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넬슨 제독

19세기 세계 최강 영국 해군을 창건한 호레이쇼 넬슨(사진) 제독은 전투에서 눈을 잃고 오른팔을 잘리면서도 불굴의 투혼과 끈질긴 군인정신을 발휘했다. 또 영국 해군의 행동 기준과 전통을 최초로 확립함으로써 국민적 영웅으로 각인됐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기동성 극대화와 화력 집중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이렇듯 넬슨은 전 세계 해군 장병들에게 한국의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위대한 인물의 상징이자 19~21세기 가장 존경받는 해군 제독 중의 한 사람이다.
“잉글랜드인들이여, 그대들의 의무를 기대한다. 각자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 이 말은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르 해전시 부하 장병들을 독려하기 위해 깃발에 적어 항해장에게 올리게 한 문구다. 한마디로 부하를 신뢰하고 믿으니 마음껏 제 기량을 발휘해 보라는 것으로 어떠한 명령도 이보다 더한 권위를 갖기는 힘들 것 같다.
결국 이 전투에서 넬슨은 27척의 배로 33척의 적함을 상대로 무려 19척을 격침했으며 영국군은 단 한 척만을 잃는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넬슨 제독은 이 전투에서 프랑스 저격수가 쏜 총탄에 맞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지면서 “나는 스무 살 때의 약속을 지켰다. 나의 의무를 다했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는데 이는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20년 동안 유럽을 장악해 간 천하무적 나폴레옹 군대가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린 곳은 잉글랜드였다. 나폴레옹은 스페인과 손잡고 함대와 병력을 카디스 80㎞ 동쪽 트라팔가르 곶으로 집결시키면서 전의를 고취했으나 이에 맞서 싸우는 영국의 넬슨 제독은 이전까지의 전술과 다르게 중앙 돌파로 적의 함대를 둘로 갈라 놓고 90도 선회해 적의 선열을 끊는 신 전법을 구사, 적함 19척을 격침해 나폴레옹을 무릎 꿇리고 승리를 쟁취했다.
종전의 해전이 군함들끼리 서로 전면전을 통한 힘의 세기를 겨루는 것이었다면 넬슨 제독은 적진으로 치고 들어가 상대의 힘을 둘로 나눈 뒤 각개 격파하는 신 전법을 구사했다. 이처럼 넬슨은 최악의 조건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천부적 지도력을 가진 위대한 군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트라팔가르 해전의 영웅 넬슨의 위대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 넬슨 제독의 국가와 민족을 위한 헌신적인 투혼을 꼽을 수 있다. 20세에 영국 해군 역사상 최연소로 프리깃함 함장으로 기용돼 1794년 코르시카 칼비 지역 상륙 작전시 오른쪽 눈을 실명했지만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1797년 캐너리 섬 점령 작전에서 오른팔을 잘리면서도 투혼을 발휘했고, 빈세트 봉을 점령하는 데도 결정적 공헌을 했다. 또 해전 사상 전에 없이 치열했던 것으로 유명한 덴마크 해군과의 코펜하겐 해전에서도 넬슨은 치밀한 작전 계획과 과감성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둘째, 휘하 장병들을 “형제들”이라고 호칭해 가족과 같은 분위기 조성으로 인화단결에 힘썼으며 솔선수범해 부하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고취하고 정신 무장을 강화시켜 영국군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영국군 병사들은 신병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많은 지휘관들의 헌신적인 지도 아래 일치단결, 전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셋째, 상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술을 구사했다.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종전처럼 군함들끼리 전면전을 통한 힘의 세기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측면 공격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혁신적인 전술을 구사했다. 이와 같은 그의 전략·전술은 미 해군 제독 앨프리드 타야마한에게 전해져 새로운 해군 전투 이론 개발의 기초를 제공했다. 트라팔가르 해전 후 영국은 100년간 세계 바다를 지배하면서 해양 강국의 명성을 누렸다.
넷째, 상하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투 의지 고양, 전투 능력을 극대화했다. 트라팔가르 해전 직전 “여왕을 위해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달라”는 메시지, 또 항해장을 통해 깃발에 “그대들을 믿으니 각자 맡은 바 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달라”는 당부 등 일방적인 명령조가 아닌 상황을 설명해 적극적인 동참과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으로 전력을 극대화했다.
넬슨은 전선을 뚫고 화력을 집중시키며 기동성을 극대화하는 해군 전략·전술의 달인으로 최악의 조건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며 수병과 장교들, 그리고 무기와 함선들을 하나의 응집력으로 일치단결시키는 천부적 지도력을 가진 위대한 군인이었다. 그와 같이 해상에서 부하들을 완벽히 통솔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병사들은 그의 친구이자 협조자였으며 넬슨은 그들의 무조건적인 복종보다 참여의식 제고를 통한 진정한 충성심을 기대했다.
넬슨과 이순신은 유사한 점이 많다. 다 같이 해군으로 인화단결을 중요시했고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임전무퇴의 투혼을 발휘, 끝까지 항쟁해 승리를 쟁취했다. 또 이순신은 학익진 전법을, 넬슨은 중앙 돌파 후 90도 회전으로 적의 선열을 끊는 등의 새로운 전법을 구사했다. 두 사람 공히 전쟁 중 해상에서 명예롭게 숨을 거뒀다. 이순신 장군과 넬슨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해군 장병들에게 추앙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