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쟁이
비 갠 3월 오후, 한 뼘 남짓 솟아오른 소리쟁이의 아우성이 대단합니다. 나 홀로 즐겁고 흥겨운 식물.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아직 소리쟁이와 장단을 맞출 식물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홀로 즐거울 수밖에. 아니라고요? 무릎 꿇고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이 식물이 잎을 틔워 계절을 재촉할 즈음 뭇 식물은 그제야 기지개를 켭니다. 이른 봄엔 시간의 변화를 알리고, 한여름엔 곤충의 보금자리로, 가을엔 영근 씨앗을 터뜨려 교향악을 연주하는 저 놀라운 능력! 한 시대를 풍미하는 소리꾼이 부럽지 않습니다.
소리쟁이는 조금 억울한(?) 식물입니다. 봄의 첫 문을 여는 선구자의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고, 힘겨운 노동에 지친 투박한 아낙네를 떠올리게 하니까요.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휘날리고 치맛자락은 흙물에 찌든, 영락없는 농투성이 모습입니다. 소리쟁이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온갖 잡동사니가 뒤엉켜 썩어가는 토양, 부영양화가 완벽하게 진행되는 흙에 씨를 퍼뜨려 뿌리를 내린 탓입니다. 퇴비화 된 토양에 뿌리를 내리니 키는 훌쩍 자라고, 뿌리는 깊고 단단하게 박힙니다. 사람의 눈엔 우악스럽게 비칠 수밖에. 겉모습이 이러니 자랄수록 사람의 눈에서 멀어집니다.
과거는 어땠을까요. 이 식물은 한때 가장 완벽한 채소이자 약초였습니다. 지금은 밥상에 오르는 일이 뜸하지만 조선 말까지는 채소밭의 주인 노릇을 도맡아 할 정도로 친숙한 식물이었습니다. 동의보감과 산림 경제, 향약집성방엔 소리쟁이의 맛과 효능이 자세히 언급됐고, 민간에서는 식재료와 약재로 귀하게 대접했지요. 끓는 물에 데쳐 신맛을 제거한 뒤 간장 된장에 무치거나 국을 끓이면 한 끼 반찬으로 제 몫을 다 했습니다. 장아찌와 김치 재료로 쓰였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약재로서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초산과 타닌 성분을 함유한 소리쟁이는 항염 항균 항암제로 널리 쓰였으며 특히 위 관련 질환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아토피 등 피부질환과 탈모 예방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역 맛이 나는 잎은 변비를 자연스럽게 낫게 하는 효능을 지녔고, 잎과 뿌리를 찧어 바르면 상처 부위의 통증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잇몸 질환이 심한 사람은 말린 소리쟁이 잎을 달여 양치와 가글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양제근으로 불리는 뿌리는 8~9월에 채취, 말려서 사용합니다. 만병통치에 가까운 효능을 지녔지만 신맛이 강해 적당량을 섭취해야 합니다.
강병로 brkang@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