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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연속 설악을 다녀왔다. 5월 21일은 성대 신방과 산악회의 정기산행(여섯 명 참여) 한계령~대청봉~남설악탐방센터(오색), 같은 달 29일 나홀로 한계령~대승령~장수대에 이어 6월 4일에는 부부 동반으로 십이선녀탕~대승령~장수대를 다녀왔다. 3주에 걸쳐 서북능선을 완주한 셈이다.
혼자 가네, 둘이 함께 가네 말이 많다가 아내가 가겠다고 최종 결심을 했다. 전날 오전이었다. 동서울터미널 예약 사이트를 찾아 남교리 가는 금강고속 첫 차(오전 6시 49분)에 달랑 한 자리만 남아 있었다. 아내에게 얘기하면 혼날까 싶어 얘기하지 않고 한 자리만 예약했다. 점심 때 아내가 물어와 실토하고, 예약 사이트를 다시 찾았더니 다행히 한 자리가 더 나와 있어 무사히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아내가 물어 “산에서 제일 부러운 게 그냥 밥에 집에서 먹던 반찬 싸와 먹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아내는 굳이 계란 반찬을 하나 더 만들겠다면서 집에 있던 반찬 여섯 종류를 싸고 참외와 사과를 준비한다고 했다. 캔맥주 둘을 얼렸다.
당일 새벽 5시쯤 일어나 준비를 해 첫 버스에 올랐다. 앞쪽에 앉은 아내가 빈 옆 자리에 어서 손짓했는데 제때 이를 발견하지 못해 빨리 갈 남자가 아내 옆 자리에 앉고 난 그냥 뒷자리에 앉아 가게 됐다.
터미널을 떠난 버스가 강변북로 워커힐 호텔을 지나자마자 차량 뒤편 붉은 물결이 이어진다. 한 주 전의 일요일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기사님은 웬일인지 강일쯤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않고 강변북로를 죽 달려 덕소에서 진입했는데 그 가는 길이 더욱 막히는 듯했다. 화양강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인제와 원통 들러 남교리에 내리니 오전 10시 50분이었다. 둘만 덩그러니 남긴 버스는 휑하니 사라진다. 터덜터덜 걷고 다리 건너 십이선녀탕 입구에 이르니 11시가 넘어버렸다. 큰 일이다 싶었다. 이곳을 9시쯤 통과해 오후 4시쯤 장수대에 이르러 간단히 식사 마치고 5시 15분 버스에 탈 생각이었는데 무려 2시간이나 늦어진 것이다.
휴게소에서 우동 하나 시켜 나눠 먹으려 했는데 주문이 들어가지 않아 먹지 못하고 중국산 옥수수 사서 반쪽 나눠 먹은 게 전부였던 아내는 자꾸 다리 건너기 전부터 그늘막에서 옥수수라도 마저 먹고 가자고 했다. 난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계곡 들어가 산기운 맡으며 먹자고 했다. 20분쯤 올라가 계곡 옆 널찍한 자리가 보여 양을 가늠하기 어려운 팥밥을 맛나게 먹었다. 아마 평소에 먹던 양으로 치면 3인분쯤을 둘이 해치운 것 같았다.
12시 47분에 여러분도 익히 기억하고 있을 것 같은 너럭바위 일대에 걸터앉아 집에서 타와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나눠 마셨다. 결혼 일년 뒤 신혼여행을 간 딸네 부부에게 안부를 겸해 셀피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날렸지만 전화가 터지지 않는 구간이라 도돌이표가 이어진다.
날이 많이 가물어 계곡 물은 적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정도는 아니었다. 콸콸은 아니지만 졸졸 흐르는 편이었다. 사람도 제법 있었다. 진행 속도가 아주 빠른 30여명이 일제히 줄지어 올랐는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 복숭아탕에서 돌아섰다. 아내는 복숭아탕까지 올라온 것이 처음이라는데 제법 잘 따라온다. 쇠파이프 잡고 기신기신 오르는 사람이 많은데 힘 든 기색 없이 잘도 올라 1시 19분 복숭아탕 전망대에 올랐다. 마침 데크 위에 헬리콥터로 실어 나른 목재 뭉치 셋이 있어 그 위에 올라가 인물 걸고 탕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대승령을 향해 오르는 사람은 우리 부부 뿐이다. 산새 소리를 오롯이 즐기며 깊은 원시림의 맛을 간직한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두문폭포 일대까지 내려오는 사람을 30명 정도 만났을 뿐이다. 밑둥에 한 사람 들어갈 만한 주목 고사목, 우리 산악회 회원들도 많이 기억할 것이다. 그곳에 이르니 오후 2시 12분이었다.
둘이 사진 찍고 있는데 늙수그레한 중년이 찍어드릴까요 한다. 그러더니 아예 카메라를 45도쯤 기울여 셔터를 누른다. 이렇게 촬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게 멋진 사진이 나왔다.
이제 오른쪽으로 안산을 바라보며 죽자고 오르는 길이다. 내심 시간에 쫓기는 내가 줄달음을 치니까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나 갈 때까지 기둘려. 이건 뭐 극기훈련하자는 건가!”
아차 싶었다. 멈췄더니 그래도 곧바로 따라왔다. 아내는 “정말로 이쪽으로 하산하는 분들은 없네”라고 말한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3시가 다 됐다. 난 “이 시간에 여길 통과하지 못하면 오후 6시가 넘어야 십이선녀탕 입구에 이를 거야. 그러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니까”라고 답했다.
600m쯤 내처 오르막을 오르니 이제 안산 방향으로 능선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삼거리가 나왔다. 캔맥주 하나를 나눠 마셨다. 아내는 기본적으로 나와 100m 간격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5분 정도 쉬었다가 출발해 800m 내려가니 안산 갈림길이 나온다. 2032년 말까지 막고 그 다음해 개방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옆으로 사람들이 들어갔는지 오롯한 우회로가 유혹한다. 그 때면 내 나이 칠순이 가까워지는데 망설임이 시작됐다. 혼자였다면 슬쩍 들어가봤을 것이다. 사실 이번 3주 연속 서북능선 행은 서울 지하철 2호선 뚝섬역의 장쾌한 사진 촬영 포인트를 찾기 위한 것이었는데 안산 쪽을 올라 기어이 그 포인트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능선에 먼저 올라 양쪽을 살펴본 결과 이 각도는 아니다 싶은 결론을 얻었다. 아내로부터 불호령 들을 것도 뻔해 먼저 대승령 쪽으로 앞장선 아내를 뒤밟았다.
대승령은 정말 볼품 없다. 오는 길에 간간이 보니 내설악 계곡과 서북 주능선 주위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다. 예보대로 날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고생과 환희의 교차점 표지판은 2주 연속 본다. 고통과 고생을 애써 구분지은 의도는 뭘까, 새삼 궁금해졌다.
이제 진짜 고민이 시작된다. 5시 15분 버스를 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까? 아예 포기하고 토요일 아마도 증편됐을 마지막 버스 7시 15분을 타겠다고 느긋하게 하산해야 하는 편을 택할까? 남은 거리는 2.7㎞, 오색 하산 길보다는 낫지만 4시에 출발해 한 시간 15분 만에 하산이 가능할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힘만 쏟고 버스를 놓쳐 2시간을 장수대 휴게소에서 보내는 게 나을까? 확실히 7시 15분 버스가 있는 것일까,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아내가 하산에 약한데 잘 따라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평소 스타일대로 난 먼저 휑하니 내려가 버린다. 급경사 내리막은 700m쯤 이어져 옛날 무슨 절터에 이르는데 초심자들은 무릎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것 같은 길이다. 중간에 한 번 아내의 짜증 섞인 탄식과 함께 “함께 가자”는 애원이 하달(?)된다. 이제 2㎞가 남았다. 그래도 데크도 간간이 나오고 길도 편해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대승폭포는 일주일 전만 해도 물이 졸졸 흘러내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들어서지도 못하고 발길을 이어갔다. 아내는 조금 쉬었으면 하는 눈치인데 버스 놓치면 두 시간을 막막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내 말에 따라줬다.
이어 데크와 전망대가 두 곳 나오는데, 난 두 해인가, 가을에 단풍 구경 와 이곳까지 함께 올라온 기억이 나는데 아내는 한사코 모르겠다고 했다. 두 번째 전망대는 고사목이 펼쳐지고 건너편 점봉산 주걱봉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더니 장수대 탐방센터 문을 5시 14분 나설 수 있었다. 원래 버스 시간에 1분 먼저 내려온 것이었다. 오전 10시 50분 남교리 정류장에서 이곳까지 6시간 24분 걸린 셈이었다. 산행 코스만 11.3㎞인데 남교리 정류장까지 더하면 조금 늘어날 것이다. 아내도 참 대단하다.
버스 정류장에 두 분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클 단체가 마지막 다운힐을 앞두고 쉬면서 먹을 거리를 챙겨 먹고 있었는데 30여명이 여간 시끄럽지 않다. 10분을 기다렸는데 사이클족들이 떠나도 버스가 오지 않자 네 사람 모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난 자신 있게 조금 늦어질 뿐 반드시 옵니다, 했는데 아내를 포함해 셋은 믿음이 가지 않는 눈치였다. 한 어르신이 버스 회사 연락처를 확인해 내게 전화를 해보라고 보여줘 입력을 끝내고 연결음이 들려올 때 버스가 굽이를 막 돌아 얼굴을 내밀었다. 넷 모두 안도하는 기색이다. 5시 40분이었다.
아내는 참 다행이라고 했다. 버스 안에서 남은 캔맥주 하나에 옥수수 반쪽을 먹고 원통, 인제, 홍천 두촌 휴게소 들러 고속도로 들어서니, 웬걸 오전과 달리 뻥뻥 뚫린다. 8시 3분에 우리를 동서울터미널 주차장에 내려줬다. 아내와 평소 잘 가는 건대입구 도삭면 집에 오랜만에 가기로 했다.
다음은 7일 자 서울신문 오피니언 면 길섶 란에 실린 내용이다. 그날 도삭면 집에서 느꼈던 소회다.
밥 사 먹는 데도 이웃이 중요하다.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생일잔치를 하고 있었다. 손뼉을 마주 치며 노래도 부르고 깔깔 웃어 댄다. 그래, 간만에 좋은 친구들 만나 흥겨운가 보다.
그런데 도무지 흥이 줄어들지 않는다. 아예 이웃을 신경쓰지 않는다. 나중에는 먹거리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아내는 티 안 나게 눈치를 준다. 나도 몇 차례 흘겨봤다. 소용없었다.
예전에 한 선배는 점심 장소를 고르는 기준이 무조건 조용한 집이었다. 어느새 나도 그 선배 닮아 간다. 다른 이의 식사를 방해할 정도면 곤란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식당을 나와 버렸다. 그런 식당을 고른 우리 잘못인 듯싶었다.
나중에 어떤 글을 보니 MZ세대는 ‘고객’ 정체성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고 했다. ‘별점 테러’ 같은 일 말이다. 적어도 이런 행태가 이 세대에 도드라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임병선 논설위원
첫댓글 잘 봤네. 부럽기도 하고. 이번 주말엔 설악산 안 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