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랫만에 이어폰으로 성경통독을 하게 된다. 출애굽기를 또다시 읽기로 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25년전 능력사역과 예배갱신에 한참 심취해 있을 때 함께하던 모임의 막내가 감신출신 목사였다. 주로 지방신학교 출신들이 주를 이루던 멤버들 중에서 군계일학과 같은 젊은 목사였다.
몇일전 우연히 유기성목사 8월 일정중에 광주지역 교회에 그 교회가 포함돼 있음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교회를 검색해보니 엄청나게 부흥해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 사람이 무엇을 심든 심는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를 반성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걸었었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흔히 하는말로 내 안에 쓴뿌리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쓴뿌리가 있음에도 부흥시킨 목사들은 수없이 많다.
모세가 바로앞에서 신비한 능력을 행할 때 바로 역시 애굽의 술사들을 동원해 똑같이 대응을 하게 된다. 마귀도 얼마든지 능력을 행한다는 사실이다. 신비한 능력이라고 모두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거주하던 히브리 민족을 400년보다 훨씬 지난 시기에 모세를 부르셨다. 그들이 현실에 안주한 탓이다. 히브리민족이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은 것은 고난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시련의 연단을 거치게 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마귀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지않고 하나님께 속해있기에 시련의 연단이라는 과정이 임하게 된다. 그것이 출애굽기의 교훈이다.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능력이 필요하다고 마귀에게 영혼을 맡기면 타락이다. 다소 느리고 답답해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삼손은 죽기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동행을 원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동행의 사인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