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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상한 소풍길! 고성(古城) 모퉁이에서 만나는 황홀한 가을
2024년 10월 서울학교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미려(美麗)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은 세계적인 걸작인 <수원화성>을 축성하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놀라운 얘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수원화성 서북각루 인근.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수원시
오는 10월, 서울학교(교장 최연. 서울인문지리역사전문가) 제104강은 서울학교의 새 답사코스로 경기도 수원시의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다녀옵니다.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삶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 서울학교 제104강은 제6기 서울학교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11월부터는 서울학교 제7기를 1년간 12강으로 진행하고 마침내 10여 년의 서울학교 강의의 대미를 장식하려고 합니다. 수원화성은 서울학교에서 꼭 진행하고 싶었던 코스였는데 화성학교(교장 김준혁)가 있어서 미뤄왔다가 화성학교가 종강함에 따라 이번 제6기 마지막 강의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서울학교 제104강은 2024년 10월 13일(일요일) 열립니다. 이날 아침 10시까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정문(신풍루) 옆에 모입니다.
-서울 강남역 5번 7번 출구/나라빌딩 앞 정거장/직행 3000번/팔달문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약 1시간 20분 소요)
-서울 잠실역 6번 출구/직행 1007번/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 화성행궁 (약 1시간 10분 소요)
-사당역 4번 출구/직행버스 7000번 또는 7001번 탑승/경기대 후문, 수원박물관 정류장 하차→일반시내 버스 700-2, 7-2, 60번 환승→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수원역(1호선, 분당선)
*4번 출구(노보텔 앞) 수원역 노보텔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11, 13번 탑승→화성행궁, 수원성지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7번 출구(수원역 건너편) 수원역 AK플라자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60, 7-2번 탑승→화성행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주소 :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길 안내
▲수원화성의 가을이 깊어간다.Ⓒ수원시
이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성행궁앞-신풍루-북군영-남군영-집사청-서리청-비장청-좌익문-중양문-봉수당-경룡관-유여택-복내당-장락당-노래당-낙남헌-득중정-서장대-서노대-서이치-서포루-서일치-서북각루-화서문-서북공심돈-북포루-북서포루-북서적대-장안문-북동적대-북동치-북동포루-북수문(화홍문)-동북각루(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동암문-동장대(연무대)-동북공심돈-동북노대-창룡문-동일포루-동일치-동포루-동이치-봉돈-동이포루-동삼치-동남각루-남수문-팔달문
*현지 사정에 따라 코스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0월의 서울학교 답사도Ⓒ서울학교
*코로나19 등 감염병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항상 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 인근.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수원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답사에 대해 들어봅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1789년(정조 13)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건립되었으나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습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 휴양, 능원 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 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 행궁, 북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이고 왕이 능원(陵園)을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현륭원을 방문하면서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는데,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정조 19)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훗날 나이가 들면 세자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습니다. 1793년에는 본인이 장래에 기거할 화성행궁이 있는 수원을 어찌 종3품 도호부사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면서 종2품 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화성(華城)으로 고쳤고 또한 화성 유수가 행궁 정리사를 겸임하게 하여 화성행궁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1795년(정조 19)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렀는데 그때 각 전각의 이름을 고치고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1796년까지 총 576칸 규모로 확장하여 비로소 행궁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다.Ⓒ수원시
정조가 마지막으로 행차한 것이 1800년 1월인데, 같은 해 8월에 정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죽기 전까지도 화성행궁을 자주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던 정조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조 사망 직후인 1801년(순조 1)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고 이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임금들이 화성행궁에 행차하였습니다. 1895년에는 한성부에 있던 경기도 관찰부가 화성행궁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 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
삽상한 소풍길! 고성(古城) 모퉁이에서 만나는 황홀한 가을
2024년 10월 서울학교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미려(美麗)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은 세계적인 걸작인 <수원화성>을 축성하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놀라운 얘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수원화성 서북각루 인근.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수원시
오는 10월, 서울학교(교장 최연. 서울인문지리역사전문가) 제104강은 서울학교의 새 답사코스로 경기도 수원시의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다녀옵니다.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삶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 서울학교 제104강은 제6기 서울학교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11월부터는 서울학교 제7기를 1년간 12강으로 진행하고 마침내 10여 년의 서울학교 강의의 대미를 장식하려고 합니다. 수원화성은 서울학교에서 꼭 진행하고 싶었던 코스였는데 화성학교(교장 김준혁)가 있어서 미뤄왔다가 화성학교가 종강함에 따라 이번 제6기 마지막 강의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서울학교 제104강은 2024년 10월 13일(일요일) 열립니다. 이날 아침 10시까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정문(신풍루) 옆에 모입니다.
-서울 강남역 5번 7번 출구/나라빌딩 앞 정거장/직행 3000번/팔달문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약 1시간 20분 소요)
-서울 잠실역 6번 출구/직행 1007번/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 화성행궁 (약 1시간 10분 소요)
-사당역 4번 출구/직행버스 7000번 또는 7001번 탑승/경기대 후문, 수원박물관 정류장 하차→일반시내 버스 700-2, 7-2, 60번 환승→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수원역(1호선, 분당선)
*4번 출구(노보텔 앞) 수원역 노보텔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11, 13번 탑승→화성행궁, 수원성지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7번 출구(수원역 건너편) 수원역 AK플라자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60, 7-2번 탑승→화성행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주소 :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길 안내
▲수원화성의 가을이 깊어간다.Ⓒ수원시
이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성행궁앞-신풍루-북군영-남군영-집사청-서리청-비장청-좌익문-중양문-봉수당-경룡관-유여택-복내당-장락당-노래당-낙남헌-득중정-서장대-서노대-서이치-서포루-서일치-서북각루-화서문-서북공심돈-북포루-북서포루-북서적대-장안문-북동적대-북동치-북동포루-북수문(화홍문)-동북각루(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동암문-동장대(연무대)-동북공심돈-동북노대-창룡문-동일포루-동일치-동포루-동이치-봉돈-동이포루-동삼치-동남각루-남수문-팔달문
*현지 사정에 따라 코스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0월의 서울학교 답사도Ⓒ서울학교
*코로나19 등 감염병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항상 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 인근.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수원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답사에 대해 들어봅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1789년(정조 13)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건립되었으나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습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 휴양, 능원 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 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 행궁, 북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이고 왕이 능원(陵園)을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현륭원을 방문하면서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는데,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정조 19)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훗날 나이가 들면 세자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습니다. 1793년에는 본인이 장래에 기거할 화성행궁이 있는 수원을 어찌 종3품 도호부사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면서 종2품 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화성(華城)으로 고쳤고 또한 화성 유수가 행궁 정리사를 겸임하게 하여 화성행궁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1795년(정조 19)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렀는데 그때 각 전각의 이름을 고치고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1796년까지 총 576칸 규모로 확장하여 비로소 행궁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다.Ⓒ수원시
정조가 마지막으로 행차한 것이 1800년 1월인데, 같은 해 8월에 정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죽기 전까지도 화성행궁을 자주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던 정조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조 사망 직후인 1801년(순조 1)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고 이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임금들이 화성행궁에 행차하였습니다. 1895년에는 한성부에 있던 경기도 관찰부가 화성행궁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 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
삽상한 소풍길! 고성(古城) 모퉁이에서 만나는 황홀한 가을
2024년 10월 서울학교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미려(美麗)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은 세계적인 걸작인 <수원화성>을 축성하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놀라운 얘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수원화성 서북각루 인근.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수원시
오는 10월, 서울학교(교장 최연. 서울인문지리역사전문가) 제104강은 서울학교의 새 답사코스로 경기도 수원시의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다녀옵니다.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삶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 서울학교 제104강은 제6기 서울학교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11월부터는 서울학교 제7기를 1년간 12강으로 진행하고 마침내 10여 년의 서울학교 강의의 대미를 장식하려고 합니다. 수원화성은 서울학교에서 꼭 진행하고 싶었던 코스였는데 화성학교(교장 김준혁)가 있어서 미뤄왔다가 화성학교가 종강함에 따라 이번 제6기 마지막 강의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서울학교 제104강은 2024년 10월 13일(일요일) 열립니다. 이날 아침 10시까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정문(신풍루) 옆에 모입니다.
-서울 강남역 5번 7번 출구/나라빌딩 앞 정거장/직행 3000번/팔달문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약 1시간 20분 소요)
-서울 잠실역 6번 출구/직행 1007번/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 화성행궁 (약 1시간 10분 소요)
-사당역 4번 출구/직행버스 7000번 또는 7001번 탑승/경기대 후문, 수원박물관 정류장 하차→일반시내 버스 700-2, 7-2, 60번 환승→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수원역(1호선, 분당선)
*4번 출구(노보텔 앞) 수원역 노보텔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11, 13번 탑승→화성행궁, 수원성지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7번 출구(수원역 건너편) 수원역 AK플라자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60, 7-2번 탑승→화성행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주소 :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길 안내
▲수원화성의 가을이 깊어간다.Ⓒ수원시
이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성행궁앞-신풍루-북군영-남군영-집사청-서리청-비장청-좌익문-중양문-봉수당-경룡관-유여택-복내당-장락당-노래당-낙남헌-득중정-서장대-서노대-서이치-서포루-서일치-서북각루-화서문-서북공심돈-북포루-북서포루-북서적대-장안문-북동적대-북동치-북동포루-북수문(화홍문)-동북각루(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동암문-동장대(연무대)-동북공심돈-동북노대-창룡문-동일포루-동일치-동포루-동이치-봉돈-동이포루-동삼치-동남각루-남수문-팔달문
*현지 사정에 따라 코스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0월의 서울학교 답사도Ⓒ서울학교
*코로나19 등 감염병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항상 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 인근.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수원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답사에 대해 들어봅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1789년(정조 13)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건립되었으나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습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 휴양, 능원 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 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 행궁, 북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이고 왕이 능원(陵園)을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현륭원을 방문하면서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는데,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정조 19)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훗날 나이가 들면 세자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습니다. 1793년에는 본인이 장래에 기거할 화성행궁이 있는 수원을 어찌 종3품 도호부사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면서 종2품 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화성(華城)으로 고쳤고 또한 화성 유수가 행궁 정리사를 겸임하게 하여 화성행궁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1795년(정조 19)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렀는데 그때 각 전각의 이름을 고치고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1796년까지 총 576칸 규모로 확장하여 비로소 행궁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다.Ⓒ수원시
정조가 마지막으로 행차한 것이 1800년 1월인데, 같은 해 8월에 정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죽기 전까지도 화성행궁을 자주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던 정조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조 사망 직후인 1801년(순조 1)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고 이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임금들이 화성행궁에 행차하였습니다. 1895년에는 한성부에 있던 경기도 관찰부가 화성행궁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 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
삽상한 소풍길! 고성(古城) 모퉁이에서 만나는 황홀한 가을
2024년 10월 서울학교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미려(美麗)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은 세계적인 걸작인 <수원화성>을 축성하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놀라운 얘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수원화성 서북각루 인근.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수원시
오는 10월, 서울학교(교장 최연. 서울인문지리역사전문가) 제104강은 서울학교의 새 답사코스로 경기도 수원시의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다녀옵니다.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삶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 서울학교 제104강은 제6기 서울학교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11월부터는 서울학교 제7기를 1년간 12강으로 진행하고 마침내 10여 년의 서울학교 강의의 대미를 장식하려고 합니다. 수원화성은 서울학교에서 꼭 진행하고 싶었던 코스였는데 화성학교(교장 김준혁)가 있어서 미뤄왔다가 화성학교가 종강함에 따라 이번 제6기 마지막 강의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서울학교 제104강은 2024년 10월 13일(일요일) 열립니다. 이날 아침 10시까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정문(신풍루) 옆에 모입니다.
-서울 강남역 5번 7번 출구/나라빌딩 앞 정거장/직행 3000번/팔달문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약 1시간 20분 소요)
-서울 잠실역 6번 출구/직행 1007번/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 화성행궁 (약 1시간 10분 소요)
-사당역 4번 출구/직행버스 7000번 또는 7001번 탑승/경기대 후문, 수원박물관 정류장 하차→일반시내 버스 700-2, 7-2, 60번 환승→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수원역(1호선, 분당선)
*4번 출구(노보텔 앞) 수원역 노보텔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11, 13번 탑승→화성행궁, 수원성지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7번 출구(수원역 건너편) 수원역 AK플라자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60, 7-2번 탑승→화성행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주소 :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길 안내
▲수원화성의 가을이 깊어간다.Ⓒ수원시
이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성행궁앞-신풍루-북군영-남군영-집사청-서리청-비장청-좌익문-중양문-봉수당-경룡관-유여택-복내당-장락당-노래당-낙남헌-득중정-서장대-서노대-서이치-서포루-서일치-서북각루-화서문-서북공심돈-북포루-북서포루-북서적대-장안문-북동적대-북동치-북동포루-북수문(화홍문)-동북각루(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동암문-동장대(연무대)-동북공심돈-동북노대-창룡문-동일포루-동일치-동포루-동이치-봉돈-동이포루-동삼치-동남각루-남수문-팔달문
*현지 사정에 따라 코스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0월의 서울학교 답사도Ⓒ서울학교
*코로나19 등 감염병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항상 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 인근.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수원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답사에 대해 들어봅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1789년(정조 13)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건립되었으나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습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 휴양, 능원 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 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 행궁, 북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이고 왕이 능원(陵園)을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현륭원을 방문하면서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는데,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정조 19)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훗날 나이가 들면 세자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습니다. 1793년에는 본인이 장래에 기거할 화성행궁이 있는 수원을 어찌 종3품 도호부사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면서 종2품 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화성(華城)으로 고쳤고 또한 화성 유수가 행궁 정리사를 겸임하게 하여 화성행궁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1795년(정조 19)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렀는데 그때 각 전각의 이름을 고치고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1796년까지 총 576칸 규모로 확장하여 비로소 행궁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다.Ⓒ수원시
정조가 마지막으로 행차한 것이 1800년 1월인데, 같은 해 8월에 정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죽기 전까지도 화성행궁을 자주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던 정조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조 사망 직후인 1801년(순조 1)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고 이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임금들이 화성행궁에 행차하였습니다. 1895년에는 한성부에 있던 경기도 관찰부가 화성행궁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 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
삽상한 소풍길! 고성(古城) 모퉁이에서 만나는 황홀한 가을
2024년 10월 서울학교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미려(美麗)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은 세계적인 걸작인 <수원화성>을 축성하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놀라운 얘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수원화성 서북각루 인근.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수원시
오는 10월, 서울학교(교장 최연. 서울인문지리역사전문가) 제104강은 서울학교의 새 답사코스로 경기도 수원시의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다녀옵니다. 깊고도 아늑한 가을 정취에 취하면서 걸어보는 한나절 고성(古城)의 소풍길은 삶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 서울학교 제104강은 제6기 서울학교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11월부터는 서울학교 제7기를 1년간 12강으로 진행하고 마침내 10여 년의 서울학교 강의의 대미를 장식하려고 합니다. 수원화성은 서울학교에서 꼭 진행하고 싶었던 코스였는데 화성학교(교장 김준혁)가 있어서 미뤄왔다가 화성학교가 종강함에 따라 이번 제6기 마지막 강의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서울학교 제104강은 2024년 10월 13일(일요일) 열립니다. 이날 아침 10시까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정문(신풍루) 옆에 모입니다.
-서울 강남역 5번 7번 출구/나라빌딩 앞 정거장/직행 3000번/팔달문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약 1시간 20분 소요)
-서울 잠실역 6번 출구/직행 1007번/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 화성행궁 (약 1시간 10분 소요)
-사당역 4번 출구/직행버스 7000번 또는 7001번 탑승/경기대 후문, 수원박물관 정류장 하차→일반시내 버스 700-2, 7-2, 60번 환승→화성행궁, 여민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수원역(1호선, 분당선)
*4번 출구(노보텔 앞) 수원역 노보텔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11, 13번 탑승→화성행궁, 수원성지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7번 출구(수원역 건너편) 수원역 AK플라자 정류장 일반시내버스 60, 7-2번 탑승→화성행궁 정류장 하차→도보 약 5분 이동→화성행궁
-주소 :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길 안내
▲수원화성의 가을이 깊어간다.Ⓒ수원시
이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성행궁앞-신풍루-북군영-남군영-집사청-서리청-비장청-좌익문-중양문-봉수당-경룡관-유여택-복내당-장락당-노래당-낙남헌-득중정-서장대-서노대-서이치-서포루-서일치-서북각루-화서문-서북공심돈-북포루-북서포루-북서적대-장안문-북동적대-북동치-북동포루-북수문(화홍문)-동북각루(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동암문-동장대(연무대)-동북공심돈-동북노대-창룡문-동일포루-동일치-동포루-동이치-봉돈-동이포루-동삼치-동남각루-남수문-팔달문
*현지 사정에 따라 코스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0월의 서울학교 답사도Ⓒ서울학교
*코로나19 등 감염병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항상 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 인근.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수원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답사에 대해 들어봅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1789년(정조 13)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건립되었으나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습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 휴양, 능원 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 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 행궁, 북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이고 왕이 능원(陵園)을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현륭원을 방문하면서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는데,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정조 19)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훗날 나이가 들면 세자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습니다. 1793년에는 본인이 장래에 기거할 화성행궁이 있는 수원을 어찌 종3품 도호부사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면서 종2품 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화성(華城)으로 고쳤고 또한 화성 유수가 행궁 정리사를 겸임하게 하여 화성행궁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1795년(정조 19)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렀는데 그때 각 전각의 이름을 고치고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1796년까지 총 576칸 규모로 확장하여 비로소 행궁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다.Ⓒ수원시
정조가 마지막으로 행차한 것이 1800년 1월인데, 같은 해 8월에 정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죽기 전까지도 화성행궁을 자주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려고 했던 정조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조 사망 직후인 1801년(순조 1)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고 이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임금들이 화성행궁에 행차하였습니다. 1895년에는 한성부에 있던 경기도 관찰부가 화성행궁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 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