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7. 월요일
멀더요원
1993년 미국 영화 중 '데몰리션 맨' 이라는 게 있다.
당시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근육자랑이 여전하던 시기였고 산드라 블럭이 여전히 귀여웠던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영화를 본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줄거리 - '데몰리션맨'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1996년, 스파르탄(실베스타 스탤론)은 범인을 잡기 위해 때때로 또라이 짓을 하는 경찰로 '데몰리션 맨(진리경찰이라는 뜻)'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킬러인 피닉스(웨슬리 스나입스)가 빌딩에 폭탄을 설치하고 인질극을 벌이자 스파르탄은 무리한 진압을 통해 그를 체포하지만 빌딩이 폭파되어 인질이 죽게 된다. 인질이 죽게 되자 스파르탄은 임무상 과실로 체포되어 냉동 감옥에서 냉동 상태로 수감된다.
2032년, 도시는 별 희한한 방식을 통해 바른생활 사회가 된다. 콕토 박사라는 지도자의 희한한 세계관을 담은 각종 규제를 통해.. 예컨대.. 바른 사회를 위해 비속어를 구사하면 딱지를 끊고, 질병 예방을 위해 사람간의 신체적 접촉이 금지되어 악수도 하지 못한다. (당연히 니들이 생각하는 그것도 금지다)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되어 모든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하며, 모든 상황은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폭력은 철저히 금지되며, 어른들도 '무장한 핫도그(armored hot dog)'와 같은 동요를 즐겨듣는... 참으로 아름답고 바르고 공정한 가카피아와 같은 사회...씨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하여간 피닉스가 탈출하고 바른생활 맨들만 모여사는 사회는 삽시간에 개판이 되어 간다. 경찰청은 스파르탄의 활약 동영상을 본 여경찰 레니나 헉슬리(산드라 블록)의 건의에 따라 스파르탄을 해동시켜 피닉스를 잡게 한다.
피닉스를 추격하던 스파르탄은 피닉스가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에 당연한 쓸데없는 의심을 갖게 되고, 그 배후로 가카 콕토 박사를 의심한다. (물론 그 분도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닌데 영화는 지극히 스파르탄의 관점이다)
2032년의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공정한 가카피아에서도 좌빨딴지스는 존재하는데, 콕토 박사는 장악된 언론 등을 통해 그들을 사회의 악으로 규정한다. 결국 그들은 콕토 박사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추방되어 지하세계에서 '쥐고기 버거' 등 음식마저 불충한 음식을 먹으며 가카피아의 레지스탕스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콕토 박사는 그들의 두목인 김어준 프랜들리을 죽이기 위해 피닉스를 풀어주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하지만 피닉스나 콕토 박사나 역시 상호간의 믿음 따위는 없는 놈들(여기서 어떤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안된다).. 피닉스는 콕토 박사를 죽이고 가카피아를 손아귀에 넣으려다가 결국 스파르탄에 의해 죽고, 가카피아는 좌빨딴지스의 봉기에 의해 다시 그냥 저냥 대충 살아가는 예전의 인간적인 사회로 바뀐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영화는 하고 있다.
스포일러 끝
이 영화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다가 그 영화에서 설정해 놓은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아니 아마도 지구는 점점 극심한 양극화를 향해 달리고 있는 듯 하다. 우리 사회가 더 극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건 일단 접어두고. (지니계수 이런거 중요한 지표이지만 일단 다 집어치우자)
그러면 우리 사회가 소득을 기준으로 갈라질 때 소득이 약간이라도 높은 쪽에 있는 사람들은 그 반대쪽의 사람들이 겪을 고통에 대해 얼마나 생각할까?
내 생각에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2차대전 당시 인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자신들의 군대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알고도 모르는 척 했던 독일인들처럼...
나 역시도 그렇다.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자라서 약간 먹고 살만해진 이후로 옛날의 어려웠던 기억들도 서서히 잊혀져가고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간다.
당연하지. 인간은 원래 그래.
그런데...
어제 '나는 꼼수다 23회'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통시사주간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주진우
안녕하세요 주진우입니다. 지난 2년간 평택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1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배우자, 부모 등 가족의 자살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평택은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도 가장 자살률이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2년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500명이 해고 된 해 벌어진 일입니다.
살아남은 해고 노동자들 그 중에서 일상적으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70%가 넘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성화된 분노와 무력감에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아프고 눈물나는 것은 아이들이 보이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 입니다. 파업후 버스를 타지 못하는 6살짜리 아이, 해만 지면 "아빠 어디야 경찰 조심해" 라고 말하는 아이, 30분마다 전화를 해서 우는 아이, 4살 동생을 내내 업고 다니는 초등학생 아이가 있구요. 아빠를 지켜야 한다며 허리춤에 장난감 총과 칼을 차고 다니는 5살짜리 아이도 있습니다.
더 이상 죽게 놔둬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을 더 이상 불안과 공포 속에 방치해 놓아서도 안됩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집단적인 심리적 내상을 치유하기 위한 특별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치유 센터는 '와락'입니다.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을 겪은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 특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상담할 정신과 의사, 상담심리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놀이 치료를 맞아줄 놀이 치료사도 필요합니다. 학습과 보육을 맡아줄 자원활동가들도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 주춧돌을 하나 놓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와락 안아주세요.. 우리 함께 살아요..아...좀 도와줬으면 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쌍용차 이야기만 나오면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아..트윗계정에 warakproject 입니다. warakproject@gmail.com으로 신청해 주십시오. 와락 안아줍시다.
씨바 뭐지? 이 먹먹함은?
아... 썅...인간이 원래 그래서는 안되는 거구나. 나도 양심이라는게 있어서... 내 양심대로라면 그걸 모른척하고 살아가서는 안되는 거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거구나.
이 나라의 국격. 그래 좋다! 썅... G20을 개최한 나라다. 그래서 뭐? 애들이 저렇게 힘들다는데!!! 초등학생이 4살 동생을 내내 업고 다닌다는데, 그 따위 국격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
내가 최근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좀 바빴는데, 아프리카에 가서 이런 장면을 여럿 봤다.
아프리카... 우리 머릿속에는 아주 못사는 곳이고 나라 꼬라지 개판인 나라라고 관념적으로 들어있는, 그리고 실제로도 못사는 바로 그 곳과 G20에 빛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같은 장면이 나타나는게... 썅...그 잘난 국격(아프리카 무시하지 마라. 그래도 애들 표정이 많이 어둡지는 않았다.)
아 안되겠다. 돈 없지만 좀 써야겠다. 많이 못 써서 더 미안하다. 나도 힘들게 살았는데 그걸 잊고 살았구나. 주진우 때문에 미안해서 잠이 안온다.
아... 듣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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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ㅠㅠ후원하겠습니다. 와락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후원 정도 밖에 없어서 조금 안타깝습니다. 전문 자격있는 분들이 재능기부를 해주시면 참 좋을텐데...싶어요. 제가 무능해서 슬플때가 별로 없는데 이럴 때는 슬프네요.