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명당
보름의 달밤인데 찔레의 봄밤인데
늦도록 늦은 밤 나는 아직 길에 있네
몰라라, 얼마나 멀리
언제 그렇게, 그러게
시냇가라 했던가 바닷가 어디쯤
정자 하나 짓겠다고 필생을 다 놓치네
바람도 잠들지 못한 길
서너 백년 기다릴게
봄편지
눈 녹자 흙을 만지는 순진무구 저 사내
부여족 어여쁜 아내 물동이를 빚을거나
거기에 무늬를 넣어
즐문토기 머릿결
얼레빗 결을 따라 가지런히 아침을 빚어
눈웃음 마주치자 치마 펼친 얼레지
너, 벌써 한가득 찰랑
이고 오는 천지간 안부
구렁도 꽃빝이네요
갯물의 전생은 소금이라 했다지요
조수가 거듭 치던 풍화의 퇴적물들
침묵이 소금 포대다
거친 파도 무릎 꿇린
사는 게 그다지도 짜기만 했을까요
어머니 시집살이 소금밭이라 하시더니만
할머닌 며느리 모시기
소금 기다리듯 하셨다지
짠물을 양식으로 퉁퉁마디 자라난다
젖은 앞섶 아우르며 말리느라 눈부시던
구렁도 꽃밭이네요
소금창고 소금꽃
섣달
가장 긴 그림자를 맞이하여 들이는 달
별자리 따라가던 생각이 저문다
일기장 흰 여백 사이 새 발자국 글씨들
병실의 시계처럼 가도가도 자정만 같던
깜깜 몇 날 며칠도 그냥 깜깜은 아니어서
저녁의 식탁을 차린 산다화를 품은 꽃병
등불을 밝혀 놓고 기다리는 발소리
에움길 먼길을 돌아오는 나를 위해
심지를 돋우어가며 기름 더 채우는 달
- 시집 『서너 백년 기다릴게』 황금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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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해 시조집 『서너 백년 기다릴게』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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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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