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58]3인방 신춘수담(手談), 쏠쏠한 재미
‘서로 상대하면서 말이 없이도 의사가 통한다’는 수담(手談), 이른바 바둑은 노후의 몇 안되는 취미이다. 수담이 유일한 취미가 될 수 없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학생이다’는 신조로 책읽기와 글쓰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 100세 아버지가 지금도 돗보기조차 쓰지 않고 신문의 잔활자까지 읽듯,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눈만 안나빠지기를 빈다. 그래야 책을 읽든 글을 쓰든 할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지난주 새해맞이를 핑계로 종로3가 기원에서 ‘바둑친구’ 2인을 만났다. 54년생 선배는 평전작가이자 칼럼리스트로 유명한 언론인 출신이고, 중고교 1년 선배는 대체(代替) 불가능한 출판인이다. 3인 리그전으로 승부를 가려 패자가 저녁을 사는, 소박한 모임을 분기별로 한번씩 갖는 것은 행운이자 행복한 일이다. 요즘은 바둑 두는 사람을 보기조차 힘들지 않던가.
그 흔하던 수담을 나누는 기원(棋院), 너무 많이 없어져 이제는 찾기도 힘들다. 그래도 종3 주변엔 서너 곳이 있어 우리의 ‘숨통’을 트여주고 있다. 예전의 기원은 마작이나 카드를 하는 한량(閑良)들의 놀이터였다. 이젠 어디든 흡연 금지. 그때는 너도 나도 담배를 입에 물고 살던 '미개인'들이었다. 그런 굴뚝 속에서도 취미를 즐긴 게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상전벽해'라는 말에 해당될까. 재밌는 것은 기원 손님의 대부분이 70대에서 80대이다. 이들이 바로 ‘오프라인 바둑세대’. 하루종일 즐겨도 8천원이나 1만원의 기료(棋料), 이만큼 ‘가성비’ 좋은 ‘킬링타임 게임’이 어디에 있는가. 킬링타임이라 하지만 바둑은 마인드 스포츠(mind sport)임이 분명하다. 뇌를 쓰는 게임인 것을. 이들 세대는 파크골프도 대세다. 50대와 60대는 대부분 스크린골프나 당구장 또는 볼링장을 찾는다한다. 요즘 30대와 40대는 가족에 집중, 육아에 열중하는 듯하다. 세태(世態)가 그러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왠지 씁쓸하다. 젊은이들은 구닥다리 놀이로 생각하는지 바둑을 아예 배우지 않는다. 오로, 타이젬 등 컴퓨터나 핸드폰으로도 둘 수 있지만, 그들은 나날이 진화하는 전쟁게임 속에서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
유일한 손자에게 바둑학원을 다니면 좋겠다고 은근히 재촉하기를 여러 차례. 조손(祖孫)이 1년에 한두 번 만나 수담을 나누는 풍경은 머리 속에 그려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체스를 배우고 큐브를 배우던 손자가 드디어, 마침내, 바둑학원을 다니겠다고 제 엄마에게 말했다한다. 나는 이제야 진실로 행복한 할아버지가 됐다. 누구를 닮아 명석(明晳)할까? 틀림없이 1년만 다니면 ‘아마추어 바둑의 꽃’이라는 3, 4급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서너 점을 깔으라고 할 판이다. 그 정도면 상수와 하수끼리 한 판 둘 만하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만을 빈다.
얘기가 옆길로 빠졌다. 선배들과 수담 나누기 4시간이 언제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갔다. 아쉽다. '도끼자루 썩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다음 약속날을 정하고 막걸리 한잔 걸치러 가는 것도 즐겁다. 바둑은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실제 둘 때보다 수(數)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훈수 3급’이라고 할까.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참아야 한다. 자칫 훈수하다 뺨맞기 십상이다. 옆 테이블에서는 두 노인이 기료내기를 하는지, 물려달라커니 못물려준다커니 목소리가 높아진다. 잘은 모르지만, 두뇌를 써야 하는 만큼 치매(癡呆)에 걸리지는 않을 듯하다.
수담을 나누다보면 상대방의 품성(品性)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이 담대하고 신사처럼 점잖은 성품인지, 아니면 소심하고 쩨쩨한 성격인지, 명예욕과 승부욕이 강해 자칫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승패(勝敗)는 병가지상사라며 다음판을 기약하며 훌훌 털고 일어서는 사람은 뒷모습도 아름답다. 그런 분하고는 승부를 떠나 또 두고 싶다. 서로 누가 더 땅을 더 많이 차지하고 뺐느냐에 따라 결정하는 ‘19로’의 게임. ‘경우의 수’가 무한대인 것을, 알파고는 어떻게 학습을 하길레 입신(入神)의 경지에 다다른 이세돌을 이긴 걸까. 무섭다. 진짜로 두려운 일이다. 체스와 장기를 이겨도 바둑만큼은 이기지 못할 거라고 호언장담한 게 부끄럽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제 AI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 끝은 정말 어디까지일까? 그 끝이 궁금하지 않고 오직 두렵고 무서울 뿐이다. 이제는 바둑TV에서 ' AI의 수'가 없이는 분석하고 해설하지도 못한 세상에 우리가 산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가 선배는 15일 LG배 기왕전에서 신민준 9단이 드라마틱하게 우승한 것을 꼬박 봤는데도 졌다며 쑥스러워했다. 출판사 선배는 점심 막걸리 한잔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며 다음에는 어림없다는 호언을 했다. 4전 전승을 기록한 나는 술맛이 더욱 났다. 그렇게 정초(正初) 신춘대국은 결말이 났다. 행복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