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드미 감독이 국내외로 가장 유명하게 된 것은 프랑스에서 만든 유명한 뮤지컬 <쉘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 (1964) 덕분이다. 카트린 드뇌브가 출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알제리 전쟁으로 헤어지는 연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아름다운 선율에 담았다. 그에게도 시대적인 의식은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미는 그의 작품에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지는 않았다. 배경인 알제리 전투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공교롭게도 그는 ‘알제리 전투’를 겪은 누벨바그 감독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 말 감독처럼 이들과는 구별되었으며 그의 첫 장편인 <롤라 Lola>(1961)는 막스 오퓔스 감독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출발점에서부터 노래와 춤의 세계에 빠져 있었고, 오퓔스의 영화들은 하나의 지침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이 영화는 폰 스트로하임의 애욕의 세계가 담겨져 있다. 인생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즐겨 들여다보는 자크 드미의 성향은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타일을 제외하고는 뉴웨이브 감독들과 공감대를 지녔다고 영화이론가 로빈 우드는 자크 드미를 평가한다. 다분히 비극에 치우치는 성향들과 그의 전 작품을 아우르는 거짓과 자유의 긴장감은 동시대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식이라면 루이 말에게도 같은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여하튼 <롤라>의 크레딧 시퀀스를 보면 재즈와 베토벤 <교향곡 7번>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음악의 사용만으로도 묘한 긴장감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그는 1955년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롤라>를 만들기 이전까지는 단편을 주로 만들어 왔다. 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쌓기 위해 수많은 단편들은 커다란 밑바탕이 되었다.1982년에 그는 낭트 조선소에서의 격렬한 노동투쟁을 배경으로 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도시의 방 Une Chambre en Ville> (1982)을 완성하였다.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장중한 가극풍의 이 작품은 <쉘부르의 우산>의 명예에는 이르지 못했다.
출처:[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