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찾아서
이기원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 하루도 이상 없이 잘 보냈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이마에 손을 대고 열을 혹시 나지가 않은지 자가 촉진을 해본다. 체온이 정상인가 보다. 또 한 번 마음이 놓인다. 오늘도 활동을 하면서 별일이 없어야지 하는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을 한다. 실버들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거의가 중지가 되니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된다. 가끔은 함께 가까운 조그만 동산의 산책로를 따라서 산책을 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인 것 같다. 난 색소폰 연습을 위해 매일 집을 나선다.
오늘은 몇 분이나 참석하실까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면서 연습 장소로 행한다. 어떤 날은 십여 명 어느 날은 육칠 명 정도 나오신다. 걱정이 되어 두어 달 째 참석을 안 하시는 회원도 있다. 자기의 건강을 챙기는데 무어라 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 아니 하지를 못한다. 억지로 나오라 했다가 감염이 되면 그 책임을 질 수가 없지 않는가?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는가 모두들 걱정을 한다. 친지도 만나기 힘들고 친구도 만나기 힘들다. 그러니 때로는 나 홀로 연습실에 있을 때가 마음이 편하다.
집에만 있으면 체온을 체크할 일이 없다. 그러나 내 체온이 정상일까 하는 걱정도 된다. 다행이 실외 활동을 하거나 어느 시설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체온을 잰다. 내 체온을 알 수가 있어서 궁금증이 해소가 된다. 정상 이라고 하면 마음이 편하다. 사실 체온을 재기 직전에는 수치가 높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으로 초조했었다. 어제는 모처럼 눈이 내려 어린 시절의 동화속의 설국을 생각하며 산을 찾아가 즐기는 사람도 많았던 같다. 지인이 설경을 찍어 카톡에 올리니 소녀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설랬다 는 여인도 있었다. 나는 얼른 ‘눈이 내리네’ 라는 악보를 찾아 색소폰 연주를 익혔다. 여러 번 반복을 하여 어느 정도 악보에 맞게 연주가 되었을 때 녹음을 하고 카톡에 올려 답을 보냈다. 회원들은 서로 만나지는 못했어도 이렇게라도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음에 즐거워하였고 각자의 소식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문명의 발전에 기여를 하신 전 세계의 모든 과학자 분들에 대하여 감사함을 표하였다. 사진이나 동영상 또는 음악 파일을 즉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 이런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가까운 사이의 모든 분들의 소식을 몰라 얼마나 답답해했을까.
옛 역사의 한 귀퉁이 에서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에는 돌림병이 돌면 발생한 동네를 모조를 불을 질러 태워버려 원천적으로 나뿐 세균을 박멸하였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분초를 다투는 바이러스 퇴치하는 백신 개발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 모든 연구가 마무리 되고 3차 인체 실험까지 마치고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도 들린다. 어느 나라에서 먼저 확실하고 질 좋고 저렴한 백신을 생산하고 판매를 하느냐 하는 것은 사활을 건 경제적 생존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이제 얼마가지 않아 전 세계 사람들을 불안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는 중국 우한 발 코로나 19도 퇴치되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되면 우리네 삶을 또 다시 즐거움내지는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활짝 열릴 것이다. 이제 우리는 희망을 갖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감염 차단에 최대한 협력하거나 개인 방역에 힘써야 하겠다.
새로운 세상이 다시 열리는 것처럼 반가움에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춥시다. 그리고 ‘論語 衛靈公,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守得之 必失之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의 가르침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발하여 새 정치질서를 바로 잡아 나아가는데 앞장서 나가는 모습을 그리며 밝은 세상이 오기만을 고대해 본다.
降仙臺
이기원
오십여 년 전, 대학 시절 여름 방학이면 청주 지역 대학적십자연합봉사회에서 봉사수련회를 해마다 열었었다. 그 중 한 곳이 양산면 송호리 솔밭이라고 강물이 흐르는 둔치이다. 그 당시는 이 곳 주변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교통 환경이 많이 좋아지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돌아볼 기회를 다시 갖게 되었다. 넓은 솔밭은 국민관광지로 지정이 되면서 건물이 들어서고 개발이 되여 축소가 되었다. 옛 모습을 잃어버려 아쉬움이 있지만 잘 꾸며놓은 텐트 숙영지는 마음에 들었다. 달빛은 비봉산 뒤로 차츰 감추고 비단강 물결 속의 별들은 반짝반짝 사랑을 속삭인다. 젊은 대학 시절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에 봉사하며 살아가는 꿈을 키우기 던 수련회이기도 하였다. 수련회 활동 모습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주변 풍광에 도취되었다.
이곳 사람들이 비단강 이라 부르는 강물은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 중턱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대청댐으로 흘러들어 금강을 거쳐 서해 바다로 이어지는 강물이다. 아마도 맑은 물이 계곡 사이로 굽이굽이 흘러 마치 비단실처럼 깨끗하고 아름답다하여 지은 이름인 것 같다. 비봉산과 봉화산 사이로 흐르는 비단강 주변의 풍경은 절벽과 정자들로 어우러져 그 멋을 더해 ‘야! 아름답다’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나룻배로 어렵사리 이어주던 송호리와 봉곡리, 이제는 교량이 설치되어 쉽게 오갈 수가 있다.
다리를 건너 봉곡리로 들어서니 송호리에서 바라보이던 정자가 있는 곳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정자의 이름은 강선대, 양산8경중 2경인 이곳은 신선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다 선녀인 모녀가 지상을 내려다보니 맑고 깨끗한 강물에 비친 낙락장송과 석대가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또한, 한 나룻배 사공이 한가히 배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예쁜 선녀가 석대로 내려와 하늘거리는 선녀 옷을 짜는 모습을 꾸었다 하여 강선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자를 지었다는 구전도 있다. 강가에 우뚝 솟은 석대위에 오롯이 자리한 강선대는 육각정자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세월의 변화무쌍한 모진풍파를 이겨내고 자란 노송들과 잘 어우러져 그 우아하고 고상한 멋을 뽐내며 풍류객을 기다리고 있다. 강선대 정자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금방 유학자 이거나 풍류객이 된 기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자에서 어찌 그냥 돌아서 나올 수 있으랴. 막걸리 한 잔 쭈욱 걸치고 시 한 구절 읊고 세월을 낚는 사람들을 풍류객이라 할까? 여유를 누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조선 중기 학자 이안눌의 한시를 소개하고 장단이 잘 어우러진 칠언절구는 아니지만 나의 즉흥시 지어 본다.
“江頭誰唱美人詞 正是孤舟月落時 惆悵戀君無限意 世間唯女郞
(강가에 누가 사미인곡을 부르고 바로 지금 외로운 배에 달이 질 무렵 슬프도다 임금을 그리는 무한한 정을 세상에서 아는 이는 오직 여인네 뿐이다) -東岳集 續集-
봉황새 나는 모습 맑은 강물에 비치고
송호 봉곡 수두사람 모두 나와 국태민안의 기원 봉화를 올리니
신선도 덩달아 춤을 추며 비단강가 내려와 풍년가 부르네
물속에 비친 낙락장송 옛 선현 가르침 들려주네
맑은 공기와 깨끗한 강물,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살아가는 이 곳 주민들의 생활은 여유로운 풍류가 있어 보인다. 표정이 밝고 깨끗하다. 이따금 트랙터 소리 들리며 모내기 끝낸 논가에 물고 보러 다니는 달달달 거리는 오토바이 소리 또한 경쾌하다. 강선대 비치는 물가에 앉아 피라미, 갈라리, 꺽지 등 작은 물고기 잡아 어죽 끓여 천렵을 즐기는 이 기분은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풍악을 울리니 이 또한 풍류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네, 아름다운 산수에 어우러진 이 한 몸 덩달아 발걸음 가볍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품기여 살고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