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국시리즈는 해태가 4승1패로 삼성을 따돌리고 우승했지만 해태 선수단 버스가 대구의 일부 과격팬들에 의해 전소되는 초유의 사건으로 얼룩졌다.그 중심에 삼성 투수 진동한(당시 26세)이 있었다.10월 19일 광주에서 열린 1차전에서 호투하던 진동한이 해태 팬이 휘두른 빈병에 맞아 교체된 뒤역전패를 당한 게 난동 촉발의 빌미가 됐다.
진동한은 15년전 상황을 묻자 “끔찍해서 별로 기억하기 싫은 과거”라며 선뜻 말문을 열지 않았다.서울 장충고감독으로 있다가 요즘 쉬고 있는 그는 “나중에 방화범이 내 친구였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무척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 소주병 피격
진동한은 1차전에서 0-0이던 2회 2사 1·3루에서 구원등판해 7회까지 3안타무실점의 호투로 승리를 눈 앞에 뒀다.스코어 2-0.사단은 7회 피칭이 끝나고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벌어졌다.진동한이 덕아웃 위 찢어진 그물에서 튀어나온 소주병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다행스럽게 다치지는 않았다.
한편 김영덕 감독은 그 사건과 관계없이 8회부터 에이스 김시진을 마무리로투입할 작정이었다.이미 몸까지 풀어놓은 상태였다.소주병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런 교체였다.뒤에 나온 김시진이 그대로 마무리지었다면 아무런 문제가없었다.그런데 동점을 내줘 연장에 몰린 김시진은 결국 연장 10회 4-3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 화근이 된 삼성 김영덕 감독의 인터뷰
경기가 끝난 뒤 왜 잘 던지던 투수를 바꿨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김감독은 부상 때문이라고 밝혔다.당시 진동한은 덕아웃 뒤편에서 잠시 누워있기는 했지만 못 던질 정도는 아니었다.본인 역시 “못던지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김감독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파문을 몰고왔다.
■ 과격팬들의 방화
내막을 알 리 없는 대구 팬들은 김 감독의 인터뷰를 접하고 격분했다.1차전패배가 소주병 피격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관중들은 3차전도 6-5로 역전패하자 빈병을 던지며 난동을 벌였다.이어 흥분한 수백명의 과격팬들은 구장 바깥에 세워둔 해태 선수단 버스에 불을 질렀다.
■ 기억하기 싫은 악몽
진동한은 이후 자신 이름이 계속해서 거론되는 데다 경북고 동기생 친구들이방화를 주도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가시방석이었다.이후 그 때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흔들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