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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화감
심문회의를 일주일 앞두고, 강범은 최서윤의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훑었다.
신고서, 진술서, 팀장의 부적절한 메시지 캡처본, 회식 참석자 진술. 노동청 대질조사 때와 노동위 서면 공방 때 이미 몇 번을 봤던 자료들이었다.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일전에 화이트보드에 그어둔 그 '물음표'가, 왜인지 며칠째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강범은 자세를 고쳐잡고 메시지 캡처본과 최서윤에게 제출 받아둔 핸드폰 원본 화면을 책상 위에 나란히 놓았다. 처음에 대조했을 때는 "전체적으로 일치한다"고 넘어갔었는데, 이번엔 하나하나 시간까지 맞춰봤다.
2025년 12월 14일, 팀장의 마지막 부적절한 메시지. 캡처본에는 '새벽 1시 47분'으로 찍혀 있었다.
'어?'
그런데 원본 대화방을 다시 스크롤해보니, 그 시각에 해당하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전날 밤 11시 20분'에 유사한 내용의 메시지가 있었다. 강범은 캡쳐본과 원본 화면을 번갈아가며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째서지?'
다음 날, 강범은 최서윤을 사무실로 불렀다.
"최서윤 씨, 팀장이 보낸 이 마지막 메시지요. 신고서 상의 메시지 캡쳐본에는 12월 14일 새벽 1시 47분으로 적혀 있는데, 원본 대화방에는 그 시간대에 해당 메시지가 안 보여요. 대신 전날 밤 11시 20분쯤에 비슷한 내용이 있고요."
최서윤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어... 그거 제가 캡처하고 나서 대화방을 정리했을 수도 있어요. 스크롤이 길어서 오래된 거 지운 적 있거든요."
"지운 거면, 그 메시지 자체가 삭제된 거예요, 아니면 다른 대화방으로 옮겨진 거예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오래돼서."
강범은 더 캐묻지 않았다. 캡처본과 원본의 시간 표기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일은 실제로도 종종 있다. 기기 시간 설정, 캡처 도구, 메신저 서버 시차 문제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강범의 마음 한구석은 계속 그 지점에 걸려 있었다. 회사측이 제출했던 답변서 "추가증거 확보시 별도로 제출"이라는 문장과, 이 작은 시간 불일치가 왜인지 모르게 겹쳐 보였다.
최서윤이 돌아간 뒤, 강범은 조 사무장에게 말했다.
"사무장님, 혹시 최서윤 씨 전 직장에 자연스럽게 확인할 방법 있을까요. 공식 조회 말고, 사람 통해서요."
"<블룸마케팅>이요? 저번에도 물어보셨잖아요. 지금 왜 다시요?"
"이 시간 불일치 때문에요.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그냥 넘기고 싶지가 않아서요."
"증거가 조작됐을 거라고 보세요?"
"글쎄요, 그저 가능성 중 하나죠. 확인해서 나쁠 거 없어요."
사흘 뒤, 조 사무장이 소식을 가져왔다.
"제 대학 후배가 그 <블룸마케팅> 다녔던 사람을 알더라고요. 지금은 다른 회사 다니는데, 최서윤 씨랑 겹치는 시기에 같이 일했대요. 직접 통화는 못 했고, 후배 통해서 전해 들은 거라 정확하진 않은데요, 다만."
조 사무장이 들고있던 펜을 책상에 탁 내려놓았다.
"최서윤 씨, 거기서도 팀장이랑 문제가 있었대요. 부적절한 언행 관련해서 사내에 문제제기를 했고, 그 이후에 얼마 안 돼서 퇴사했다고. 그런데 퇴사 조건에 뭔가 합의금 비슷한 게 있었다는 얘기도 있대요. 확실친 않고요."
강범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친 않다는 게 어느 정도예요?"
"그 후배도 직접 본 건 아니고, 당시 팀 사람들 사이에 돌던 얘기래요. 법적절차까지 간 건 아니라고 해요."
강범은 양 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살짝 몸을 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관련 자료는 확보된 게 없죠?"
"네, 그저 소문 수준이에요."
"하지만 전 직장과 현 직장, 두 군데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는 것과 회사가 각각 다르게 대응했다는 것. 적어도 이 두 가지는 사실일 가능성이 크네요."
조 사무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범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강범은 파일을 덮었다. 심문회의는 사흘 뒤였다. 이 정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확정된 사실도 아니고, 최서윤에게 직접 물어봐야 나올 대답도 뻔했다. 부인하거나, 억울해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지금 강범이 할 수 있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 확보한 증거는 명확했다. 직장내괴롭힘 조사위원회 미구성, 이해충돌 소지가 다분한 인사평가서, 신고 이후 해고까지의 시간적 근접성, 노동청의 기소의견 송치. 이것들은 소문 하나로 흔들릴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강범은 그렇게 정리했다. 아니, 정리했다고 믿었다.
심문회의 전날 밤, 강범은 사무실에서 노동위원회에 제출된 서류와 증거자료들을 마지막으로 검토했다. 그런데 책상 위 가득 쌓아올린 서류 위로, 자꾸 조 사무장이 전해준 그 말이 겹쳐보였다. "법적절차까지 간 건 아니라고 해요."
강범은 그 문장을 애써 밀어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게 이번 사건이 거짓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오히려 반복해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독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는 방증일 수도 있었다. 강범은 그렇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함께 왔다. 만약 사측이 이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면. 노동청 대질조사에서 철회했던 그 자료, 그리고 답변서의 그 애매한 문장이, 바로 이 얘기를 가리키는 거라면.
강범은 서면을 다시 한번 처음부터 훑었다. 고칠 곳은 없었다. 논리적으로는 그랬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처음 최서윤을 만났던 날 느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준비를 깔끔하게 잘해온 사람. 클리어파일에 날짜별로 군더더기 없애 정리된 서류. 그때는 그게 신뢰의 근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도 읽혔다.
강범은 사무실 불을 끄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일은 준비한 대로 하면 된다. 사실관계는 바뀌지 않았고, 증거는 여전히 우리 쪽에 있다.
그 말이 스스로에게도 완전히 믿기지는 않는다는 걸, 강범은 알고 있었다.
- 7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