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7. 큐티
창세기 37:29 ~ 36
요셉이 죽은 줄 아는 야곱, 보디발의 집에 팔리는 요셉
관찰 :
1) 요셉이 죽은 줄 알게 되는 야곱
- 29절.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 맏아들 르우벤은 자신이 빌하와의 부정한 관계를 맺은 것이 들통난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르우벤은 요셉이 죽을 위기에서 살려줌으로 아버지 야곱과의 관계 회복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들이 쉬고 있는 동안 양을 치고 돌아와보니 구덩이에 던져 두었던 요셉이 사라졌습니다. 그로 인해서 르우벤은 너무나 비통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당시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러 벌의 옷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양을 치러 먼 길로 나온 목자였던 르우벤은 옷을 찢으면 수선할 길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그 슬픔과 속상함을 가장 거센 방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30절.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 요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우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요셉을 던져두었던 구덩이와 요셉의 형들이 모여 쉬고 있던 곳과는 약간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형들이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용서해주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더 크게 외친 요셉을 연상하게 됩니다. 르우벤은 진정으로 요셉을 살리고자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르우벤의 장자로서의 리더십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 31절.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 요셉의 형들은 단체로 조직적으로 범죄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을 속이는 일에도 함께 공조하고 있습니다. 아까웠겠지만 비싼 채색옷을 찢었습니다.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처럼 위장해야 했기 때문에 너덜너덜하게 찢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셨습니다. 당시에는 짐승의 피와 사람의 피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아버지의 소유인 숫염소 한 마리를 죽여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엄밀히 말하면 절도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서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것을 숫염소의 죽음으로 감춘 것입니다. 죄를 감추는 것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32절.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 요셉의 형들은 뻔뻔하게 숫염소의 피를 흠뻑 적신 찢겨진 채색옷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마치 길에서 그 옷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아버지 야곱에게 가져온 것처럼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확인하라고 악독하게 행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를 속였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 모든 일은 벌어진 것입니다.
- 33절.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 야곱은 그 피 묻고 찢겨진 옷이 요셉의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요셉이 죽었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짐승이 요셉을 잡아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이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아들들이 악한 것이었습니다.
- 34절.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 야곱도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어서 그 묶은 것이 잘 풀리지 않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용변을 볼 때나 잠잘 때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고통스럽게 함으로 이 고통을 품에 안고 지내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부모로서 자녀가 자신보다 먼저 죽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경험일 것입니다.
- 35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 야곱은 누구의 위로도 위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지옥을 경험하는 것처럼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분명히 야곱은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요셉을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죽은 총명한 아들로 인해서 그 슬픔이 울음을 그칠 수 없게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형들 중 누구도 이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야곱도, 요셉의 형들도 요셉의 존재에 대해서는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2) 보디발의 집에 팔리는 요셉
- 36절.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 야곱의 집안에서 요셉이 죽은 것으로 해서 아버지 야곱은 눈물이 그치지 않았고, 요셉의 형들은 양심에 가책이 임했을 것입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구속사적 여정을 걷고 있는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안배입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패턴입니다. 헤브론 골짜기의 야곱 가문과 애굽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일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가르침 :
1) 르우벤은 동생 요셉이 죽는 것에 대해서 불의하다고 여겼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어도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자신이기 때문에 동생들의 죄를 자신이 아버지에게 자백하고자 요셉을 구하려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담은 행동을 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르우벤의 요셉 구출 시도는 실패했고, 르우벤의 장자로서의 리더십은 더 이상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2)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을 속이기 위한 공조를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야곱의 가정은 풀리지 않는 슬픔이 야곱이 요셉을 다시 만나기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얕은 수작으로 미운털 꿈 꾸는 동생 요셉을 제거했지만, 그로 인해서 더 큰 슬픔이 오랫동안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면 하나의 한계에 갇히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3) 야곱의 집에서는 그렇게 엉망진창 슬픔이 겹겹이 쌓이고, 죄악이 쌓였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선하게 인도하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과정에서 요셉은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고 따름으로 형통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의 잣대에 의한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은 형통이었습니다. 헤르본 골짜기와 보디발의 집, 이렇게 두 개의 장면이 동시에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여정이 요셉을 통해서 보여지게 되었습니다.
적용 :
1) 사람의 잔머리는 더 깊은 수렁으로 인생을 몰아갑니다. 나락으로 빠지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잔머리를 의지한 경우들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미움의 대상인 요셉을 제거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서 아버지 야곱의 너무나 깊고 오래가는 슬픔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요셉의 형들도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버지 야곱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이 슬픔이 그들에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구합니다.
2) 하나님은 야곱의 집안에서도 일하시고 계셨고, 요셉과 더불어 보디발의 집에서도 일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해하는 믿음을 키우길 원하셨습니다. 제 인생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구속사적 관점을 소유하도록 이끌고 계심을 믿습니다. 어느 순간 저도 하나님이 왜 지금과 같이 제게 일하고 계셨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