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곤혹스러운 직업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했을 때입니다. 슬픔을 떠나 죽음마저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간을 보내다보면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회의감마저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 유명인의 죽음을 보도해야 하는 상황은 시장판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다매체와 연예인의 죽음이라는 조합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례식은 물론이고 조문객 한명 한명의 모습까지도 실시간 중계하듯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인쇄매체를 통해 죽음을 알리던 기자들은 요즘과는 다소 환경이 달랐습니다. 사건사고의 경우 사망자 신원과 주소, 사진을 확보하는 일이 최대의 과제였습니다. 특히 사진을 확보하지 않으면 자사의 신문에 게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경쟁은 상상이상이었습니다.
신발을 벗지도 못한채 유족의 집에 들어가 해묵은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경쟁매체가 고인의 사진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앨범을 통째로 빼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더욱 문제였던 것은 이 사진들을 사용한 뒤에는 정작 나중에 돌려주지 않아 유족에게 항의받는 일도 꽤 있었다는 것입니다.
WBC야구 한일전 때문에 속끓이고 있다가 '꽃보다 남자'의 출연자인 장자연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7일 저녁 7시 42분 친언니가 고인을 발견했다고 알려졌지만 자정이 되기까지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들은 혼선에 혼선을 거듭했습니다.
검시가 이루어진 분당 차병원 측은 자신들은 관련이 없으며 빈소로 강남 삼성의료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앰브런스를 현장에 출동시켰지만 빈소가 확정되지 않아 빈차로 돌아왔다는 해명까지 늘어놓았습니다. 결국 분당 차병원에서 검시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후 오랜 기다림 끝에 운구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때까지도 빈소가 차려질 장례식장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습니다. 고인을 실은 앰브런스가 분당 차병원을 떠났습니다. 언론사의 차량들이 앰블런스를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앰블런스는 교통신호와 규정속도도 무시한채 교차로를 건너 주말 새벽길을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습니다.
분당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어수선한 가운데 빈소가 꾸려지고 누군가 유족의 뜻을 전했습니다. 취재를 원하지도 않고 장례식장 밖으로 철수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취재진과의 실랑이 끝에 장례식장 앞에 포토라인과 취재공간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부터 기자들에게 남은 것은 조문객의 사진을 누가 더 빨리 인터넷을 통해 마감하느냐였습니다. 기자들이 그렇게도 많이 주말 새벽에 모여 장례식장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비정하게도 '꽃보다 남자'가 현재 방영 중인 인기절정의 드라마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소위 F4의 조문장면 만큼은 꼭 건져야 하는 사진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장례식장의 소란스러움에 놀란 다른 사람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누가 죽은 거예요? 고인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꽃보다 남자'의 악녀 3인방 역할 중 한명이었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무명의 설움 끝에 죽음을 선택한 한 연예인의 장례식에서 유가족이 항의하듯 외친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남은 적이 있습니다. 진작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할 땐 모른 척하다가 왜 죽은 뒤에야 법석을 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까지 뉴스가치에 매달려 생산해야 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침통한 일입니다. 늦은 새벽 분당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네비게이션의 잘못으로 같은 길을 몇번이고 돌고 돌았습니다. '고인이 더 있다가라며 붙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유명인의 죽음에 기자들은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일 것입니다. 치열한 취재경쟁은 슬퍼할 경황마저도 주지 않는 잔인함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자 역시 불청객이 아니라 조문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사 한줄, 사진 한장은 기자들이 고인의 하늘 가는 길에 전하는 조의금 같은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이 가는 길 한복판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다시한번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반성과 후회와...
슬픔과 눈물과...
삶과 죽음과...
그 이상들을...
고 장자연님의 명복을 빕니다.
첫댓글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데 가세요 ^^*
좋은일 마이 햇승께 좋은데 안갈니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