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주례사
송유옹
내게 혼인 주례를 봐 달라는 부탁이 왔었다.
한마디로 거절했다.
아버지는 내 친구이고 주례를 부탁하는 당사자는 내가 5년을 가르친 제자이고 그 제자의 아들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이 녀석의 아들이 커서 벌써 장가를 간다고 주례를 부탁했다.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그렇다고 장가를 못가지는 않았다.
지금은 벌써 제자녀석도 중년의 멋진 신사가 되어있지만
지 아버지에게 처음 튼튼한 손자를 안겨 주었을 때,
할애비는 손자를 보듬고 깨물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애비에게 영감 냄새난다고 접근도 못하게 한다고 서글퍼했었다.
그 애가 커서 장가를 간단다.
주례를 부탁 받았을 때 당황스럽기도 했고 그래도 스승이라고 제 자식 주례를 부탁하니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그렇게 늙었나하는 갈팡질팡의 생각들이 순간 교차하였다.
그러다가 주례를 단호히 거절했을 때 처음에는 그 친구도 그리고 그 녀석도 서운해했다.
나는 전통적 의미의 내 가정을 꾸려본 적이 없다.
물론 요즘은 독신가정이라는 형태외에도 보수적 의미로써의 가정이라고 인정을 해야할까하는 다양한 모습들의 가정도 있어서, 전통적 가정 외에는 이성으로는 이해된다 해도 감성으로는 흔쾌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내 처지에서 인생의 귀한 새 가정을 이루는 제자의 결혼 주례까지 설 뻔뻔함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 진심의 뜻을 전하고 대신 축시를 지어 양가에 보내 진심의 축하를 보냈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종교가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며 종교의 가치를 높이본다. 그곳에는 인간본연으로의 삶의 방향과 도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냉철한 해석과 실천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종교는 인본적 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고있다.
따라서 이와같은 입장에서 우리의 토템을 믿지는 않지만 가치는 인정한다. 그러므로 터부는 믿지않지만 굳이 어길려고도 하지 않는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 내면의 가치는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바탕으로부터
삶의 많은 개인적, 사회적 가치의 표준에 대한 시작은 가정에 있다고 철저히 믿는 나는
혼인 주례만은 가정사나 인간사에서 흠이 적은 사람이 주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요즘처럼 진보적 사고의 세상에서는 혹시 주례없어 결혼 못하는 새쌍들이 많아지고 인간사의 대란이 될른지… ㅎㅎ.
백일 목욕재계로 신성하게까지는 못할 지라도
장래의 복된 세상을 이끌고 자기를 복사한 2세들을 낳아기르는 고결한 결혼식에는 그것을 주도하여 진행하는 사람도 그만큼 깨끗하고 경건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요즘 결혼을 하지않는 비혼세대들이 많거나 또는 주례없이 편하게 공표하는 것도
일응 이유가 있다고 역설적 우스게로 다른 시각으로 보면 긍정하고 싶은 면도 있다.
권리에는 강한 의무가 따르므로 자신 미래의 손익을 제대로 파악하는 산술적 머리들이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 학력의 나라이니까! ㅎㅎ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나를 안다.
그런데 내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덥석 받을 수가 있겠는가?
대부분의 주례는 자기를 가르친 스승이라든지 종교지도자라든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다든지 어느 경우에는 직업적인 주례자까지 등장을 하는 것이다.
아끼는 사람들의 미래를 축하하고 삶의 길을 이야기하며 고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깊은 생각을 주례를 보는 이들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양가 부모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는 지인들이 모이신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진정을 담아 부탁, 당부하는 것이 아무런 진정성도 없는 통과의례에 불과한 식의 진행에 전전긍긍할 필요없이 훨씬 아름다운 시작인 것이다.
주례가 이름있다고 다들 잘 사는 것은 아니더라.
요즘은 이기적인 합리성인지
진정한 축하의지없는 양쪽 가족들 이외에게는 축의금만 달라는 쪽지의 계좌번호만 달랑보내고 자기들끼리만 한다고 정정당당하게 고지서만 온다.
나도 그렇게 헌금했으니 너도 최소한은 그만큼하라는 외상빚 독촉 고지서인 것이다.
하물며 사회지도층의 자식이라고 자인하는 사람이 어미도 모르는 예식을 권력의 뜰에서 두번이나 하며 수금하는
그 애미에 그 딸도 있는 세상이지만…
그런데 나는 제자의 결혼식에 멋진 사랑의 주례사를 차마 할 수 없는
곰탱이 인정머리없는 선생이었을까?
선생이란 무엇일까?
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다라는 자조적인 세상에
과외교사 제자의
자식의 결혼주례를 부탁받고
어렸던 그 제자에게 내가 무엇이었는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첫댓글 훈계와 꾸지람도
하는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다르겠지요.
반성과 뉘우침이
색다름을 알게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닏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