려 들지 않는다.
또 사람들 앞에서 자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는 기도할 때도 자신의 그릇의 크기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더 많이 주시고 더 높여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하지만 주머니도 일정 용량을 넘어 무리하게 담으면 찢어지는 법이며
튼튼하게 보이는 다리도 설계된 하중 이상의 차가 지나가면 무너지는 법이다.
때문에 애굽의 바로는 자신의 권세만 믿고
‘여호와가 누구관대’ 라고 교만을 떨다 무서운 심판을 받았다.(출5:2)
또 고라 일당은 분수를 모르고 한계 이상의 자리를 탐하다가
오히려 땅속 깊은 곳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민16장)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배가 불러지자
하나님을 잊고 교만한 모습으로 일관하다 역시 무서운 심판을 받았다.(렘5:7; 호13:6)
뿐만 아니라 베드로 역시 자신의 약점을 망각하고 기도할 것을 명하는
주님의 경고도 무시한 채 ‘나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다’라고
큰소리치다 가장 먼저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다.(눅22:31-62)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겸손한 자세로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했던 다윗이나(시131:1)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며(롬7:21-24) 하나님께서 주신 고통마저
자기의 교만을 꺾기 위한 은혜라고 감사했던 사도 바울(고후12:7)과 같은 분들이
오히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사실은 귀한 교훈이다.
그러므로 ‘눈이 배보다 크다(Your eyes are bigger than your stomach)’라는
서양 격언처럼 우리는 자신의 그릇은 생각지 않고
무조건 많이 달라고 욕심 부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또한 우리는 모두 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를 분별해야 한다.
만일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것의 다름아니다.
오직 우리는 모두 연약한 질그릇이며(고후4:7)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요15:5)
늘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